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생가를 소개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활약했던 신익희 선생은
1892년 6월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에서 판서를 지낸
신단(申壇)의 다섯 아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순국한
신립(申砬) 장군의 10대 손이기도 합니다.
사진의 앞쪽 중앙이 안창호 선생이고,
바로 왼쪽이 바로 신익희 선생의 모습입니다.
독립운동가의 단체사진으로 어릴 적부터 박물관이나
책에서 익숙히 보아온 사진인데,
이 사진에 신익희 선생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생가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
'어록 담장'이 보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이 청년에게 달려있다',
'독서하면서 조국 수호를 잊지 않는다'의 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신 분이었기에
나라를 생각하는 깊은 마음이 잘 느껴지고,
우리 민족의 영웅, 안중근 선생도 연상되었습니다.
그의 생가는 광주시 초월읍(서하길 6-25)에 위치하며,
언제든 자유롭게 방문하여 무료 관람할 수 있도록
대문이 열려 있습니다.
가옥은 한옥 기와집으로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통 한옥의 외관을 잘 간직하고 있어
1992년 경기도 기념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집은 전형적인 19세기 또는 20세기 초
경기 지역 중소 지주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20세기 초에 들어와 크게 개축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T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
좌측으로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으로 부엌이 있네요.
바깥채는 ㄱ자형으로 가운데에 대문이 있습니다.
또한, 그의 생가에 '광동강숙'이 보입니다.
이곳은 신익희 선생이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두 형과 함께
1913년에 개설한 사설 강습소입니다.
일제강점기 후 '동명 강습소'라 불렸고,
이웃 마을에서 8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였다고 해요😮
생가를 천천히 둘러보고 나와서
해공 신익희 선생의 동상과 그의 많은 어록들을
한 문장씩 가슴에 새기듯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그의 생가는 원래 지금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1865년(고종) 을축년 대홍수로 아쉽게도
가옥 일부가 파손되어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여기쯤이었을까?' 추측도 해보면서
그가 걸었을 이 마을 길을 한 바퀴 걷고 돌아왔습니다🚶🏻♀️
구한말에서 대한민국 초창기까지
격동기에 사셨던 이 분의 생애도 생각하며
짧은 역사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걷기 좋은 가을날, 여러분도 한번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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