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첫 개인전 연 조영훈 화가

일평생 관노가면극만 그릴래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인생이 무의미하게 흘러갔을 거라는 조영훈 화가.

그는 특히 강릉단오제의 관노가면극에 고마움을 전한다. 세 살 때 처음 본 관노가면극에 푹 빠져 일평생 관노가면극만 그리겠다고 결심한 조영훈 화가를 만났다.

김은현(편집 자문위원) | 사진 황주성(명예기자)

그림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창구이자 동아줄

발달장애가 있는 조영훈 화가는 세 살 때 관노가면극을 처음 본 후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그때부터 관노가면극을 그리기 시작했고 3년 전부터는 직접 관노가면극을 배우고 있다. 지난해엔 첫 개인전을 열고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고 굿즈로 제작해 소개했다.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행복 중 하나일 것이다. 세 살 때 처음 관노가면극을 본 후그 매력에 빠져들고, 일평생 관노가면극을 그리는 작가가 된 조영훈 화가를 만났다. 발달장애가 있는 그에게 그림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창구이자 ‘동아줄’이라고 말한다.

세 살 때 부모님 손을 꼭 잡고 놀러 간 단오장에서 관노가면극을 처음 본 조영훈 화가는 첫눈에 빠져들었다. 양반탈과 각시탈을 쓰고 춤을 추고, 시시딱딱이가 둘 사이를 훼방하는 장면이 어린 그의 눈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눈에 담은 관노가면극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 그는 손에 붓을 쥐면 언제나 좋아하는 관노가면극을 그렸다. “시시딱딱이가 각시를 ‘아이스케키’ 하고 도망가는 게 재미있어요. 시시딱딱이가 양반과 각시를 끌어당기고 춤을 추는 게 좋아요.” 관노가면극을 이야기할 때면 조영훈 화가의 눈은 반짝인다. 아직 의사소통은 서툴고,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긴 어렵지만, 관노가면극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관노가면극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강릉단오제가 열리면 매일 출근하듯 단오장을 찾아 관노가면극을 보고 또 봤다. 수없이 봤지만, 볼 때마다 그에게는 조금씩 다른 극이고, 매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부모님은 농악 등 다른 공연들도 봤으면 싶지만 이내 곧 흥미를 잃고, 관노가면극을 공연하는 곳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그림이라는 창구로 세상과 소통

발달장애가 있는 조영훈 화가는 아홉 살 때 말이 트이기 전까지 그림으로 주로 소통했다. “영훈이는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해요.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햄버거를 그려서 주고, 휴대전화가 갖고 싶으면 전화기 모양을 크게 그려서 귀에 갖다 대요. 장애가 있다 보니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림이라는 창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어머니 채소희 씨는 아이에게 그림이라는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꿈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방문 미술은 다양한 걸 가르치고 싶은 선생님과 달리 아이는 관노가면극만 그리고 싶어 해 결국 그만두긴 했다.주로 혼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강릉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장애 아동·청소년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프로젝트 AB’에서 멘토로 최윤정 화가를 만났다. 강릉 출신으로 ‘관동 산수’를 그리는 최윤정 화가는 조영훈 화가가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펼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왔다. “아이가 관노가면극만 그려도 괜찮을까 싶고, 아크릴 물감이 뭉치니 펴 바르라고 조언하곤 했는데, 최윤정 화가님이 영훈이만의 특징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엄마 처지에서는 이런저런 걱정이 드는데, 영훈이가 자신만의 방향성을 잘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꿈을 향해 가는 길목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는 고마운 이들이 있어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관노가면극 직접 배우며 꿈을 찾다

그림뿐 아니라 3년 전부터는 직접 관노가면극도 배우고 있다. 강릉단오제 보존회 소속 청소년 관노가면극 전수단체 ‘JOM 아라’에 들어가 악기도 배우고, 공연도 하며 관노가면극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관노가면극 이수자인 김문겸 선생님께서 영훈이가 관노가면극을 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배울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머리로는 관노가면극을 꿰고 있지만, 몸이 잘 따라주진 않긴 해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결국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가 소속된 청소년 관노가면극 팀은 지난2022년 대한민국 청소년 탈춤 축제 한마당에서 대상을 받는 등 전국적으로 관노가면극을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2년 전부터는 강릉단오제 ‘신통 대길 길놀이’에도 관노가면극 복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구경만 하고 따라다니던 길놀이에 직접 참여하니 조영훈 화가에게는 신나고 꿈같은 시간이다. 관노가면극 전수자가 되어 평생 관노가면극을 공연하고, 그림을 그리는 게 그의 꿈이다.

“한순간 사로잡혀 일생을 바치겠다”

지난해 연말에는 강릉 ‘갤러리 초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고, 굿즈들로 제작해 소개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며 관노가면극을 만나고 새로 발견했다. 매년 개인전을 열어 관노가면극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다. ‘한순간에 사로잡혀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라는 팸플릿 문구는 조영훈 화가의 동생이 지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와 찰떡인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성인이 된 그는 현재 강릉시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하루 세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관노가면극이 아닌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그에겐 꿈을 향해 가는 징검다리 같은 시간이다. “〈해님 달님〉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저는 그림이라는 동아줄을 잡았기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거예요. 나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흘러가지 않게 붙잡아주어서 고맙습니다. ”전통은 붙잡고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더욱 소중하게 빛난다. 좋아하는 꿈과 전통을 굳게 잡은 그의 단단한 꿈이 해마다 영글어가길 함께 응원해 본다.

매년 개인전 열어 관노가면극 널리 알리고 싶어요

지난해 12월 ‘갤러리 초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그동안 그린 작품들과 다양한 굿즈를 선보였다.

양반, 각시, 시시딱딱이 등 관노가면극의 주인공들 | 관노가면극 악사

관노가면극만 그리는 조영훈 화가의지면 갤러리다. ‘어느 봄날’이라는 제목의 작품

악단과 함께하는 관노가면극 모습. 화가는 3년 전부터 직접 관노가면극을 배우고 있다.

작가는 시시딱딱이가 양반과 각시 사이를 훼방 놓는 모습을 특히 좋아한다.


{"title":"[강릉플러스 2월] 일평생 관노가면극만 그릴래요","source":"https://blog.naver.com/pinegn/223764809636","blogName":"강릉시청공..","domainIdOrBlogId":"pinegn","nicknameOrBlogId":"강릉가이드","logNo":223764809636,"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