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빈 기자]

최용신기념관의 체험 전시실 전경 ⓒ 왕우빈 기자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기회기자는

숭고한 독립 정신과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최용신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 앞 번화가를 지나면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상록수 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2007년 건립된

최용신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최용신은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도

교육이 민족의 얼과 독립 정신을 기르는

튼튼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사명감 하나로

농촌계몽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입니다.

교육과 농촌계몽운동에 일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 최용신의 삶 최용신은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근대 신문물이 활발히 유입되던 원산항 일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최용신은 루씨여자보통학교,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며

근대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교육과 지식의 경험은 훗날 그녀가

농촌계몽운동에 한평생을 헌신하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최용신은 서울 협성여자신학교에 재학 중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가난과 무지로 고통받는 농민들의 생활을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여생을 교육과 농촌계몽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용신기념관 내 체험전시실(오른쪽)과 상설전시실 모습 ⓒ 왕우빈 기자

1931년 당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오늘날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파견 교사로 오게 된 최용신은

마을 예배당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한글과 근대 지식을 가르치며

몸소 계몽운동에 앞장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외지에서 온 젊은 여자 선생님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마을 사람들도

최용신 선생의 교육에 대한 열의와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지켜보며

차츰 변해갔다고 합니다.

한글을 배우고자 하나, 둘 모여든 학생 수가

수십 명에 이르러 예배당이 비좁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예배당 옆에 작은 한글 강습소를 짓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최용신기념관의 터가 된

‘샘골 강습소’입니다.

샘골 강습소’ 창립 100주년 기념비 앞에서. 뒤로는 최용신이 샘골에 내려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예배당이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남아있다. ⓒ 왕우빈 기자

최용신은 근대 지식과 학문을 보다 깊이 탐구해

농촌계몽운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전개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병에 걸려 조국으로 돌아온 후

만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게 됩니다.

이후 작가 심훈은 최용신의 일대기를 엮어

소설을 쓰게 되고, 이것이 바로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과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상록수>로 재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상설전시실에는 최용신과 마을 사람들이 만든 샘골 강습소의 주춧돌(왼쪽 사진)과 최용신의 삶을 담은 당대 기사 및 영화 <상록수>의 포스터와 필름, 소설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왕우빈 기자

최용신기념관을 둘러보며

최용신기념관은 샘골 강습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라도 한 듯,

전통 건물 외관에 기와를 얹은

아담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하에는 최용신의 일대기를 기념하는

상설전시실이 있으며, 최용신의 가르침을

계승하기 위해 오늘날에도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는

강당과 교육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상 체험 전시실에는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다양한 도서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여러 체험 실습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열립니다.

최용신기념관의 외부와 내부 모습 ⓒ 왕우빈 기자

최용신 선생은 가난과 무지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은 배움을 통해

훗날 독립된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 될 보배’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비록 작고 아담한 공간이지만

100여 년 전 어린 학생들과 최용신 선생이

배움과 독립에 대한 염원을

뜨겁게 다져나갔을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독립을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념관 체험실에서 다양한 활동에 체험 중인 기자의 모습 ⓒ 왕우빈 기자

기자는 최용신기념관을 떠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식민 통치 하에서도

교육과 배움의 열정을 잃지 않았던 최용신과

당시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동안 학교에 가기 싫고

공부를 귀찮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최용신기념관을 찾아

광복의 의미도 되새기고,

배움의 열정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갖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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