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전남 곡성 인문학 여행, 도림사 청류계곡 바위글씨의 비밀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에 있는 글귀입니다. 직역하면 [ 문자에서는 향기가 나고 책에서는 기운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글은 인성을 향기롭게 만들어주고 책은 지혜를 펼칠 기운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곡성 동악산 도림사 가는 길, 계곡에는 널찍한 반석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한 이곳을 일반적 [도림사 계곡]이라 부르지만 옛날부터 쭉 사용했던 명칭은 청류계곡(淸流)입니다.
계곡에 내려가면 바위에 수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다 한자라서 선조들의 낙서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청류계곡은 그 자체가 자연을 노래하는 시집이며, 성현들의 말씀을 기록한 한 권의 책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푸르른 소나무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류계곡에 씐 고전을 살짝 소개할게요.
차분하게 따라오시면 마음이 한결 맑아지고 기운이 차오를 것입니다.
도림사(道林寺)라는 이름은 도인이 숲을 이룬다는 뜻인데 어쩌면 '도(道)가 숲을 이룬다'로 해석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류계곡에 새겨진 글귀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어록도 있지만 주희( (朱憙)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주자'라는 이름이 훨씬 더 쉽게 와닿는 중국의 대학자입니다. 주희는 중국 남송 출신으로 1130년에 태어났습니다. 공자. 맹자. 증자 등의 어록을 모아 '성리학'이란 이름으로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성리학을 주자학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니 조선 사대부들에게 있어 주희는 이념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주자는 말년에 중국 푸첸성 무이산 깊은 골짜기인 구곡에 은거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습니다. 바위에 씐 글귀를 살펴보면 청류동 계곡을 주희가 살았던 무이구곡( 武夷九曲)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곳을 성리학에서 꿈꾸는 이상향으로 여기며 용기를 얻고 위안을 삼기 위해 글씨를 새겼던 것입니다. 도림사 일주문 근처가 일곡(一曲)입니다. 상류를 향해 차례로 구곡(九曲)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서 곡은 골곡(谷)이 아닌 굽을(曲) 임을 참고하십시오.
구곡에 새겨진 주요한 글자들과 그것을 새긴 의미를 죄다 나열한다면 단행본 한 권 이상의 분량입니다. 그러니 눈에 띄는 글귀 몇 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을 통해 청류계곡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반석 지대로 이루어진 사곡(四曲)과 오곡(五曲)은 가장 많은 글귀가 새겨져 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주희(朱熹)는 무이구곡(武夷九曲)중 오곡(五曲)에 무이정사를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무이구곡의 산수를 도학(주자학. 성리학)에 비유하는 내용의 글들을 주로 썼습니다. 그 글들이 청류계곡 오곡과 사곡에도 새겨져 있는데 찬찬히 음미해 보면 마치 글자로 그린 한 폭의 산수화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削成蒼石稜 倒影寒潭碧 永日靜垂竿 玆心竟誰識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이끼 낀 기암괴석 차가운 연못에 푸른 그림자를 떨구었네. 온종일 유유자적 낚시를 드리우는 이 편안한 마음을 뉘라서 알리오. |
부근에 ‘서산강론(西山講論)’이라는 글귀도 눈길을 끕니다. 주희는 당대의 대학자 채원정과 절친하게 지냈는데, 그와 유쾌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風月平生意, 江湖自在身 年華供轉徙, 眼界得清新 試問西山雨, 何如湘水春 悠然一長嘯, 絕妙兩無倫 평생 품었던 청풍명월의 뜻을 이뤄, 유유자적 강호에서 살고 있네. 늙은 놈이 이게 웬 청승인가 싶겠지만, 마치 청춘으로 돌아간 듯하네. 별 뜻 없이 묻는데 서산에 비가 오면, 상수의 봄은 어찌 될 것인가. 그대가 긴 휘파람으로 대답을 대신하니 우린 진정 벗일세. |
청류계곡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오곡(五曲) 요요대(樂樂臺) 부근일 것입니다. 요요대는 주희를 인용한 것이 아니고 논어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아는 공자님 말씀을 축약한 것입니다.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動) 하고 어진 자는 정(靜) 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장수한다. |
잠시 도림사로 올라가 봅니다. 도림사는 많이 알려져 있는 절인데도, 전반적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산사입니다. 들어가는 입구 현판 글씨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의제 허백련의 작품입니다. 허백련 그는 누구일까요?
허백련(許百鍊)의 호는 의제(毅齋)입니다. 남종화의 화맥을 잇는 호남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당대 유행하던 새로운 기법에 한눈을 팔지 않고 전통기법만을 고집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서는 전통 남종화 정신과 기법이 돋보이면서도 독창성이 엿보입니다. 허백련은 섬진강과 청류계곡을 좋아하여 곡성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 인연으로 도림사 산문에 이렇게 멋진 작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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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사에는 보물 1341호로 지정된 괘불탱과 유형문화재 271호로 지정된 보광전 목조 아미타삼존불좌상이 있습니다. 당대를 풍미하던 화승(畵僧)에 의해서 제작된 괘불탱은 불교 미술의 빼어난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도림사는 '고즈넉한 산사'라는 표현이 그대로인 절집입니다.
도림사 후문으로 나와 청류계곡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6곡, 7곡, 8곡이 잇따라 등장합니다. 그런데 등산로 옆에 바위에 고승들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일종의 방명록입니다. 이분들이 이곳을 다녀가셨다는 표시입니다.
元曉祖師, 義湘大師, 尹弼居士, 道詵國師, 智還大師, 南破大師, 訥峰大師, 靈山大師, 虛舟禪師, 片月大師, 龍珊大師, 春峯大師' (원효조사, 의상대사, 윤필 거사, 도선국사, 지환 대사, 남파 대사, 납봉대사, 영산대사,허주선사,용산대사, 춘봉대사) |
그중 원효대사, 의상대사와 더불어 윤필거사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윤필거사는 스님은 아니고 신라의 유학자인데 거의 도인의 반열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함께 당나라 유학을 떠나는 과정에서 겪은 해골 사건 이전까지 이 세 사람은 전국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도를 닦았습니다. 서울 북한산과 관악산에도 그들의 자취가 서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동악산에 들어와 형제봉 아래 길상암 자리에서 움막을 짓고 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들이 깨달음을 얻자 산이 풍악을 울렸다고 하여 동악산입니다.
청류계곡의 클라이맥스는 도림사에서 상류 방향으로 150미터가량 오르면 널찍한 반석과 함께 제법 깊은 소가 나타납니다. 이곳 바위에도 수많은 글씨들이 빼꼭하게 씌어 있습니다.
百世淸風 백세청풍 백세에 걸쳐 부는 맑은 바람 영원토록 후세인들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주희가 쓴 중국 고대의 지사인 백이와 숙제의 묘비명에 들어 있는 문구입니다.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은나라 고죽국 왕자들인데 왕을 하지 않겠다며 은둔해 버렸습니다. 주나라 문왕이 죽자 그 아들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려고 하자 백이와 숙제가 나서 말고삐를 붙들고 전쟁을 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으나 무왕이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은나라를 정복하자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결국 굶어 죽었습니다. 조상께 제사를 지내는 한식(寒食)의 유래가 그들을 추모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널찍한 반석에는 주희(朱熹)의 차관폭포운(次觀瀑布韻) 이라는 시가 힘 있는 필체로 새겨져 있습니다.
快瀉蒼崖一道泉 白龍飛下鬱藍天 空山有此眞奇觀 倚杖來看思凜然 푸른 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 백룡이 푸른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듯 텅 빈 산에 이처럼 기막힌 장관이 있으니 지팡이 짚고 바라보는 마음이 활짝 열리네. |
해동무이 海東武夷는 곡성 동악산 청류계곡에 펼쳐진 구곡(九曲)이 주희가 살았던 무이구곡의 우리나라 버전이라는 뜻입니다.
청류계곡에는 시와 경구 외에 줄잡아 100명이 넘는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데 참여했거나 글을 인용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글씨를 새기는 일은 1880년부터 시작하여 1921년까지 40년에 걸쳐 계속됩니다. 고종황제도 친필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한말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면서 나중에 의병의 선봉에선 최익현이나 기우만 같은 인물들도 글씨를 새기고 있던 시절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바위글씨에서 그 이름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순태.정일우. 조병순. 김정호는 바위 글씨를 새기는 일을 주도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곡성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존경받는 선비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굳이 이러한 이유는 망국의 아픔으로 몸서리치던 혼돈의 시기에 성현의 경구로 마음을 다지고 일제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일은 용인될 수 없지만 당시 시대상을 되돌아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청류 계곡의 글씨들도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따라서 왜 청류계곡에 글씨를 새기고 무엇을 도모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청류계곡은 그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씐 한 권의 책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이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서권기(書券氣)가 주는
충만한 기운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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