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구 병영만세운동의 역사, 삼일사
안녕하십니까, 이번 9월 한 달 울산 중구의 가볼 만한 곳들에 의해 숨겨진 숨은 명소들을 찾아 활동하고 있는 제3기 중구 소셜미디어 기자단 오준서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제를 선점하다가 우리 블로그 개설이래 소셜미디어기자단을 통해 단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울산 중구 병영지역에 대한 그리고 병영3·1만세운동의 역사를 지닌 삼일사에 다녀왔습니다.
울산 시내버스 타고
삼일사 찾아가는 방법
병영1동행정복지센터(병영사거리 방면, 40503)
- 132, 203, 205, 225, 226, 233, 235, 246, 256, 266, 402, 412, 421, 432, 442, 453, 701, 714, 913번
☞ 이 정류장은 달천회관, 농소공영차고지, 모화, 대안, 매곡, 월성원자력홍보관 등에서 출발해 꽃바위, 들꽃학습원, 덕하공영차고지, 남부노인복지관, 장생포, 울산과학기술원, 용연, 율리공영차고지, 태화강역, 덕계 등 방면으로 운행하는 울산시내버스 노선들이 정차하는 정류장입니다.
병영사거리(현대골든아파트앞 방면, 40506)
- 132, 203, 205, 225, 226, 233, 235, 246, 256, 266, 402, 412, 421, 432, 442, 453, 701, 714, 912, 913, 1127, 1147, 5003번
☞ 이 정류장은 꽃바위, 들꽃학습원, 덕하공영차고지, 남부노인복지관, 장생포, 울산과학기술원, 용연, 율리공영차고지, 태화강역, 덕계, 부산 노포동역 등에서 출발해 달천회관, 농소공영차고지, 모화, 대안, 매곡, 월성원자력홍보관 등 방면으로 운행하는 울산시내버스 노선들이 정차하는 정류장입니다.
병영초등학교입구(제니유치원 방면, 24903)
병영초등학교입구(병영성 방면, 24904)
- 912, 942번
병영사거리에서 병영성 쪽으로 올라와 병영초등학교가 보이는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올라오면 병영삼일사당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삼일사 입구가 보이는데 삼일사 입구에 오면 먼저 빨간색 글씨로 새겨진 삼일사 충혼비를 볼 수 있습니다.
삼일사 충혼비는 국가보훈부에서 지정한 현충시설로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의 당시 가장 치열했던 병영지역에서의 한을 품고 순국한 엄준, 문성초, 주사문, 김응룡 등 네 분의 투사들과 투옥하신 애국지사 스물두 분의 업적을 기리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도 조국을 지키기 위한 그 정신과 겨레에 대한 자유정신을 세계에 선포하고자 그리고 병영지역의 청년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하던 모습과 그 역사를 후세들에게 전하고자 한글학자이시자 독립운동가이신 최현배 선생이 직접 글을 지었고, 그 글을 조원규가 비에 새겨 1967년 4월 5일 병영삼일사 재건 기성회(현재 울산병영삼일사 봉제회)가 세운 충혼비입니다.
삼일사 충혼비에는 이 비를 세운 기록과 더불어 병영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거나 육체에 가하는 형벌인 태형 등 형벌에 임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삼일사에 대한 안내를 받고자 잠시 울산병영삼일사 봉제회 관계자분을 만나 뵙기 위해 기다리던 중 봉제회 사무실 앞 한 쪽 벽면에는 1919년 4월 5일 그날의 함성을 나타내는 벽화가 한 폭 그려져 있었습니다.
누구는 당시 학교 교복을 입고 있고 또 다른 누구는 흰색 두루마기와 검은색 치맛 저고리를 입고 있는 등 당시 병영이라는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음을 잘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습니다.
한편 그날의 함성을 재현하기 위한 만세운동재현행사가 매년 울산 병영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이처럼 울산에는 이러한 만세운동이 전개된 지역이 꽤 있습니다. 울산 중구 병영지역을 비롯하여 울산 울주군 남창, 언양 등 당시 울산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답니다.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지역들 중에서 울산 중구 병영지역 독립운동에 참여하신 투사, 애국지사님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봉안시설이 바로 오늘 이 글을 빌려 함께 살펴보고 있는 삼일사입니다.
삼일사는 현재 지자체가 아닌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는 울산병영삼일사 봉제회라는 사조직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매우 유감스럽게도 네이버 포털에 ‘삼일사’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바 이곳은 불교와 같은 종교시설이 아닌 독립투사 또는 독립애국지사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봉안시설 또는 현충시설이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바로잡고자 합니다.
삼일사 본당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던 중 봉제회 관계자님의 설명이 없으셨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뻔한 기둥들이 있었습니다.
삼일사에 세워진 이 기둥들은 삼일사 대문에 그려진 태극문양을 받치는 건곤감리를 나타내는 형상으로 자세히 보시면 기둥 중간중간 투박하게 나타나있는 검은색 대리석들이 태극기에 그려진 건곤감리를 실감 나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삼일사에 처음 와본지라 삼일사라는 현충시설이 있다는 점에 한 번 놀랐고 이러한 기둥들이 건곤감리를 나타낸다는 점에 두 번 놀랐습니다.
기둥마다 마다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여 세워진 것으로 보아 과연 삼일사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현충시설임은 분명했습니다.
삼일사에는 현재 스물여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 중 제일 먼저 일제의 탄압에 의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운동을 펼치다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신 엄준, 주사문, 문성초, 김응룡 열사님.
그리고 위 네 분의 열사와 함께 옥고를 치른 이현우, 이종욱, 이종근, 이문조, 황정달, 이종필, 김장수, 양석룡, 이종룡, 최금석, 김재수, 서무출, 이홍준, 최현표, 김송근, 윤학이, 백봉근, 최현구, 박규환, 권석운, 최원득, 이근복 지사님 등 스물두 분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순국한 네 분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엄준 열사님은 부모처자도 없이 외롭고 가난하게 생활하던 중 병영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병영 의거에 적극 참여하여 일신학교 교정에서 수처 군종과 만세시위를 하시며 성내로 행진 중 일군 수비대에 의해 일부 동지가 체포되자 해산하였다가 다음 날 다시 일신학교 부근에 많은 군중을 모아 주재소로 쳐들어가 구금된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강행하던 중 일 군경과 충돌 끝에 왜경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셨습니다.
이어 주사문 열사님은 병영에서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맹렬히 활동하신 인물로 1919년 4월 5일 수천 시위 군중과 함께 병영주재소에 돌진하여 체포된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무자비하게 발포된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문서초 열사님은 1919년 4월 4일 지금의 병영초등학교(당시의 일신학교) 교정에서 수백 군중들과 함께 성내로 시위행진 중 무장경찰과 일군수비대의 난폭한 제지로 주도하던 몇 사람들이 체포된 채 해산하였고 다음 날 다시 더 많은 군중을 모아 삽과 괭이를 들고 기세를 높이며 병영주재소로 쳐들어가 체포된 이들을 구출하려다가 주둔 일군수비대와 격돌하여 수비대 지휘자의 장총을 탈취하려다가 적탄에 맞아 순국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응룡 열사님입니다. 이 분 또한 앞서 살펴본 세 분의 열사님과 함께 병영주재소를 습격하여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던 중 일본수비대와 경찰과 격돌하여 잔인무도하면서도 무차별적으로 발포한 흉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순국하신 인물입니다.
이처럼 삼일사 봉제당에는 같은 상황 속에 직면하시어 모두 한자리에서 순국하신 네 분 열사님들의 위패를 조금은 특별하게 모시고 있었습니다.
삼일사에 모셔져 있는 스물 여섯 분의 위패들 가운데 그나마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애국지사가 있다면 단연 외솔 최현배 선생의 동생이신 최현구 애국지사가 아닐까 합니다.
최현구 애국지사 역시나 위의 네 분 열사들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절규하면서 수천 군중들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분으로 울산읍에서 경찰과 일수비대들이 쇄도하여 포악무도하게 실탄 사격을 함으로써 열사들이 순국하신 그 현장에서 체포되어 울산경찰서로 압송되어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그 후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판결을 받았고고 이에 불복하여 대구 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공소기각으로 대구 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른 바 있습니다.
오늘날 정부에서는 병영 3·1만세운동과 관련된 오늘날의 현황으로 애국열사 그리고 애국지사들에 대한 국가포상을 수여하여 병영 26위 열·지사에 대한 국가포상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이 포상은 지난 1968년 이현우 지사의 장남 이일호 님의 신청으로 부친에 대한 대통령 표창을 시작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생존자 한 분께서도 포상을 신청하려 했으나 포상을 실시하기 위한 공적이 낮다 판단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이후 공적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태형 90도의 희생자에게도 국가포상이 이루어지는 사례도 있었답니다.
건국훈장 애국장 : 문성초, 이종근, 주사문, 김응룡
건국훈장 애족장 : 이종욱, 이종근, 황정달, 이종필, 이문조, 김장수, 최현구
대통령 표창 : 이현우, 문성초, 이종근, 이종욱, 엄준, 주사문, 김응룡, 양석룡, 최금석, 이종룡, 이홍준, 김재수, 권석운, 최현표, 백봉근, 윤학이, 김송근, 최원득, 이근복, 서무출, 박규환
그 외에도 삼일사에는 1919년 4월 6일을 즈음하여 울산만세운동 당시의 보도문(매일신보)과(와) 제적등본과 수형량을 기록해놓은 병영 26열·지사 약력 카드와 병영 3·1항쟁의 실상을 담은 병영만세운동 영상 시나리오 등 울산 중구 병영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했던 3·1만세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 등을 담은 여러 박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병영삼일사는 울산 경상좌도병영성과도 인접한 위치에 있으며 외솔 최현배기념관과 생가터 그리고 외솔한옥도서관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울산 중구에 대한 역사를 학습하기 위해 찾는 일반인 방문객들을 비롯하여 요 근래에 들어서는 삼일사 바로 앞에 있는 병영초등학교에서 지역 역사탐방 겸 현장학습 차원에서 이곳 병영삼일사를 자주 방문하고 있답니다.
이제 우리 블로그를 통해서 삼일사를 제일 처음으로 알려드렸으니 우리 블로그를 통해서 삼일사에 대한 정보를 얻으신 분들의 많은 방문을 바라며 앞으로 울산 중구 병영이라는 이 지역 주민들만이 아는 곳이 아닌 울산 중구의 역사 하물며 더 나아가 울산의 역사하면 역시나 마찬가지로 병영삼일사가 상기되는 기대효과를 바라보면서 삼일사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이 글을 빌려 삼일사에 모셔져 있는 총 26위의 애국열사 그리고 애국지사님들의 그 위대한 업적과 희생에 한없는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바쁘신 가운데 이 글의 발행을 위하여 취재에 협조해 주신 울산병영삼일사 봉제회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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