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열린 그림책 전시회 작가 임양 [2024년_9월호]
미용실에서 열린 그림책 전시회
작가 임양
지난여름, 여주에서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미용실에서 그림책 전시회가 개최된 것. 미용실 거울에는 수성마카로 그림이 그려지고, 관람객은 샴푸실 의자에 누워 그림책 영상을 감상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글. 두정아 사진. 박시홍
자전적 그림책 <큰오빠>, 7년 만에 출간
엄마와 단둘이 살던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새아빠도, 엄마 배 속에 찾아온 동생도 낯설어요
이제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날 열심히 기어서 나에게 다가온 동생,
자기 키만 한 인형을 업고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동생을 보며
내 마음속 서운함과 외로움이 어느새 사라졌어요
나는 언제든 동생에게 등과 어깨를 내주는 큰오빠이니까요
올해 2월 출간된 그림책 <큰오빠>는 20여 년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온 임양 작가의 그림책 데뷔작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큰오빠>는 202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어린 나이에 가족관계의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면서도 바위처럼 단단하고 굳게 자라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만들어 놓은 지는 7년 됐는데, 이제야 세상에 나오게 됐죠. 일기와도 같은 자전적 이야기다 보니 책을 꼭 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어쩌다 보니 나이 50에 등단을 하게 됐네요. <큰오빠>가 이렇게 빛을 보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일러스트 작가로 일찌감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 당시 순수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출판 일러스트 쪽으로 많이 전향하던 시기였다”라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오랫동안 고전 동화의 일러스트를 통해 따뜻함이 깃든 그림들로 주목을 받았다. 빛과 어둠을 흑백으로 표현하며 여운을 안기고, 파랑과 노랑을 이용해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책 일러스트는 약간의 형식이 있어요. 장면을 쭉 보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연결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림들이 이야기를 매끄럽게 끌어 나가야 하죠. 글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그림이 대신 설명해주고, 그림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글이 대신합니다. 그림 작업은 어느 때는 글보다 더 디테일하고 전달력이 강할 때가 있지요.”
그림책 전시회가 미용실에서 열린 까닭은
20여 년 전, 전원생활을 위해 서울에서 여주로 터전을 옮긴 임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관객을 만났다. 2022년에는 개인전 <겨울눈, 마(馬)>를, 2023년에는 아트뮤지엄 려의 <여주 아트페스티벌>, 양평미술관의 <더 아트 파워 전(THE ART POWER 展 2020)> 등에 참가했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임 작가의 예술혼은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여주 상동의 한 미용실에서 열린 전시회 <어디에도 없는, 그림책>을 통해 새롭게 펼쳐졌다. 발상의 전환은 물론, 문화예술이 지역민들의 일상 안으로 녹아 드는 특별함을 선사했다.
“이벤트 같은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싶었어요. 제가 평소에 다니는 미용실이었는데, 영월루 인근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아요. 전시장 못지않게 조명도 굉장히 잘 되어 있었죠. 미용실 대표님도 ‘우리의 공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하다’라며 흔쾌히 공간을 허락하셨어요.”
미용실이라는 이색적인 장소에서 그림책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단숨에 화제를 모았다. 일반 그림 전시뿐 아니라 그림책 스토리를 영상으로 제작해 미용실 내 샴푸실 의자에 누워 헤드셋을 끼고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영상의 내레이션은 지인의 7살짜리 아들에게 부탁했다고. 임 작가는 “일반 전시장에는 영상을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며 “그림책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았는데, 설치부터 홍보, 후원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여주에서 맺게 된 좋은 인연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디에도 없는, 그림책>은 2024년 모든예술31(경기예술활동지원) 지원사업에 선정된 전시회로, 경기문화재단과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이 후원했다.
여주의 역사와 문화 알리는 ‘책배여강’
임 작가는 여주시립도서관의 인문학과 회화 강사 6명이 모여 결성한 ‘책배여강’의 일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책배여강’은 배에 책을 싣고 여강을 따라가며 마을 주민과 소통한다는 의미로, 지역 어르신과 함께 책 만드는 사업을 펼치며 책을 매개로 여주의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선후기 무신 이완 장군이 있는 상거동의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그림책 <나를 만나러 와-거북이가 들려주는 이완 장군 이야기>를 선보였고, 장애인들의 이야기 그림책 <한만해>를 제작하기도 했다.
“여주에는 문화재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아 너무 안타까워요. 앞으로도 지역에 있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꾸준히 제작할 예정입니다. 여주의 설화나 인물, 역사와 문화를 그림책으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배여강’ 활동 중 점동도서관에서 열린 북콘서트는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 있다. 임 작가는 “점동면 삼합리와 원부리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든 후 북콘서트를 열었는데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라고 회상했다. 임 작가는 <큰오빠>에 이어 두 번째 그림책을 준비 중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어느 날 도감을 보다가 나무의 겨울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너무 예쁘고 귀여운 얼굴 표정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 열심히 작업 중이니 내년 즈음 신간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전시도 일단 천천히 구상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바랍니다.”
[작가 임양]
추계예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그림책 일러스트를 시작했다. <꿈을 그린 화공>, <안도현 시인이 들려주는 불교 동화> 등과 여주 작가인 장주식의 그림책 <깡패진희>의 일러스트를 맡았다. 2021년 여강길에서 주최하고 세종문화재단에서 후원으로 제작된 ‘여강의 전설’과 세종신문에 연재된 ‘해월’, 이천문화원의 ‘천마와용마’ 일러스트를 그렸다. 첫 그림책 <큰오빠>를 2024년 2월에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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