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기념 주간행사 사진전

장소: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전시기간: 2024. 9. 6(금)~9. 12(목)

74주년 맞이하는 인천상륙작전 기념주간 행사

내항 1'8부두에서 본격적인 행사는 진행한다.

📸취재 일시 : 9월 7일 (금) 13시 - 17시까지

🚩장소 :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사진 전시실

6,25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16개국 깃발과

우리나라 깃발과 유엔 깃발, 총 18개 깃발

인천 상륙 작전

6.25 전쟁의 일부였다.

인천 상륙작전 다음 날 인천항의 레드 비치에서

4대의 전차 상륙함(LST)이 미군의 인력과 장비를 내리고 있다.

📍팔미도를 미리 알아보고 그 속에서 작전을 짜고 썰물 시간에

인천을 빼앗아야 되는 어려움을 시간 다투어 상륙해서

(1950년 9월 10일 - 9월 19일)까지는 이루어야만 했다.

장소 : 경기도 인천시

결과 : 국군과 유엔군의 승리로 이어졌다.

6.25전쟁 당시 처음보는 전쟁용 자동차 "탱크"

📍인천 수복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이 계기였고,

6.25 전쟁 중간 우리 군은 계속 밀려

낙동강의 남쪽 일부를 지키며 버둥대고 있었다.

6.25 전쟁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영어: Battle of Incheon/Inchon)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한반도에서 진행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5,000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된 것에 더불어 나아가 인천이 수복된 후 유엔군은 13일에 걸쳐 서울로 진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작전 암호명은 크로마이트 작전(영어: Operation Chromite)이었다.

위키백과

해벽을 넘어 상륙하는 미해병대들

유엔군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6월 29일 한강 방어선을 시찰할 때

“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해 전세를 역전시킨다”는 구상을 하였고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7월 22일 미제 1기병 사단과 미 해병대 연대전투단(RCT) 병력을

인천에 상륙시킨다는 블루하츠 작전 (Operation Bluehearts)이 만들어졌으나

전황이 악화되고 미 본토에서의 상륙부대 배치가 늦어지면서 취소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9월 15일 인천을 찾고,

바로 서울을 향해 북한인민군을 부수며 나아가서

9월 28일 서울탈환으로 태극기를 중앙청에 게양한다.

그후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인 낙동강 방어선에서

힘겨운 방어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인천은 낙동강과 부산 교두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북한인민군이 거의 방어를 하지 않고 있었다.-맥아더 모습

9월 15일 인천상륙을 시도해 6,25 전쟁을 중간에 끊는 힘을 발휘해

우리 땅을 다 찾는데 공훈이 있는 맥아더와 미국인 군인들

​​

9월 1일 북한인민군은 최후의 공세인 낙동강 대공세를 감행했다.

목적은 오직 낙동강 방어선의 돌파였다.

북한인민군은 이번에 4개가 아닌 5개의 공격축을 설정했다.

이 공세에서 유엔군은 허를 찔려버렸다.

북한인민군이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을 거의 압도할 수 있다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용기있는 단안으로

팔미도에 모여 9월 15일 인천상륙을 시도해

6,25 전쟁을 중간에 끊는 힘을 발휘해 우리 땅을 다 찾았는데

그 업적과 우리가 이룩할 통일을 내다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전쟁당시 포격으로 파손된 인천우체국의 모습

연합군 한국지원 사무소의 원호 화물차에서

구호품을 내리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 (52년 1월 1일)

보호할 수 밖에 없는 고아들을 돌보는 수녀와 군인들

대한민국에서 인민 전쟁포로 중

자유대한으로 있겠다고 한 사람들을 '애국반공 포로'를 석방했듯

중공군인도 타이완으로 선택한 사람들을 해방시켜 타이완으로 보냈다.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1950년 9월 11일 인천을 향해 줄범하는 군함

-> 9월 14일 황해 중부해상까지 도착했다.

낙동강 대치선 국군과 연합군이 최후 방어를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인천을 찾고 북한인민군의 보급을 차단하며 전쟁의 유리한 점을 확보했다.

📍6.25 전쟁은 6월 25일 쳐들어와서

3일 만에 서울을, 며칠 후에는 다 빼앗겼다.

낙동강에서 마지막 버티는 안타까운 때에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한반도에서 진행된 상륙작전이었다.

이 작전에는 75,000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된 것에 더불어

나아가 인천이 수복된 후 유엔군은 13일에 걸쳐 서울로 진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을 도운 나라들이 기둥에 새겨지고 있다.


제 74주년 체험행사로

내항 1,8 부두의 이벤트광장

밀리터리 체험행사

제 74주년 체험행사로 내항 1,8 부두의 이벤트광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밀리터리 체험행사가 있었다.

포일아트로 만드는 태극기

아이들이 좋아할 체험행사가 있고,

거기에 파묻혀 정신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과거 인천상륙작전으로의 전쟁에 임했던 국군이

많은 훈장과 계급장을 달고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들이 탱크를 가지고 와서

시민에게 타고 싶으면 탈 수 있게 해 할아버지, 아가씨, 어린학생들이 타고서...


헌신으로 얻은 자유, 국제 평화 도시 인천

청량산 끝자락에 세운 인천상륙작전기념관으로

📍'용사의 탑'이 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월미산 자유공원에 세웠다.

평양도 뺏고, 우리나라 모두 빼앗을 때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우리는 서울을 뺏기고 그 추운 날에 1,4후퇴리는 어려움도 겪었고,

흥남부두에서 추운 날에 주민을 남쪽으로 이송하는

뜻 깊은 일도 유엔군이 해 주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 대한만국이 안정되고

세계 10위국 안의 무역을 하고,

올해 프랑스 올림픽에서는 작은 나라가 큰나라와 겨루어

7등을 해 대한민국과 세계가 놀랐다.😮

6. 25전쟁 당시 그냥 놓았더라면 .......,?

자유 없는 나라가 되었을 텐데......

이제는 세계와 겨루는 나라가 되었으니

남북이 통일만 되면 우리나라의 고민과 걱정은 사라지리라 본다.

그래도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단결과 협력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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