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함

세종대왕 막걸리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은 특별함을 더한다. 지역 기반의 희소성을 담은 가치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주에서 오랫동안 변함없는 맛을 이어온 세종대왕막걸리. 그 특별한 맛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다.

글. 두정아 사진. 박시홍


능서막걸리의 새 이름 세종대왕막걸리

여주 세종대왕면 번도리에 있는 330㎡ 규모의 작은 양조장. 내부로 들어서자 구수한 향이 피어올랐다. 여주의 대표 로컬 음식 중 하나인 세종대왕막걸리가 생산되는 현장이다.

“원래 나라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의 이름은 쉽게 사용 못 해요. 특히 상표에 허락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런데 능서면이 세종대왕면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세종대왕막걸리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임금의 이름이 깃든 만큼 오래 이어온 맛을 잘 지켜가고 싶습니다.”

이승덕 사무장은 막걸리 제조의 마지막 단계인 맛과 알코올 도수를 맞추는 제성 작업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오랫동안 능서탁주합동제조장이었다가 능서면이 2021년 세종대왕면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세종대왕탁주합동제조장으로 바뀌었다. 여주를 대표하던 능서막걸리 또한 세종대왕막걸리로 옷을 바꿔 입었다. 상호는 바뀌었지만, 맛은 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세종대왕막걸리는 달지 않으면서 구수하고 뒷맛이 깔끔한 것으로 유명하다.

1. 막걸리의 원료인 고두밥을 살펴보는 이승덕 사무장.

2.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양조장 전경.

“예전에는 막걸리 양조장이 면마다 하나씩 있었어요.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오다 자꾸 넘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시기도 했죠. 그때 그 맛이에요. 사실 맛의 비결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없어요. 과정을 생략하거나 첨가하는 것 없이 그저 정직하게 만드는 겁니다. 요즘에는 단맛을 좋아하는 손님들 입맛에 맞추려고 도수를 낮추고 인공 향을 첨가하기도 하는데요. 우리 막걸리가 단맛은 좀 덜할지 몰라도 옛날 그대로의 맛이라서 오히려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사무장은 “딱 보기에 레시피는 간단해 보여도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막걸리”라며 “세밀한 온도 조절이 관건이라 새벽에도 수시로 온도 확인을 한다”고 말했다. 막걸리는 쌀을 깨끗이 씻어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간 발효시키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는 “고두밥에 누룩을 섞는 입국 작업이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며 “발효가 되면서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데, 이때 사과와 비슷한 향이 난다”고 했다.

세종대왕막걸리의 시작은 100여 년 전으로 추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강천면에 있던 막걸리 양조장이 지금의 위치로 온 것은 1950년대. 이후 합동제조장이 만들어지며 전통 방식의 맛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여주가 고향인 만화가 겸 방송인 기안84(본명 김희민)가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세종대왕막걸리를 마시는 장면.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

막걸리는 많은 국민이 즐기고 향유하는 대중적인 술이다. 여주의 막걸리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주원료로 쓰이는 쌀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막걸리는 지난해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주가 고향인 만화가 겸 방송인 기안84(본명 김희민)가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세종대왕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전파를 탄 것. 당시 비연예인 최초 연예대상을 거머쥐었던 그는 여주로 금의환향해 가족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역시 여주가 쌀이 좋아서 그런지 (막걸리) 맛이 좋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방송 이후 여주 막걸리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이 쏠리며 양조장에 방문객이 늘었다는 후문이다. 현재 세종대왕막걸리는 여주 내 마트로 유통되는데, 단골들은 택배로 주문하기도 한다.

“택배비가 7,000원인데도 멀리서 주문이 많이 와요. 인터넷 주문이 아닌 전화나 문자로 주문해야 함에도 부산 같은 먼 곳에서도 시켜 드시는 분들이 있지요. 막걸리는 출고 후에도 계속 발효가 되기 때문에 택배 배송을 받고 하루쯤 지나고 드시면 딱 좋아요.”

세종대왕막걸리의 유통기한은 20일. 이 사무장은 약 35년 전 짧은 유통기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살균 막걸리 사업을 처음 시도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인지 빛을 보진 못했다. 그는 “요즘 캔막걸리가 해외에도 수출되고 하던데, 그 당시에는 손해가 커서 접어야만 했다”라고 회상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막걸리의 세계화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는 “막걸리는 막걸리답기를 바란다”고 했다.

“막걸리는 대중적이고 서민적이어야 하죠. 고급 마케팅이 단기적인 매출에 큰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글쎄요. 큰 투자금을 들여 양조장을 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닫는 경우를 여럿 봤어요.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지는 거지요.”

현재 세종대왕막걸리 양조장은 단 두 명이 꾸려가고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지속가능성이다. 이 사무장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오랜 명맥이 끊길 처지에 놓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명맥이 끊긴다고 생각하면 속상하죠. 제가 올해 65살인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고요. 한 10년 전에는 막걸리 붐이 확 일어났는데, 요즘은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부디 젊은 분들이 우리의 술, 막걸리의 매력을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info.]

▶ 주소 ‌ ‌여주시 세종대왕면 마장로 79

▶ 문의 ‌031-882-4315

막걸리, 국가무형문화재 넘어 세계문화유산 등재 꿈꾼다

막걸리의 ‘막’은 ‘바로 지금’을, ‘걸리’는 ‘거르다’를 뜻한다. 명칭이 순우리말일 뿐만 아니라 이름 자체에서도 술을 만드는 방식과 그 특징이 드러나 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2021년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했다.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했다. 지난해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단이 출범해 K-전통주를 세계에 알릴 의지를 다졌다. 막걸리는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료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확인되며,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白酒)’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조선 시대 <춘향전>, <광재물보>에서는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으며, <규합총서>, <음식디미방>을 비롯한 각종 조리서에서도 탁한 형태의 막걸리로 즐겼을 법한 술들이 담겨있다. 막걸리는 조선 시대까지 김치, 된장과 같이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발효음식의 하나였다. 막걸리는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의 대명사가 됐다.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같은 품삯을 받더라도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가 맛있는 집으로 일하러 간다’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는 농민의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農酒)로 기능했다. 또한, 막걸리는 예로부터 마을 공동체의 생업·의례·경조사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였다. 오늘날에도 막걸리는 신주(神酒)로서 준공식이나 고사, 개업식 등 여러 행사에 올릴 정도로 관련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참고 자료=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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