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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전
수영구 역사 산책2: 수영야류와 최한복 선생
수영야류, 서민 삶의 깊은 성찰
<수영 야류>는 부산광역시 수영구에서 전승되는 전통 탈춤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연행되었던 행사로 농경의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현재의 수영야류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반영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수영야류는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인물은 탈을 쓰고 춤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문둥이춤이 없는 대신 사자춤이 있으며, 영노, 비비, 양반, 할미, 중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영구와 부산 지역 야류의 원류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수영야류 이름의 기원
수영구 수영동에 전승 되어오는 탈춤을 수영 지방 사람들은 이 놀이를 '야류' 또는 '야루'로 부르면서 수영야류가 되었습니다. 원래 '들놀음, 들놀이' 한자로 '야유(野遊)"라고 표기하였는데 음운변화로 야유를 야류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수영야류는 200여 년 전 좌수영 수사가 밤마다 대광대패를 불러다가 탈놀이를 하게 하였고 그때 이 모습을 군졸들이 보고 배워서 시작했다는 설과 초계 밤마다 대광대패가 수영에 와서 노는 것을 보고 수영 사람들이 보고 배워서 퍼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
현재의 수영야류
수영 야류는 1935년까지 야류계의 주도로 진행되었으나, 일제의 집단적 모임 금지로 전승이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1946년에 과거 연희자들이 재연하였고, 1953년에는 수영 서답 바우에서 길놀이를 출발하고 옛 수영 국민학교에 놀이마당을 마련하여 놀았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는 최한복과 조두영이 가면을 만들고, 최한복의 극본을 바탕으로 재연하였는데 도시화와 지역 공동체 변화로 정월대보름에만 놀던 놀이가 축소되었고, 수영 주민들은 1960년대에 최한복과 조두영의 구술을 바탕으로 대사, 가면, 춤사위 등을 복원하였습니다.
현재 수영야류는 수영지역의 도시화와 지역공동체의 변화에 따라 정월대보름에 놀지 않고 수시로 탈놀음 부분만 연행하고 있습니다.
서구에 있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는 1964년 제작된 수영야류 연희에 사용했던 탈 11점과 모자를 포함한 소도구 5점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수영야류의 맥을 잇는데 크게 기여한 <수영야류>를 정리하고 <수영 유사>를 집필한 최한복 선생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영야류가 쇠퇴의 길을 걸을 때 최한복 선생은 수영야류의 전승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963년, 수영야류 전 과장의 대본을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선생의 노력 덕분에 수영야류는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평생을 고향인 수영에 살며 지역 교육과 전통 문화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최한복 선생 수영팔경 가사비
수영사적공원 야외공연장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최한복 선생의 <수영팔경 가사비> 비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영유사>의 제1장인 수영팔경가는 부산 수영의 아름다운 경치 8곳을 노래한 가사 작품으로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수영야류의 가사와 함께 수영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수영 팔경의 8가지 경치
운대귀범 (雲臺歸帆): 구름 속에 돛단배가 돌아오는 모습
봉대월출 (烽臺月出): 봉수대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
진두어화 (津頭漁火): 나루터에서 고기잡이배에 불이 켜진 모습
남양낙안 (南陽落雁): 남쪽 바다로 기러기가 내려앉는 모습
장산낙조 (長山落照): 장산에 해가 지는 모습
백산만취 (白山晩翠): 백산에 저녁 햇살이 비치는 푸른 숲의 모습
재송직화 (栽松織火): 재송 마을 아낙네들의 베 짜는 모습
연산모종 (蓮山暮鍾): 연산에서 저녁 범종소리가 울리는 모습
기구(崎嶇)한 세상사를 부운(浮雲)에 부쳐두고, 호수서풍(皓首西風) 남래객(南來客)이 수북산남(水北山南) 지진두(地盡頭)에 일준주(一樽酒) 일표자(一瓢子)를 첨이대상(覘夷臺上) 높이 앉아 현해탄(玄海灘)을 바라보니 불편한 강성(江聲)이요 호호(浩浩)한 창해(滄海)로다. 경개(景慨)도 좋거니와 수영팔경 기관(奇觀)이다. |
<수영팔경> 첫 단락의 서시 부분으로 옥련 서원 서쪽 높이 솟은 백산에 오르면 수영강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현해탄을 바라본다는 것은 왜를 의식하는 말로 수영강은 임진왜란 때부터 왜의 침략성을 잘 알기에 지금의 수영강의 소리도 원망의 찬 슬픔의 소리로 들린다는 뜻입니다.
뒤편에는 "일제 최한복 선생 수영 팔경 가사비"라는 제목과 함께 최한복선생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영 지역의 전통 예술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고, 지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최한복 선생을 모두가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영구 SNS 서포터즈 김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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