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김천 위인들 중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최송설당여사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같은 여자로서 이런 분이 계셨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더라고요❤️

최송설당여사는 70세를 넘긴 나이에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그녀는 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고등학교)의 설립자로서

범상치 않은 행보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어요.

평생 모은 재산 전부를 기부해서

학교를 설립하셨는데요.

보시 금액이 30만 2100원인데

당시 그 시절에는 엄청 큰 액수였다고 해요.

1922년, 청년회관을 설립하는 데는

약 1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해요.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최송설당 여사가 기부한 30만 2100원의 가치는

현재로 치면 약 3000평 규모의

대형 건물 건설에 해당하는 금액이에요.

그녀는

사회의 발전은 인재의 교육에 있으며,

교육의 확장은 재정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사회의 급한 일에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에 30만 2100원을 기부하여

김천 보통학교 설립 자금을 지원하고자 한다.

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교육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 내면서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자 했다고 해요.

하지만 학교 설립이 시작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 시대여서

우리 민족은 국권을 상실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일본의 감시와 압박은

날로 체계적이고 치밀해졌으며,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일본의 교육 정책은 심각할 정도였어요.

일본 총독부는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제하고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강요했을 때예요.

그러나 그녀는 학교 설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확고한 결심과 함께 뛰어난 추진력으로

학교 설립을 실현해 나갔어요.

학교 설립 의지를 공표한 직후,

신뢰할 수 있는 김천 지역 유지 7명을 선정하여

설립을 위한 모든 사항을 추진하도록 했어요.

1930년 3월 24일

경상북도 학무과는

김천 보통학교 설립위원회가 제출한

설립 신청을 단칼에 거절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실업학교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뒤따랐어요.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최송설당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인문계 학교가 아니라면

기부를 취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였고

그녀는 고등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함양이라는 초기 목표가

희석될 것을 우려하였어요.

또한, 학교 설립에 필요한

평가액이 당초 제시했던

30만 2100원에서

32만 원으로 증액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요.

이때, 송설당은 놀라운 결단을 내렸어요

마지막 재산인 서울의 거처

‘송설당’을 매각하여 부족한 금액을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공표한 것이에요.

‘송설당’의 평가액이

2만 3000원이었기 때문에

총독부가 이의를 제기할 명분이 없었어요.

여사님의 강력한 의지와 결단 덕분에

김천 보통학교 설립(현 김천고등학교)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설립하게 되었어요!

이러한 그녀의 깊은 뜻을 알리기 위해

송설 동문들이 송설역사관을 열었는데요.

이곳에는 최송설당의

거룩한 뜻과 희망이 서려있고

김천 중·고등학교의 빛나는

역사와 높푸른 기상이 모두 담겨 있어요.

송설역사관은 김천고등학교 안에 있고

누구나 방문할 수 있어요.

시간은 매주 월요일-금요일

10:00-17:00까지 운영해요.

휴관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

관공서의 공휴일이에요.

입장하면 입구에 안내 데스크실이 있고

책자들이 올려져 있어요.

팜플렛에는 관람안내와

김천고의 역사가 적혀 있는데

책자 보고 놀랬어요!

김천고 나오신 분들 중

대표, 원장님, 부시장, 변호사 등

훌륭한 분들이 많으셨어요😁

최송설당역사관은

1층, 2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1층에는 화장실이 있어요.

내부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모든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진열되어 있어요.

1층 입구 쪽에 관장실, 동창회 사무실

화장실이 있고

학교 발전사 연표가 걸려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송설당동상이 세워져 있고

언론이 본 그녀의 이야기와 연보가 적혀있어요.

2층 계단 올라가는 길에

여사님의 유언을 적어 걸어놨어요.

길이 사립학교를 육성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

잘 교육받은 한 사람이

나라를 바라잡고,

잘 교육받은 한 사람이

동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마땅히 이 길을 따라 지키되,

내 뜻을 저버리지 말라.

이 유언에 따라 학생들이 교육 잘 받아서

김천고등학교에서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최송설당역사관 2층으로 올라오면

송설 학원 이야기, 송설 학원 발전사에

대해 알 수 있어요.

개교에서부터 오늘까지의 변화하는

학교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그녀의 못다 한 이야기”

최송설당은 무남 삼녀 중 장녀로

경상북도 김천 출신으로

본관은 화순이며, 본명은 미상이에요.

송설당은 어린 시절

서당 훈장인 부친에게

한글과 한문을 배우며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고

이후, 부친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견디며 재산을 모은

그녀는 상당한 재력을 쌓았어요.

1886년 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그녀는 금전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이용교와 결혼하여 한양으로 이주했어요.

이후 권문세가의 부인들과 교제하다가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으며,

귀비로 봉해졌어요.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라는 호를 받았으며,

이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회사업에 힘쓰셨어요.

1912년에는 청암사 중건에 기부하고

금릉 학원에 기부금을 내는 등

사회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셨어요.

학교를 건립하고 송정 정걸재에서 지내던

그녀는 1939년 6월 16일

세상을 떠나셨어요.

송설역사관 앞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이 동상은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어

김천고등학교 뒷산에

최송설당의 묘가 안장되어 있어요.

매년 6월 16일이 되면 학교에서는

추도사를 지내고 있다고 해요.

"님은 가시고 돌아오지 않아도

그 오롯한 뜻은 날마다 자라나

매 마른 이 땅에 꽃을 피우네

님은 가시어도 영원히 계시어"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하신

김천 위인 최송설당여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어요😊

{"title":"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한 김천 위인 최송설당여사 송설역사관에 다녀왔어요 _ 김천시 서포터즈 최용자","source":"https://blog.naver.com/gclovehappy/223554306606","blogName":"김천시 공..","blogId":"gclovehappy","domainIdOrBlogId":"gclovehappy","nicknameOrBlogId":"김천시","logNo":223554306606,"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