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내순례길, 새벽에 걸어보는 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내순례길,
새벽에 걸어보는 한국의 산티아고
한국 천주교 역사상 많은 신자와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교 성지가 있고, 한국의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당진의 버그내 순례길이 있습니다. 순교와 박해의 역사가 서린 곳으로 내포 천주교 문화유산과 연결되는 버그내 순례길입니다.
당진 문화유산 야행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문화재에서의 하룻밤 "야숙" 이 사전에 야숙객을 모집하여 야행 중에 진행되었습니다. 야숙객들은 합덕성당 순례자의 집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버그내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버그내 순례길을 함께 걸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동행할 생각으로 새벽에 합덕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지만 안개 걷히며 새벽을 여는 합덕성당의 하늘은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순례자의 집에서 1박한 순례객들이 벌써 모여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은 어쩌면 결연한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일찍 도착하여 순례객들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던 이영화 당진시 문화 관광해설사의 인사로 버그내 순례길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해설사를 동반한 순례길은 천주교 역사와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합덕성당에서 출발하여 서야 고등학교 뒷길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합덕 농촌테마공원을 지나 합덕제를 만납니다. 합덕제에서 합덕성당을 바라보고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합덕제 풍경을 보며 설명을 듣습니다.
새벽에 걷는 길은 조용하고 그저 순례객들의 발소리 만이 들립니다. 걸으며 설명하는 이영화 해설사님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대단합니다. 가쁜 걸음으로 쫓아가기 바쁜 나의 거친 숨소리와 비교됩니다.
합덕제 중수비를 향하여 걷는 길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한 풍경입니다.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들판에는 벌써 익어가고 있는 벼 이삭으로 노란 들판이 안개와 더불어 아름답습니다.
쉬어가는 쉼터의 나무와 반짝이는 강아지풀도 순례객들에게 아름다움과 마음의 쉼을 줍니다. 순례객의 뒤를 따라가는 나의 발걸음은 자꾸 느려집니다. 주위를 돌아보며 따라가려니 점점 숨이 찹니다.
합덕제 중수비에 도착하여 버그내순례길 스탬프를 찍습니다. 합덕제 중수비는 1800년 이후 합덕제 중수를 기록한 비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재의 지역으로 모아 놓았습니다.
8개의 중수비 중 정조 24년 봄에 건립한 연제 중수비가 가장 오래된 비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당진의 버그내 순례길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창기부터 이용되었던 순교자들의 길이었고 신앙의 선배들이 걸었던 순례길입니다. 내륙 깊숙이 포구가 형성되었던 삽교천의 물줄기를 중심으로 내포의 사도라 불렸던 이존창 루도비코의 탄생지 및 활동지였습니다.
그리고 성 김대건 신부 집안의 신앙이 꽃피웠던 곳으로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로이며 활동 무대였던 곳이 버그내 순례길입니다.
버그내순례길을 걷다 보면 버그내 순례길을 안내하는 물고기 모양의 표지를 볼 수 있는데 고대 로마시대부터 예수를 상징했다는 물고기 모양입니다.
원시장 · 원시보 우물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성동리 출신인 원시장 베드로는 내포지역의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 1791년 체포되어 천주 신앙을 끝까지 고백하다가 감옥에서 순교하고 사촌인 원시보 야고보 역시 1788년 청주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성동리에서 가장 오래된 샘으로 알려진 우물은 순교자들이 마셔온 생명의 샘으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영혼의 쉼터가 됩니다.
해설을 들으며 계속 걷기만 하던 순례객들이 한숨 쉬어갑니다. 해설사님의 소개로 각지에서 모인 순례객들이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서로 같은 성당에서 오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서로 모르다가 인사를 하고 난 후로 할 이야기들이 많아졌습니다.
천주교인이 대부분이었고 종교와 상관없이 참여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원시장 · 원시보 우물터에서 다시 무명 순교자의 묘를 향해 마을 길을 걷습니다. 이른 아침 낯선 이들의 발소리에 개들이 놀라 짖어댑니다.
두 마리의 개들에게 너희들도 너의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놀라게 한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동네를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넝쿨 지어 달려 있는 호박도 볼 수 있고 길가에 보석처럼 빛나는 분홍빛 상사화도 볼 수 있습니다. 해설사님이 놓치지 않고 상사화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해님이 떠오르며 높아지는 기온에 땀을 뚝뚝 흘리며 걷는 순례길은 순교자들이 겪었을 또 다른 고통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순례길 코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과수원을 거쳐 콩밭 길을 지나 무명 순교자의 묘에 도착하였습니다.
순교자 교우들의 유해가 안장된 무명 순교자의 묘에는 붉은 백일홍이 만발하여 순례객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원래 마을 어귀에 산재했던 무덤들을 1972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파묘하고 이장하여 지금의 자리에 안장되었습니다.
목이 없는 시신과 썩어 부서진 묵주와 십자가가 무덤마다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신리성지로 출발합니다.
신리성지를 거쳐 출발지인 합덕성당으로 돌아가 버그내순례길의 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백일홍의 붉은빛이 순교자들의 고통으로 오버랩됩니다. 순교자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버그내 순례길을 걷는 동안 순교자들의 삶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땀을 흘리며 나의 삶을 생각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픔을 겪으면서도 지켜야 했던 순교자들의 삶은 우리에게는 어떤 가치인지 생각합니다. 당진의 버그내순례길에서 마음의 힘을 키워 가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합덕성당
- 당진시 합덕읍 합덕성당 2길 22
* 합덕제
- 당진시 합덕읍 덕평로 379-9
* 합덕제 중수비
- 당진시 합덕읍 대합덕로 614-1
*원시장· 원시보 우물터
-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340
* 무명 순교자의 묘
-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 21
* 신리성지
- 당진시 합덕읍 평야 6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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