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상남도 뉴미디어 프렌즈 조윤희


함안의 인물 중 조려라는 분이 계십니다. 조선 세종, 문종, 단종 때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 선생의 흔적을 찾다가 알게 된 채미정이라는 곳을 다녀왔답니다.

함께 경남의 인물이기도 한 조려 선생의 흔적이 있는 함안으로 여행을 떠나 보실까요?

조선 단종 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 위를 차지한 세조의 처신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인 채미정에 도착했더니 포석을 깔아 만든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답니다.

더군다나 입구에 있는 나무의 표정이 누구라도 반기는 듯해서 기분 좋게 채미정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채미정(菜薇亭)은 서산서원과 함께 시기적으로 오랜 건축물은 아니지만 함안 출신으로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 선생의 삶과 관련이 있고, 조려 선생을 포함한 생육신에 대한 제의(祭儀)가 지속적으로 거행되고 있는 건물이랍니다.

1693년에 창건하였고 1954년에 재건(再建)한 채미정은 정면 4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으로서 건물 정면에 방형 연못이 있고 북쪽 절벽 청풍대(淸風臺)에 문풍루(聞風樓)라는 육각정이 있답니다.

겉으로 봤을 때 채미정은 지붕 담장 빼고 모두 목조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채미정을 보면 조선시대 한옥은 아름다운 디자인과 독특한 구조가 왜 유명한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았답니다.

전통적인 한국 문화와 철학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디자인 요소들이 많이 사용된 한옥의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구조와 디자인은 환경친화적이며 기후 조건에 맞춰져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답니다.

조선시대 한옥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설계 원칙을 바탕으로 만든 것 같은 채미정은 주로 목재를 사용하여 만들어지며, 지붕은 기와로 덮여 있고, 이러한 구조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해요. 특히, 지붕은 무게를 분산시키고 물을 효과적으로 배출하기 위해 완만한 경사로 설계되어 있다고 하는 조선시대 한옥의 예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물 자체로도 아름다운 채미정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아볼까요?

서산서원의 경내에 속했던,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인 채미정의 이름에서 채(菜)는 나물, 미(薇)는 고비, 고사리를 말함인데 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채미정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백이산(伯夷山)​이고 그 옆으로 보이는 것이 숙제봉(叔齊峰)이라고 하는데요.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행적과 고대 중국에서 충절의 화신으로 알려진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의 옛 고사, 그 형제가 세상을 등지며 읊었던 노래인 채미가(菜薇哥)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3천여년 전에 중국을 지배한 은(殷) 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이 그의 총희 달기(妲己)와 더불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그 잔인무도함이 극에 달하여 지금도 주왕은 폭군의 대명사이고, 달기는 나라를 말아먹은 요녀의 대명사로 불린답니다.

주왕과 애희인 달기의 패륜의 극치를 보이면서 백성들의 돌아선 민심과 고조되는 불만, 그리고 생존의 위협을 느끼던 주왕의 제후 중 하나인 주(周)의 무왕(武王)이 군사를 일으켜 은의 주왕을 토벌하고 주(周) 나라의 천하를 열었지요.

그런데 주의 무왕이 출전할 때, 아버지의 상중(喪中)인데, 또 신하가 주군을 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간하며 무왕을 말리던 사람이 있었는데 백이와 숙제형제 였답니다.

이들은 원래 고죽국의 왕자들인데 서로 왕위를 양보하고, 나라를 떠나서 민심을 얻고, 나라를 잘 다스린다는 주의 문왕을 찾아가던 길이었죠. 주 문왕의 아들이 주왕과 달기를 죽이고 주나라 천하를 연 무왕은 백이와 숙제의 간언을 물리치고 성난 민심을 업고 은 주왕을 쳐서 죽이고, 은나라를 멸망시켰답니다.

결국 백이와 숙제 형제는 주 무왕과 주나라 천하를 섬기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나물과 고사리를 캐서 먹고 지내다 결국은 그곳에서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백이와 숙제 형제가 수양산으로 들어가며 부른 채미가(菜薇歌)를 옮겨 보았습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나 캐자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포악함으로 포악함을 바꾸려고 하면서도 [以暴易暴兮]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不知其非矣]

신농(神農)과 우(虞) 하(夏)의 시대는 가고 [神農虞夏 忽然沒兮]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我安適歸矣]

아! 이제는 죽음만 있을 뿐이구나. [于嗟徂兮]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命之衰矣]'

즉, 채미정이란 이름은 백이와 숙제가 캐서 먹었던 나물과 고사리에서 온 것이고 또한 그들의 충절을 상징하는 의미가 채미정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었지요.

겨울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공간은 네모로 만든 연못에 다 담겨서 하늘을 받아내고 바람을 품은 채 얼어 있더군요.

백세청풍이란 은나라가 망하자 '의롭지 못한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라며, 수양산(중국산성)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먹다 굶어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뜻한다고 알려져 있지요.

영조 11년(1735년)에 건립하였고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4년에 복원한 채미정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첫 머리글자 백세(百世)는 일백 살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일백 세대를 뜻하는 것으로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면 30년 곱하기 100년이니 3000년이란 숫자가 나오지만 여기서 말하는 백세, 즉 3천 년이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된 그런 숫자가 아니라 '오랜 세월, 영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요.

또한 청풍(淸風)에서 청(맑은 淸)은 매섭도록 맑고 높다는 뜻이며 그 뒤에 따르는 글자 풍(風) 또한 그냥 바람(風)이 아니라 군자(君子)가 지닌 덕(德)이자 절개를 뜻하는 것으로서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네 글자 속에 들어 있는 속뜻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맑고 높은 선비가 지닌 절개'를 말한다고 하니 채미정의 대청마루조차 선비정신과 절개를 대언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고사리를 캐 먹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채미정은 앞에서 언급한 백이와 숙제 형제처럼 조려 역시 충절을 지키다 죽었음을 표현한 것인데 실제로 조려는 낚시와 학문으로 소일하며 한 번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지요.

정자의 뒤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청풍대(淸風臺).

채미정 바로 옆 언덕의 이름입니다. 채미정과 청풍대 사이는 좁고 경사가 있어서 주의를 해야 한답니다. 소나무 울울한 이곳엔 청아한 바람이 불어올 테지만 겨울이다 보니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짜릿하게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흔들어 댑니다.

청풍대로 오르려는데 도로 쪽으로 쪽문이 나 있어서 언덕에 올랐다가 채미정을 내려다보면서 한숨 쉬었다가 내려가도 될 듯도 하네요.

맑은 바람이 부는 언덕인 청풍대(淸風臺), 그리고 그 바람 소리를 듣고 즐기는 누각 문풍루(聞風樓).

누각이라고 하기에는 참 작은 건물로 대청마루도 없고 단지 서서 바람의 소리를 즐겼던 것인지 우리나라 전통의 정자나 누각의 형식을 따르지 않은 것이 특이합니다.

청풍대에서 내려다 본 채미정의 전경입니다. 겨울이라 삭막한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조려 선생의 절개를 생각하면 타협하지 않고 절의를 지키면서 자연과 벗했던 이곳 채미정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함안 조씨 성을 가진 제게도 의미가 깊은 채미정에서 겨울이 들려주는 바람 소리 끝에서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이 샘솟아납니다.

지금은 청풍대에서 지나가는 열차들을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채미정 바로 앞을 지나갔다고 하니 어쩌면 그때가 더 감성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안전사고도 무시 못 했을 것도 같습니다.

본관 함안(咸安). 자 주옹(主翁). 호 어계은자(漁溪隱者). 시호 정절(貞節)이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은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명망이 높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함안에 돌아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서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요. 1698년(숙종 24) 단종의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정조 때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703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답니다. 문집에 《어계집(漁溪集)》이 있답니다.

세조가 조선 단종을 임금 자리에서 쫓아내자 김시습, 이맹전, 원호, 성담수, 남효온과 더불어 '생육신'이 되어 고향 경남 함안으로 내려온 유학자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이 남긴 흔적이 숨 쉬고 있는 함안 원북 마을 채미정으로 겨울 여행 오세요~^^

채미정(菜薇亭)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13

(지번. 원북리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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