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시간 전
선비의 뜻을 담은 공간, 영천 선원마을 함계정사 탐방기
4월, 봄볕이 따사롭고 바람 끝이 부드럽게 불어오던 날.
저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위치한 선원마을 함계정사를 다녀왔어요.
선원마을은 2009년 농촌진흥청에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로
지정됐을만큼 산과 강변과 마을이 아름답게 배치된 곳이죠.
입춘이 지나 꽃망울이 터지는 4월, 산벚꽃과 개나리 사이를 지나 선원천을 건너 보이는 곳에 바로 함계정사가 있어요.
함계정사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정석달(鄭碩達, 1660~1720)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닦기 위해
1702년(숙종 28)에 지은 건물이에요. 그리고 이곳은 선원마을의 입구로 선원천과 너른 들판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죠.
함계정사는 원래 ‘안락재(安樂齋)’라는 이름이었으나, 1779년(정조 3)에
그의 손자인 정일찬이 다시 짓고 ‘함계정사’로 이름을 고쳤다고 해요.
이 이름은 계곡 속의 고요한 물처럼 깊고 넓은 학문과 인품을 상징하는 것이죠.
봄날의 햇살을 받은 함계정사는 조용하면서도 단아했어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죠.
툇마루는 남향으로 놓였고, 난간에는 아름다운 계자각(鷄子角) 난간이 둘러져 있었어요.
‘계자각(鷄子角)’은 계란의 곡선과 모서리를 본뜬 형태로 마감된 난간 구조를 의미해요.
전통 한옥 건축에서 툇마루 앞이나 정자의 외곽에 설치되는 난간은 보통 직선적이지만,
계자각 난간은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과 각이 어우러진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이죠.
눈에 띄는 건 양 옆 끝에 설치된 홍살 형식의 가림벽. 다른 정사에선 잘 보이지 않는 독특한 구조물이었어요.
‘홍살(紅箭)’은 일반적으로 사당이나 정문 앞에 세우는 붉은 창살 형태의 장식으로,
신성하거나 속세와 구분되는 공간임을 알리는 기능을 해요.
하지만 함계정사에서는 정자 건물의 툇마루 가장자리, 즉 실제 통행 공간을 차단하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어
기능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매우 이례적인 구조라 할 수 있어요.
함계정사는 1990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되었어요.
이후 관리와 보수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문중에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죠.
함계정사를 둘러본 뒤 마을을 조금 더 걸었는데 봄빛을 머금은 산수유가 피어나고,
뒷산 학산은 여전히 마을을 감싸고 있죠.
‘선원’이라는 지명은 실제로 도연명의 무릉도원에서 따왔다고 해요.
입향조 정호례가 이 땅을 보고, 마치 신선의 근원 같은 곳이라며 붙인 이름이죠.
정호례의 손자인 정석달이 학문을 펼친 함계정사,
그리고 그 뒤로는 아들·손자들이 세거하며 형성한 선원마을의 풍경이 이곳에 있어요.
함계정사 옆에는 마을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고, 거기서 선원천의 풍경을 즐길 수가 있죠.
굵은 가지마다 작은 새싹이 돋기 시작했고, 나뭇가지 위에는 새들이 만든 둥지가 곳곳에 걸려 있었어요.
이 은행나무는 수령 약 200년 이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는 ‘할아버지 나무’라 불리며
지금도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어요. 그리고 함계정사와 함께 마을의 역사와 계절을 함께 지켜온 존재이죠.
따뜻한 봄볕 아래 걷는 선원마을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
그리고 그 중심에 단정히 자리한 함계정사가 자리잡고 있어요.
정석달 선생의 학문과 인품이 스며든 이 정자는 지금도 여전히 고요하게 서, 선원천과 마을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밟아본 오늘, 선비의 삶과 사유를 품었던 공간에서 잠시 멈춰 서 보았습니다.
봄날의 산책이 어울리는 곳, 영천 선원마을 함계정사. 여러분도 꼭 한 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려요.
함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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