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여행 , 독립정신을 배우는 여행지 박열의사기념관
문경 여행 ,
'박열의사기념관'
2012년에 개관한 박열의사기념관은
독립운동가 박열의사의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매년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 관련 추모제 및 행사,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 44
(경북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 95)
관람시간은
하절기 화~일 09:00-17:00
동절기 화~일 09:00-18:00
정기휴무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제1전시실은 박열이 민족주의자였다가
아나키스트로 길을 걷기 시작한 배경과
가네코 무리코와 만남을 살펴보고 일왕 폭살 계획으로 검거된 후
재판정에서의 투쟁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박열은 1902년 3월 12일 문경군 호서남면 모전리에서
아버지 박영수와 어머니 정선동의 3남 1녀 막내로 태어났어요.
아홉 살 때 함창공립보통학교에 반일 사상에 눈을 뜨게 되고
경성고보 사범과(지금 경기고)에 입학 후 3·1 운동이 일어나자
지하신문을 발행하고 격문도 살포하는 등 시위에 적극 가담합니다.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드디어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박열 의사는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도회'를 조직했으며,
1923년 일본 왕자 희로히토를 암살하려 한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검거됩니다.
2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
1946년 1월에 열린 "신조선건설동명" 창립대회에서 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그해 10월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이라는 기구를 만들고 단장이 됩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귀국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습니다.
박열은 1974년 북한에서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의 부인으로
대한민국 경상북도 문경 박열의사기념관내에 묘가 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 청년 박열과의 동거에
즈음해 다음과 같이 서약을 합니다.
첫째,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후세 다츠지 변호사는 톨스토이의 인도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변호사이면서 법률가와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박열 의사의 변호인으로 시종일관 그의 무죄를 주장했으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수감 중인 박열을 여러 차례 면회합니다.
마지막 선고 공판을 앞두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결혼 수속을 밟아 주었으며
가네코 후미코의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 문경에 안장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에 2004년 10월 대한민국 정부는 후세변호사에게
일본인 최초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제2전시실에는 박열의 법정투쟁 과정과 옥중생활을 살피고
광복 이후 박열의 사상과 활동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형무소의 실상을 좀 더 알차게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꾸며졌습니다.
체험공간에서는 옥중 생활과 법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고,
독립운동가들의 탄압한 흔적을 체험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수형시설에서 애국선열들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써
조상들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 위 글은 문경시 SNS서포터즈 기자단의 기사로 문경시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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