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 주봉 바로 아래에 있는 유원지로 시민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등산 코스가 있으며, 맑은 계곡과 함께 체력단련장, 팔각정을 비롯한 쉼터, 사찰 등이 있고, 산 중턱에는 넓은 주차시설이 있어 시민이 즐겨 찾는 서원곡 유원지 입구에 있는 관해정을 다녀왔습니다.

관해정 바로 맞은편에 공영주차장이 있긴 했지만 복잡하더라고요. 한자리 빈 데가 있어서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는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오늘의 목적지인 관해정을 향했답니다.

관해정으로 연결된 다리 위에서 계곡을 바라보는데 겨우 몇 달 전에 많은 피서객들로 복잡했던 모습과 달리 10월의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겨울인가 할 정도로 헐벗은 나무들이 계곡을 채우고 있어서 시간의 변화를 엿보게 하더군요.

무학산 정상 가는 산책로

관해정 바로 옆에는 무학산 정상으로 향하는 샛길이 있더라고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산책로가 숲의 정원을 향한 길처럼 어떻게나 사랑스럽고 예쁘던지요. 산을 향하는 걸음이 정다운 소풍 길처럼 단장되어 좋다고 하시면서 산에서 내려오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짧은 구간이지만 이 길을 만든 분께 감사해 하시더라고요.

관해정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이 닫혀있어서 이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나 하던 차에 마침 쪽문에서 나오시는 할아버지의 허락으로 안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함께 안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관해정은 서원골에 있는 주정으로서 선조, 광해군 때 한강 정구(1543~1620)가 초당을 지어서 후학들에게 시서를 강론하던 곳이라고 해요.

초당이 있는 계곡은 무학산 계곡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서 숲이 우거져서 풍광이 좋은 곳이라 여겼던 곳이라고 해요.

서원곡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듯 커다란 바위와 함께 계단을 만들고 기단을 세워 그 위에 관해정을 지었더라고요.

회원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서원은 없어지고 정자만 남게 되었다고 해요.

아 참, 관해정 마당에 들어서면 큰 방문 위에 걸려있는 ‘취백당(聚白堂)’이라는 현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백미(白眉), 즉 뛰어난 인재들을 모으는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지요.

정구(鄭逑, 1543년 7월 9일~1620년 1월 5일)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 서예가, 의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답니다.

한강은 1543년 7월 9일 경상북도 성주 유촌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았으며 일찍부터 글을 잘 지었다고 해요.

남명 조식의 문하에 찾아가 성리학을 수학하다가 뒤에 퇴계 이황을 찾아가 그에게도 성리학을 수학하여, 영남학파의 양대 거두로부터 학문의 정통을 모두 계수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학문하는 자세와 인격 수양의 방법은 이황을 닮았고, 천성이 호방하고 원대한 기상은 조식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평해졌다고 해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건물인 관해정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두 차례의 변란이 있은 뒤에 지어졌다고 해요.

관해정의 본채는 1885년(고종 23) 5월 1일에 중수하였고, 1886년(고종 24) 중건하였고, 2003년 경남 발전 연구원에서 보수와 정비를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시굴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보수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라는군요.

아궁이를 보니 장작을 붙인 불이 온 집은 데우고 굴뚝을 통해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왔을 봄, 가을, 겨울 그리고 불 땔 필요도 없을 여름의 이곳은 시간이 내려앉은 만큼 건물 구석구석에서 나이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관해정의 풍광을 돋보이게 해줄 나무들이 돌담 안에서 세월을 지탱하고 있더군요. 봄에는 관해정을 다 감쌀 것 같은 동백나무가, 여름에는 배롱나무, 가을에는 집 바로 앞의 은행나무가 오랜 세월 친구처럼 세월을 공유해 왔을 것 같아 외롭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솟을대문이지만 여느 권세가의 규모와 달리 아담한 관해정의 외삼문 내부의 모습입니다.

한강 정구는 1567년 남명 조식 선생과 함께 김해의 산해정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때 산해정의 풍광에 감동하기도 했다지요.

산해정 은행나무

관해정 은행나무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수고가 14m, 나무 둘레가 4.5m로서 한강 정구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설과 또 그의 제자 중 미수 허목이 심었다는 설이 있는데 1982년에 창원시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당시 수령이 440년이라고 하니 지금은 482년 약 500년 가까운 세월을 한결같이 처음 심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작년 가지치기를 해서 올해 은행이 맺히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나무가 죽을 뻔한 것을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살렸다고 하십니다.

관해정을 관리하고 계신 이인기 할아버지께서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관리하시는 중에 보호수로 귀히 여김 받는 은행나무 주변에 무턱대고 자라나는 풀을 제거해서 마대자루에 모아 쓰레기 집하장에 내다 놨더니 오히려 불법이란다고 하시면서 저를 잡고 하소연을 하십니다. 저라고 무슨 힘이 있겠냐마는 할아버지와 동네 어르신들은 이곳이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음이 안타까우신지 관해정과 은행나무에 대한 얘기들을 제법 오래 들려주셨습니다.

조선의 대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은 학문 연구에만 집중했던 것이 아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직접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대항하며 북진을 막는데 최선을 다했던 인물이기도 하지요.

오늘을 살아가는 창원시의 역사에 새김이 되고 전승이 되고 알림이 되어 꿈이 있는 내일을 위한 어제의 자료로 귀히 여김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해정에서 은행나무의 이야기를 곁들여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창원시 #창원여행 #창원가볼만한곳 #창원명소 #창원문화재탐방 #창원시유형문화재 #서원곡 #관해정 #회원서원 #한강정구

#산해정은행나무 #창원시보호수 #문화재관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10월창원여행 #10월창원가볼만한곳


{"title":"관해정과 보호수 은행나무 그리고 미래의 시간🌳","source":"https://blog.naver.com/cwopenspace/223631434066","blogName":"창원시 공..","blogId":"cwopenspace","domainIdOrBlogId":"cwopenspace","nicknameOrBlogId":"창원시","logNo":223631434066,"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blog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