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문화공원 교육역서사관에서 노스텔지어를 느끼다

구덕문화공원 교육역사관에서 노스텔인재가 국력이다

학창시절 사회시간에 줄곧 들었던 말이 있었으니,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기에, 인력이 곧 국력이다.'라는 의미의 말이었는데요. 특히 근대사에 접어들며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폐해진 국토 등으로인해 교육을 통한 기사회생의 방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니었나 생각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서 형성된 체계화된 교육시스템과 엘리트주의라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고단한 일과의 스트레스틑 평생이 지나더라도 잊지못할 아련한 추억이 되어, 어려울때 힘이들때 힘이 되어주고는 합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구덕문화공원에 위치한 교육역사관은,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서적과 교재들을 만나보고 열람하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드릴 것인데요. 특히 저에게 있어서 추억의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는 교재들도 인상깊었지만, 최근 사극을 통해 다시금 회자되고있는 고려사와 역사서들을 교육역사관에서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잊지 못할 시간이 됐던 것 같은데요.

60년~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50m

방문객은 물론 어린 자녀와 손을 잡고 방문하신 30대 학부모님들도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볼 수 있는 곳으로, 구덕문화공원을 방문하신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3월 ~10월 : 09:00 ~ 18:00

11월 ~ 2월 : 09:00 ~ 17: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이용료 : 무료

구덕문화공원

■ 교육역사관

1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하에 떨어지며 눈발이 날렸던 매서운 추위가 기승했던 날씨... 하지만 3월로 달력을 넘기니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 따스한 기온과 맑은 날씨 때문에 지금이라도 당장 야외로 나들이를 나서고 싶은 심정인데요.

이번에 소개드릴 <구덕문화공원>은, 구덕산과 승학산을 오르는 등산로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구덕수원지와 구덕꽃마을 등 유원지와 편의시설과 인접해있는 곳으로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서기에 좋은 곳이고요. 오랜만에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이곳으로 나들이를 나서보게 됐습니다.

우리 선조의 전통 삶을 확인할 수 있는 <민속생활관>과 분재, 수석 등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조경을 만나볼 수 있는 <목석원예관>과 함께 이곳 구덕문화공원을 찾아와주신 나들이객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드릴 공간이 되어드리는 곳이 바로 이곳 <교육역사관>인데요.

특히 최근 개관해 많은 가족나들이객이 찾는 <들락날락 어린이도서관>과 함께 이용하시면 좋을 교육전시관으로, 조선시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우리나라 교육 역사를 1,000여점이 넘는 귀한 교육역사물을 통해 몸소 확인하고 체험해보실 수 있는 곳입니다.

■ 역사를 만나다

조선시대에서부터 이어진 우리 선조들의 교육 열정과 열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이자 당대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써의 가치까지 지닌 진귀한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교육역사관.

이곳에서는 서당과 서원과 같은 사립교육시설을 비롯해 성균관, 사학, 종학, 향교 등의 관립학교에 이르는 '교육시스템'과 교재로 사용된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교육 과목'에 관한 자료들까지 진품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나 참고사진으로 볼 수 있었던 구운몽, 춘향전 등의 서책과 조선시대에 어명으로 작성된 '고려사' 역사서를 실물로 볼 수 있다는 점인데요.

특히 '고려사'의 경우 인기리에 방영됐던 사극을 통해 부쩍 늘어난 역사에 관한 호기심 때문에 알게된 서적으로, 조선시대에 쓰인 역사서라는 점과 조선건국의 당위성 및 호국정신 계승을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꼭 실물로 한번 보고싶었던 책이었는데요. 그런데 이것을 이번 교육역사관에서 볼 수 있었기에, 잊지 못할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일본어 교재

1910년에서 1945년까지 무려 35년간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조선. 식민통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심화되어갔으며 결국 일제강점기 말에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언어와 한글 그리고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까지 통제받는 지경에 이르렀는데요.

이러한 일제의 억압과 탄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역사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일본식 한자와 일본어로만 이뤄진 교과서와 경술국치 시기에 태어난 조선인이 35세가 되어서야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해왔다는 것에 놀랍지 않을 수 없었고요. 탄압을 피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온 많은 이들의 값진 희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불모지에서 핀 교육 의지

물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한국전쟁시기. 어느 것 하나 풍족하지 못했던 시기였음에도 어린 자녀의 미래를 위해 학구열을 불태운 지식인들의 의지를 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해외원조를 통해 제작된 자그마한 교재는, 부족한 원자재를 자그마한 책자로 해소함과 동시에 교육을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을 나타내는 사료이자 지표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휴전된 이후부터는 점차 컬러로 제작된 교재들을 볼 수 있어, 급격히 성장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공업력을 짐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학창시절의 추억

관객분들에게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해드리며 옛 추억을 다시금 회상해볼 수 있는 재현공간과 과거 사용된 교재를 직접 열람하며 읽어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 마련되어있는데요.

1990년도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도 사용됐던 나무로만 이뤄진 책걸상을 비롯해 학식은 물론 연주실력까지 갖춰 선생님을 초능력자로 생각들게 만들었던 오르간(풍금)에 이르기까지 초등학생시절을 상기시키는 물건들을 <충무국민학교> 재현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학교에서 교련과목을 배웠다는 것도 모자라 교육용 수류탄까지 사용했다는 것에 놀랬고요. 1970년대 중학교에서 '민주 생활'이라는 교과목을 배웠다는 것과 1학년 박하봉 학생이 책에 그린 '낙서'를 통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없다는 것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등, 거리감과 공감이 함께 공존했던 관람이기도 했습니다.

지어를 느끼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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