
1년 전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 대불호텔
[제12기 인천시 SNS 서포터즈 최용석]
인천 중구의 개항장 문화지구,
과거 청나라와 일본 조계지의 경계
청일조계지경계계단 밑
옛 일본 조계지였던
일본풍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구 그리스풍의
3층 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
여전히 개항기 시절 분위기가
남아 있는 거리에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데요.
1888년 처음 세워진 대불호텔은
1978년 철거된 이래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 있다가
40년 만인 지난 2018년 4월,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대불호텔
중구생활사전시관
옛 대불호텔 모습을 재현한
중구생활사전시관은
대불호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관과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2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복원된 대불호텔
건물에 조성된 1관에서는
대불호텔의 역사를 비롯,
전시장 바닥에 보존된
대불호텔의 유구,
호텔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함께
당시와 같이 재현된
객실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불호텔은 1888년 일본인
해운업자에 의해 문을 열었습니다.
최초의 서구식 호텔로
서울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정동의 손탁호텔보다도
앞선 것이라 하지요.
서울이 아닌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
문을 열게 된 이유는
개항기 인천이 조선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곳이자
무역업과 금융업이
활발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인선 철도가 놓이기 전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말을 타고도 한나절이 걸렸으므로,
배를 타고 인천항에 내린
외국인들을 위한
숙박 수요가 많았겠지요.
결국 이러한 사연들이
대불호텔이 인천에
생겨낸 배경이 되었습니다.
현재 전시관에는
대불호텔의 객실을 재현해 놓아서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요.
대불호텔에는 침대 객실
11개가 있었다고 하며
객실 숙박료도 방마다
등급에 따라 달랐는데
상급 2원 50전, 중급 2원,
하급 1원 50전으로
당시 일본식 여관의 상급 객실
숙박료가 1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비싼 것이었다고 하죠.
또한 당시 대불호텔은,
우리말이나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접대했으며
서양식 식사가
제공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팔았던 곳이었다고도 하지요.
번화가는 물론이고 동네 골목까지
커피 전문점들이 들어서 있을 만큼
대중화된 커피문화의 기원이
대불호텔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재미있는데요.
대불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개화기 조선에서 서구의 신문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통로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개항장의 번성과 함께 번창하던
대불호텔은 경인선 개통으로
숙박 수요가 감소하면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1918년 중국인에게 인수되어
중국음식점인 '중화루'로 바뀌어
전국 3대 중국집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는데요.
이후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결국 1978년 건물이 헐리게 되었죠.
그 후 오랫동안 대불호텔 자리는
공터로 최근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대불호텔의 원래 모습은
빛바랜 사진이나 박물관 등에
전시된 미니어처를 통해
알 수 있을 뿐이었죠.
하지만 2018년 4월
복원 공사를 마치고
대불호텔은 다시 옛날처럼
이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40년의 세월을 건너
복원된 대불호텔은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되살려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성공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되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적인 공간이기도 하고요.
대불호텔에 들러보세요.
커피 향기 같은 근대의 향취에
흠뻑 빠지게 될 것입니다.
<대불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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