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일 전
[부산시보]부산을 걷다 ② 삼락생태공원서 사상역까지
낙동강하구 생태공원의 ‘강변 숲길’은 호젓한 시골길 느낌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추위 또한 매서워지고 풍광은 더욱 삭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낙동강하구 삼락생태공원의 겨울은 앙상하지 않다. 물비늘이 반짝이는 겨울 강은 자연이 뿌려놓은 겨울이야기로 따뜻하다. 갈대 사이로 날아다니는 오목눈이, 참새처럼 작은 새들은 재잘재잘 소란스럽고, 물가에는 청둥오리와 물닭떼가 꽁지를 하늘로 쳐든 채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사람들은 홀로 또는 삼삼오오 잎이 진 수양버들 터널을 걷거나, 강바람 맞으면서 흙길을 달리고, 넓은 잔디밭에서 파크골프를 즐긴다. 철새든 사람이든 자연은 뭇 생명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부산이 가지 않은 길 ‘국가정원’
강변 숲길을 걷노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눠졌다가 강나루길, 버드나무 숲길, 예쁜 오솔길이 이리저리 이어진다. 조용한 사색이 어렵다. 이 길로 가볼까, 저 길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함이 식욕처럼 마구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두 갈래 길 앞에서 혹여 이 시(詩)를 떠올렸다면 아마도 그대는 국어시간만큼은 책상에 엎드려서 자지 않았으리.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은 길’ 중
삼락생태공원에서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궁금함이 땡기는 대로 꼬닥꼬닥 걷다보면 가지 않은 길도 다 걷게 되는 곳이 삼락생태공원이다.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해서, 낙엽 밟은 자취가 없는 길을 걸어보라.
물억새 사이로 난 강나루길을 낙동강과 나란히 걷는다. 강과 참 잘 어울리는 길이다. 걷다보면 사진 찍기 좋은 핫한 포토존이라 싶은 곳엔 꼭 샛길이 있다. 그러면 꼭 샛길로 빠져보자. 강가에 앉아 보온병 속 뜨거운 커피를 따라 두 손으로 꼬옥 쥐고 한참을 ‘물멍(물을 바라 보며 멍 하니 있는 것)’해도 춥지 않으니까. 물멍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다. “삼락생태공원 그냥 두지 머할라꼬? 국가정원으로 지정받으려고 할까?”
우리 시대의 정원을 생각하다
정원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전국적인 히트 상품이 된 이후부터다. 2015년에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8년 울산에서 정원박람회가 열렸고, 제2호 태화강국가정원이 됐다.
순천만국가정원, 태화강국가정원 둘 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관광지를 지향한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세계 5대 연안습지 지역에 조성했다. 울산 태화강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질이 5급수 이하로 죽은 강이었다. 시민과 지자체, 기업이 ‘태화강 살리기’에 나서 2003년 야생생물보호구역, 2008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2019년에 국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두 곳 모두 지역경제 활성화와 생태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에코-투어리즘(생태관광)으로 ‘생태가 경제를 견인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생태환경의 가치를 체험학습하고, 힐링과 휴식,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정원으로 자리잡았다.
우리 삼락생태공원은 어떤가? 2023년 8월에 부산시 1호 지방정원으로 지정했다. 제3호 국가정원을 목표로 한다. 국가정원은 정원 면적이 30만㎡ 이상, 5종 이상 주제별 정원을 갖춰야 한다. 순천만국가정원이 92만6천992㎡(28만 평), 태화강국가정원이 83만5천452㎡(25만평)이다. 삼락생태공원은 250만㎡(76만평)를 낙동강지방정원으로 지정했다. 또 삼락생태공원이 있는 낙동강하구는 여전히 우리나라 최대 철새 도래지로서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에 위치하는 중요한 서식처다.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생태 환경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갈대와 갯버들 군락은 철새들의 주요 서식지로 활용되고 있고, 철새 먹이터와 습지 등이 복원돼 있다. 시민을 위한 체육·여가시설도 들어서 있다. 감전야생화단지는 가드닝 체험·정원교육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미 국가정원 지정 요건을 거의 충족하고 있다.
다만 정원시설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하면 자연을 해치지 않고 관련 시설과 특징적인 주제를 창의적으로 충족하고 리모델링할 지가 고민일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정원은 인위적인 손길을 피할 수 없다.
국가정원은 부산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다. 품격 높은 공간이 많아야 시민이 행복하고, 부산이 글로벌 도시가 될 수 있다.
낙동강 노을에 자꾸만 발길이 잡히다
강나루길이 끝날 즈음에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장소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다. 강은 더 넓어진다. 요트계류장에서 바라본 넓은 강물에 비친 하늘은 붉디붉은 동백꽃 빛깔이다. 동백꽃 노을 하늘에 기러기가 무리지어 날아간다. 갈대 잎이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흔들린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편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여기서는 누구나 시 한 편 정도는 줄줄 나온다. 이른 새벽 물안개가 피어나면 더 예쁘리라.
일전에 밀양에서 보트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바다로 나갔다가 다대포에서 일보고 다시 밀양으로 출퇴근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라고 했더니 어촌계 배는 낙동강 하굿둑 갑문을 통과해서 바다로 왕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요트계류장은 수상레포츠타운이다. 카누, 카약, 딩기요트 같은 것을 배우고 즐길 수 있다. 보트를 타고 샛강 탐사도 한다. 철새가 오가는 11월~3월에는 수상 레저 활동을 금지한다.
겨울 해는 짧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걸음을 재촉한다. 철새 먹이터를 지나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을숙도다. 낙동강 노을에 마음을 빼앗기고 눈길도 빼앗기고 걸음마저 빼앗겨 자꾸만 서쪽 하늘을 쳐다보며 멈추게 된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철새 먹이터는 고요하고 경건하다.
샛강 위 다리에 서서 강 건너 마을을 바라다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라고 노래한 내 젊은 날의 황동규가 생각났다.
자연은 무욕과 무위의 세계다. 인간은 탐욕과 유위를 미덕처럼 삼는다. 두 세계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이다. 자연은 끝없이 우리 인간에게 양보해 왔다.
폭설, 폭우, 폭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상기후. 이제는 생태환경을 지키고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인간이 자연에게 양보할 차례다.
와이래깅교를 건너 다시 도시로
사상역으로 발길을 돌린다.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두런대는 소리를 들으며 감전야생화단지에서 뚝방길로 나가 왼쪽으로 5분 정도 가면 ‘강변나들교’를 만난다.
강변나들교는 삼락생태공원과 부산김해경전철 괘법르네시떼역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다. 길이 268m로 전국에서 제일 긴 육교이다. 부산김해경전철 건설을 맡았던 현대산업개발이 투자해서 지었다.
강변나들교는 재미난 별명이 있다. ‘와이래깅교(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왜 이렇게 긴가?)’다. 와이래깅교를 건너면 서부터미널과 도시철도 2호선 사상역을 만난다. 서부터미널은 다시 저마다의 길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과 기대로 분주하다.
글·원성만 사진·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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