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충신 충렬공 박제상 유적지 탐방하기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리는 박제상 유적지가 바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랍니다.
박제상 유적지인 치산 서원과 관련된 은을암, 망부석 총 3곳이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박제상 유적지인 치산 서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제상 유적지는 울산 울주군 두동면에 위치해있습니다. 유적지 바로 앞에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어 편하게 주차 가능했습니다.
주차 후 다리를 건너가면서 보이는 박제상 유적지는 산에 둘러싸여 있는 게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들어가기 전 간단하게 지도부터 확인해 보았는데요.
지금 들어가는 곳인 치산 서원 말고도 기념관과 추모비 삼모녀상 등 꽤 넓게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박제상 유적지(=치산 서원지)는 치산 서원의 옛 터입니다. 이 서원은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 및 두 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영조 21년에 건립되었는데,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습니다.
서원 안에는 박제상을 모신 충렬묘와 그 부인을 모신 신모사, 두 딸을 모신 쌍정려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부터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 서원의 건물 배치는 강당 뒤에 사당을 둔 전학후묘형으로 서원의 일반적인 해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충렬묘와 신모사, 쌍정려 등 3동의 사당을 나란히 배치하여 사당 군을 이룬 것은 박제상 관련 이야기를 반영한 독특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산 서원을 들어서면 강당인 관설당이 보이는데요. 관설당은 박제상의 시호를 따서 명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강당을 지나 이 뒤쪽으로 가면 박제상과 부인 및 두 딸의 사당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박제상의 부인인 금교 김 씨의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망해문이라고 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문으로 망부석과 연결이 되는 느낌입니다. 사당 이름은 신모사입니다.
후세에 그녀의 절개를 높이사서 치술산의 신모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다음 박제상의 두 딸의 영정을 모시는 쌍정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관설당 뒤편 성인문을 따라 들어가면 바로 박제상의 사당을 볼 수 있습니다.
정면에 있는 게 박제상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충렬묘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곳이 매년 3월 향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에 향사에 사용하는 제기와 도구를 보관한다고 합니다.
치산 서원을 관람한 후 옆문을 지나면 충렬공 박제상 기념관으로 갈 수 있습니다.
충렬공 박제상 기념관 관람 정보
관람시간 09:30 ~ 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설·추석 당일/ 공휴일 익일
관람료 무료
박제상 기념관을 들어가기 전 입구에 보시면 삼모녀상도 볼 수 있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영상실과 전시실이 있었는데, 전시실만 관람 가능했습니다.
전시실은 총 두 곳으로, 박제상 전시실과 울주군 전시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박제상이 살았던 4~5세기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요.
4세기 말 광개토 대왕의 즉위와 함께 고구려가 당시 한반도의 맹주로 군림하게 되었는데요.
신라는 고구려의 복속국으로 고구려의 보호 아래 안정적 발전을 이룩해 나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박제상의 충심을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쉽게 풀이해 있었는데요.
약소국이었던 신라의 실성왕은 고구려와 왜에 각각 눌지왕의 동생인 복호와 미사흔을 볼모로 보내게 됩니다. 눌지왕 재위 후 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박제상에게 청하게 됩니다.
박제상은 먼저 고구려로 가 장수왕을 설득해 복호를 구출하여 돌아오자마자 왜의 미사흔까지 구출해오라는 명을 받들고 왜로 가게 됩니다.
왜로 간 박제상은 미사흔의 구출에는 성공하였으나 자신은 붙잡히고 맙니다. 왜왕은 박제상을 신하로 삼기 위해 회유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신라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순국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눌지왕은 박제상을 대아찬에 추증하고 부인을 국대부인으로 책봉하였으며, 그의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하였습니다. 이후 신라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며, 유교국가인 조선에 와서 다시금 그 정신이 조명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제상 부인의 이야기인 망부석과 은을암에 대한 이야기도 알 수 있었는데요.
박제상 부인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순절한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몸은 화석이 되어 망부석이 되고 넋은 새가 되어 은을암에 숨었다고 합니다. 또 큰 딸 아기와 막내딸 아경도 어머니를 따라 죽어 화석이 되니 망부석 좌우에 두 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시실을 나와 뒤로 가면 박제상 추모비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치산 서원 관람 후 망부석과 은을암까지도 근처에 있으니 함께 방문해 보시면 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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