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짐을 위해 성안 옛길을 걷다
찬란한 일출과 함께 열린 새해 둘째 날,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새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이고, 흩어진 몸과 마음을 길 위에서 합치고 싶었습니다.
많은 길 중에 고른 성안 옛길. 사람들의 얘기와 애환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변두리에 모종의 새로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발을 얹었습니다.
성안 고지에서 바라본 울산의 전경이 지나간 추억을 반추하게 유인했습니다.
아득한 먼 옛날 공룡이 서식했고, 고래가 춤을 추었다는 역사가 어린 울산의 연가를 반추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성안은 동네 입지가 성(城)의 안 같기도 하지만 성동의 '성'과 상안동의 '안'을 합쳐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산을 깎아 동네로 만들었으며 함월산 자락 해발 고도 150m 위에 있는 동네라 경치가 좋고 공기도 맑았습니다.
도심 인프라를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성안 옛길 들머리는 함월산 너머에 있는 성안체육공원 주차장이었습니다.
산 아래라 깎아지른 절벽인 줄 알았는데 야트막한 구릉과 평지였습니다.
어둠을 사르고 온 누리를 빛으로 비추는 경배의 대상인 태양이 신령하게 느껴졌습니다.
에너지의 원천이자 소망과 희망, 열망의 상징인 태양이 솟아 마음을 겸허하게 했습니다.
도심 속의 시골스러운 길 주변의 한적한 풍경은 새해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난해의 잔해들이 남아 지나간 낭만이 가득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여 행복했습니다.
이예로 굴속을 지나니 작은 동네가 나오고 경로당과 맛집, 카페가 속절없이 길손을 유혹했습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여유를 나눌 수 있는 휴식처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성안천에 실려 있을 역사를 음미하며 좁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텅 빈 벌판에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시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었습니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성안동 사람들이 정원을 집안에 들여놓아 운치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분재와 목각들이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길옆 산에는 겨울잠에 든 나무, 푸른 대나무, 얼어버린 감에 묵직한 사유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평온하고 한적한 촌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우는소리가 정겨웠습니다.
길의 중간에는 연못가에 있는 재실 같은 삼야정은 조선 말, 효성이 지극했던 고극정을 모신 정각입니다.
삼야정은 들에서 나고 들에서 자라 들에서 늙어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각 앞에 효성을 칭송해 왕이 하사한 높이 9m 지붕 없는 홍살문이 있었습니다.
붉은색 기둥 사이로 화살 창살을 끼웠고, 중앙에 태극문양을 달았습니다.
능, 궁전 또는 관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사당이나 열녀 효자문 등의 정면 앞에 세우던 나무 문입니다.
천지봉공(天地奉供)을 부모님 방에 붙여 효행을 실천했습니다.
'부모는 천지이다. 사람이 부모에게 불효하면 천지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니 어느 곳에 몸을 용납하리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밭을 갈고,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했으며, 밤이면 서당에서 학문을 익히기 위해 주경야독했는데요.
매사에 삼가며 어긋남이 없었던 인물이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35대손 고순동 씨가 관리하고 있다 했습니다.
모난 땅과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연못과 중앙에 둥근 섬은 하늘과 땅, 사람이 만나는 '천지인(天地人)'을 조화시켰습니다.
풍수를 연구했던 그는 길지인 이곳을 성안동이라 하고 살았습니다. 성안동 시원이라 추측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국상 때마다 두건을 두르고 삼베옷을 입고 향을 피워 조문을 올린 충신 효자라 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져 고종은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했습니다.
저서는 후손들이 그가 남긴 시와 글을 모아 엮은 삼야정유고(三野亭遺稿)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정원문화의 하나인 연못을 보며 울산이 낳은 극진한 효자를 떠올려 봅니다.
정각에서 3km 떨어진 덕원사는 1998년 조계종 제7교구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입니다.
설법전, 대웅전, 나한전, 산신전, 목어가 있는 누각, 덕원사 추모관이 있습니다.
나한전은 부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입니다. 아라한의 약칭으로 성자란 뜻이 있습니다.
제자 중 진리로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성인으로 응진전이라고도 합니다.
보통 16인의 아라한을 이야기하며 십육나한이라고도 합니다.
대웅전 벽화는 3년 만에 살아난 달마대사, 16제자인 아난존자의 득도 이야기와 커다란 배가 나온 중국 승려 포대화상, 신통력으로 불을 끈 진목대사, 홀로 득도한 나반존자, 찬즙대사와 관음바위, 오운산 속명사 창건설화 등 이야기가 있습니다.
덕원사 영산회상도(德原寺 靈山會上圖)는 울산 유형문화재입니다.
조선 후기 도광(중국 청나라 선종 때의 연호) 연간에 제작된 불화로, 수화승(首畵僧) 우희(禹喜)의 작품입니다.
세필의 정교한 필선과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표현한 필력이 돋보입니다.
덕원사〈석가설법도〉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테두리가 잘려 새로 장황하여 액자로 표구한 상태입니다. 작품은 비단 바탕에 붉은색을 칠한 뒤 황색 선으로 윤곽선이 그려져 있으며, 안료의 전반적인 변색으로 화면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상태이고 세로 절흔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구도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를 좌우대칭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석가여래는 결가부좌 자세로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좌우에 2위씩 배치된 보살은 좌우로 문수·보현보살, 뒷면 좌우는 삭발한 지장보살로 파악됩니다.
머리 좌우로는 늙은 비구형 가섭과 청년 비구형 아난존자를 배치했습니다.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창녕 구룡산 관룡사의 부속 암자에서 19세기 전반기 경상도를 중심을 활동한 우희(禹喜)의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붉은 바탕에 황색 선으로 그려 19세기경 유행하였던 선묘불화(線描佛畫)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필의 정교한 필선과 다양한 표정 및 자세 등 화승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덕원사에서 나와 성안 함월구민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넓은 축구장에는 시민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고, 훌라후프, 노 젓기 운동, 공중 걷기와 물결 타기 등이 보였습니다.
운동장을 지나 곧바로 성안생활체육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풋살장과 족구장, 성안 물놀이공원, 미끄럼틀이 한가하게 주인공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은 스승이고 나는 학생입니다. 누군가 낸 길이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녔던 옛길을 걸었습니다.
내가 손끝 하나 보태지 않는 이 길을 걸으면서 울산의 숨은 역사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산길도, 오르막도 내리막도 어김없이 만납니다.
걸음은 한 걸음 내딛는 일이 시작입니다. 그래서 멀어 보이는 길도 걸으면 가까워집니다.
고단해도 걸으면 내 것이 되고 선생이 되었습니다. 성안 옛길이 그 이치를 일러 주었습니다.
걷는 것은 잠시 머물다 가는 시간을 누리는 것. 이 성안 옛길이 더없이 특별했습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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