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참상, 그 역사가 있는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
안녕하세요, 상주시 SNS 서포터즈,
최홍대입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힘의 균형이
미국으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요청에도
당시 소련은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빼돌린 정보를 이용해
소련은 1949년 처음으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원자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최초의 Tu-4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전쟁의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 054-532-7370
⏰ 화~일 / 09:00 ~ 18:00
(월요일 정기휴무)
화서면에 가면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상주 화령지역에서 일어난 전투를
기념하고 한국전쟁의 기억을 담아놓은 곳입니다.
한반도는 대륙에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끊임없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화령전승기념관에는 천년의 호국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상주 화령 전승기념관은
한국전쟁의 참상과 그 역사적인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지금도 힘의 균형이 깨지면 전쟁은 일어나게 됩니다.
또한 한쪽이 압도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질 때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화령 전투는 1950년 7월 17일 ~ 22일까지
경북 상주시 화령지역에서
국군 17 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격멸해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전투입니다.
미군이 참전을 결정하고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라는 더글라스 맥아더가
지휘를 했지만 전쟁을 한 번에 뒤집을만한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절을 역사와 사진으로만 보아서는
그 시기의 참상을 완전히 체감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는 그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전쟁이 할퀴고 간 흔적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잊지 못할 그날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고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병력의 수도 두 배에 이르고,
주요 무기인 전차는 대한민국에 한 대도 없었지만
북한에는 242대, 곡사포 91문 vs 242문,
전투기는 무려 10배의 차이가 있었기에
한 달도 안 된 시간에
낙동강의 일부지역으로 몰리게 됩니다.
신라에서 조선에 걸쳐 군사적 요충이자
영남의 대읍이었던 상주의 영향력과
문화적 파급력이 크게 미친 영역에 화령이 있습니다.
속리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맥이
화령과 추풍령이 되었는데,
시내와 산의 그윽한 경치가 있습니다.
모두 낮고 평평하여 시골 살기에는 알맞으나
산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연속된 한국의 암흑기를
연 사건인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전쟁으로 굳어진 대한민국과 북한의
상호 간 대치 상태는 정전 7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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