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전
고창의 특별한 정자, 천인단애 전좌암 절벽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두암초당
고창의 특별한 정자,
천인단애 전좌암 절벽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두암초당
고창군 아산면에는
유난히 바위 암(巖)이 들어간 지명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소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 도립공원 기암괴봉과
아산 초등학교가 있는 영모마을 뒷산 병바위 일원의
신비로운 바위들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늘 그중 반암리 영모마을에 있는 전좌바위 아래 제비집처럼 들어선
두암초당을 찾았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도 한눈에 딱 보이죠?
두암초당 주변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으니
영모마을 회관 부근에 주차하고
아산초등학교 급식실 방향으로 150m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1933년 개교한 아산 초등학교 교가에 보니
"천만 년 긴 긴 역사 가슴에 안은 준엄한 전좌암 하늘을 뚫고
옥녀봉 솟는 해는 밝게 비추네"라고 나오는데요,
두암초당이 있는 산은 독립된 산 이름 대신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전좌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면에서부터 거대한 전좌바위 상단까지는 100m는 넘어 보이는데요,
40m 지점에 두암초당이 있고 그 아래에 영모정이 있습니다.
두암초당 입구에 인천강 병바위 국가생태문화탐방로와
두암초당 안내문이 있는데요,
인천강과 지명에 대한 설명과 병바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두암초당에 관한 안내가 있습니다.
두암초당(斗巖草堂)은 안내문에 따르면
고창 출신 유학자 변성온(卞成溫, 1540~1614)과 동생 변성진(卞成振, 1549~1623)이
인천강변에 정자를 짓고 만년을 보냈는데, 정자가 훼손되자
1815년 후손 변동빈이 전좌바위 중턱으로 이건 했으며
이마저 유실되자 1954년 후손들이 다시 중건하고 재실 영모정도 함께 지었다고 합니다.
영모정에서 두암초당까지는 약 70m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야 하는데요,
두암초당에서 전좌바위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있으며
하산해서 두암초당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한 바퀴 도는
인천강 병바위 국가생태문화탐방로가 있답니다.
두암초당 앞을 지나 전좌바위를 한 바퀴 돌면 옥단바위와 소반바위,
병바위, 탄금바위를 거쳐 현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데요,
거리는 약 1.7km에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다음 달 여행을 미리 찜해 봅니다.
이제 100여 미터에 이르는 까마득한
절벽 중턱에 자리 잡은 두암초당을 보러 가는데요,
전좌바위 지질이 참 특이하죠?
언뜻 보면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상이 새겨진 바위처럼 보이는데요,
암반이 반반하게 파여진 것을 보면 혹시 옛날에 전좌바위에도
마애불을 새기려 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 봅니다.
두암초당(斗巖草堂)의 주인은 변성온과 변성진 형제인데요,
그들의 아호는 형이 호암(壺巖) 아우가 인천(仁川)이라고 합니다.
그럼 정자도 그들의 아호를 따 호암이나 인천으로 하면 되는데,
왜 두암(斗巖)일까요?
두암(斗巖)은 곡식을 세는 두(斗)나 저울의 추같이 평평하다는 뜻으로
호암 변성온의 성품이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斗)는 우두머리를 뜻하기도 해서 두암초당 뒤에 있는
전좌(殿座)바위가 임금이 앉아 신하들을 바라보는 뜻이기에
바위 중의 우두머리? 이란 뜻일지도 모릅니다.
아궁이도 있어 방은 온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두암초당은 온돌방까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좁고 위태로워 더 이상 탐방 불가입니다.
그래서 두암초당 아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데요,
한쪽에는 옆면에 두암초당(斗巖草堂), 앞면세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암초당 현판에는 염재(念齋) 산고수장 현판에는 김정회(金正會)라는 이름이 쓰였는데요,
염재는 화순 출신으로 구한말 호남 화단의 시(詩)·서(書)·화(畵)의
마지막 삼절(三絶)로 불리던 분이고 송태회(宋泰會)이고
김정회(1903~1970)는 고창 출신 유학자이자 서화가라고 합니다.
고창 출신 명창 김소희(1917~1995)도
15세 무렵 두암초당에서 득음했다고 전하는데요,
흥덕면 사포리 생가에서 두암초당까지 거리는 약 15km로 4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15세 어린 나이에 득음을 위해서 찾을 정도로 명당이라는 것 와서 보시면 딱 압니다.
내부에는 상당히 많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호암 변성온은 성리학의 대가 하서 김인후 문하에서 공부했다는데요,
성리학과 문장이 뛰어나고 이학과 수학에 밝아
퇴계 이황, 성혼, 박순 등 당대 기라성 같은 성리학자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인후의 하서전집에 '변성온전'이 나오고
퇴계 이황의 퇴계집에도 '호남변성온'이라는 글이 있어
교유한 학자들의 남긴 글로 보입니다.
두암초당은 가운데 방 한 칸에 좌우로 1칸씩 마루가 있습니다.
왼쪽 마루까지만 살펴보고 방과 반대쪽 마루로 건너갈 수 없어 내려와서 보는데요,
반대편 마루에는 고산경행(高山景行)이란 현판도 보입니다.
고창 두암초당에서 영모마을을 바라봅니다.
고창은 대부분 평야지대이지만, 아산면에는 산이 상당히 많은데요,
병바위가 있는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호남 8대 명혈인 금반옥호 선인취와 (金盤玉壺 仙人醉臥)형국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이는 "금으로 만든 소반에 옥으로 만든 술병을 차려놓고
신선이 술에 취해 누워있다"라는 뜻이라는데요,
병바위 일원이 딱 그 모습입니다.
오늘 호남의 8대 명혈 금반옥호 선인취와 (金盤玉壺 仙人醉臥) 명당에
자리한 두암초당을 둘러봤는데요,
두암초당을 지은 변성온, 변성진 형제가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 한 정자로
효심 깊은 형제의 사연을 들어볼 수 있는 탐방이었습니다.
고창에 가시면 병바위와 함께 꼭 둘러볼 정자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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