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곳에서 거주를 했으며

어떤 생활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고택들이 영천시에는 군데군데 있습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도 있지만 너무 낡아서 옛 모습을 본 따서 복구한 곳도 있고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곳이 있는 반면에 담장 너머로 살짝 엿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영천 만취당고택과 금산당을 다녀왔습니다.

영천 만취당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 175호(1984.01.14 지정)

주소:경북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

방문했을 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담장을 통해서 살짝 엿볼 수 있는 정도였어요.

닫혀 있는 문만 봐도 고풍스러우면서 옛스럽습니다.

너무 새 것처럼 되어 있었으면 실망했을거 같아요.

'광명헌'이라고 적힌 현판이 보였어요.

광명헌은 1909년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영천 만취당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인 문간공 지산 조호익선생의 6대손이며,

조선 정조 5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 선생이 살던 집입니다.

만취당은 사랑채의 이름입니다.

전면 광명헌 뒤쪽에 배치된 별묘인 보본재는 후대에 지은 것으로 전하며,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광명헌은 1909년, 사랑채는 1915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해요.

큰 사랑채는 전면에 퇴간을 두고 좌우에 동일한 사랑방과 제방을 배치하였는데 그 구성이 특이합니다.

제방은 제례시 여자 제관들이 사용하게 되는데 사랑채에 이러한 공간을 마련한 예는 매우 드물다고 해요.

영천 금산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33호)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3

영천 만취당 고택 옆에는 금산당이 있습니다.

금산당은 조선 정조 5년(178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1712~1800)선생의 후손이

장릉참봉 병문이 1900년에 차자인 명환의 살림집으로 건립한 것입니다.

현재 건립 당시의 전체 모습은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사랑채와 안채는 당시의 목조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재목이나 기법들 또한 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랑채의 평면은 'ㄱ'자형으로 모서리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2칸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좌측과 안채쪽으로 2칸의 온돌방을 두었습니다.

좌측에 중문간을 두어 안채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안채는 6칸 'ㅡ'자 평면으로 부엌, 2칸의 안방, 2칸의 마루, 1칸의 온돌방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온돌방 앞쪽과 마루쪽에는 퇴를 두었습니다.

옛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고택

영천 만취당과 금산당! 화려하고 특별한 것은 없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오랫동안 전해져야 할 문화재입니다.

영천시 금호읍 일대를 방문하시면 들러 보세요.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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