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립 교육기관

🏫교하 향교를 찾아서🏫

벚꽃이 활짝 핀 것을 보니 겨울이 끝났나 싶었는데

때아닌 눈과 비로 '벚꽃 Ending'을 맞게 될까봐

갑작스러운 추위에 어리둥절하며 꽃구경 나온 시민들이 제법 많네요.😅

이번엔 교하향교를 방문해 봤습니다!

교하향교는 수차례에 걸친 복원과 보수를 통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곳이에요.

교하향교 문의

📞031-943-2229

📍평소에는 향교가 닫혀 있으므로

방문 전에 전화로 문의해 보시길 권합니다!

꽃대궐을 이룬 교하향교와 홍살문

향교 입구에 하마비가 서 있습니다.

이곳은 공자와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즉,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이지요.

📌향교란?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국립 교육 기관입니다.

고려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유교를 새로운 정치 이념으로 삼아 왕실은 물론

기층사회까지 전파하기 위한 교육 기구로 향교가 필요했어요.

조선시대에 이르러 향교의 기능이 강화되어

성종 임금 때에는 전국 모든 군과 현에 향교를 설치하였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 양성은 물론

고려시대의 불교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유교를 조선의 중심 이념으로 세우기 위함이었죠.

향교유교 예절과 경전을 가르치는 교육 기능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기능을 했어요.

16세 이상 40세 미만의 평민 이상의 자제면 입학할 수 있었고,

향교의 교생(학생)이 되면 소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며

소과의 초시와 복시에 모두 합격하면 진사나 생원이 될 수 있었죠.

군역을 면제받는 특권이 있어

이를 위해 입학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향교 운영을 위해 국가에서 재정 지원을 해 주었는데

교생의 학업 활동에 필요한 제반 비용은 물론,

향교에서 준행되는 석전례·향음례까지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에는 각 군현에 세운 향교에 학전(學田)과

학노비(學奴婢)까지 지원하는 등 숭유억불을 위해 막대한 재정투자를 하였어요.


교하향교

파주에는 파주 · 교하 · 적성 · 장단 향교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장단향교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리고 세 곳만 남았어요.😢

교하향교는 조선 태종 7년에 탄현면 갈현리에 지어졌었는데

영조 7년에 그 위치가 장릉 묘역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자리인 파주시 쇠재로 91로 옮겨졌어요.

1943년 파주향교를 제외하고 파주군 내에 있던 향교가 모두 철폐되면서

교하향교도 폐쇄되었다가 1946년 당시 유림들의 요청으로 복구되었고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11호로 지정되었답니다!

교하향교의 배치와 구성

교하향교의 외삼문은 신삼문 형태입니다.

신삼문이란 신과 사람의 출입을 구분하기 위해

신문을 셋으로 나눈 것이에요.

가운데 문신이 드나드는 문이기 때문에 항상 닫아 놓고

사람은 양쪽 문으로 드나드는데

우측으로 들어가서 좌측으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

일반적으로 향교나 서원은 평소에 개방하지 않아요.

미리 연락하지 않고 방문했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네요.


다행히 지난여름 방문했을 때 촬영해 둔 사진이 있어서

교하향교 내부를 보여드릴게요.

향교의 배치는 제향 공간인 대성전

강학 공간인 명륜당의 위치에 따라 구분되는데

교하향교는 명륜당이 앞에,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형태입니다.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이 있어요.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는

맹자의 말씀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교생들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치고

강독토론을 통해 인격 수양을 위한

도덕적 가르침을 전달하던 강당이죠.

명륜당 좌우에는 교생들의 기숙사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명륜당과 동재, 서재(2024년 8월 촬영)

명륜당 뒤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야 대성전에 이를 수 있어요.

내삼문의 전면(입구)과 후면(출구)(2024년 8월 촬영)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대성전 좌우의 동무, 서무입니다.

대성전과 동무, 서무(2024년 8월 촬영)

향교의 쇠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사립 교육기관서원이 발달하면서

향교 교육에 대한 양반들의 외면, 교육적 효과 부족 등으로 인해

향교는 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이 점점 약화되었어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정부의 재정 궁핍으로 지원이 감소하고

전쟁으로 인한 건물 소실, 인재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면치 못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교육제도가 도입되고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제향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죠.

교하향교도 더 이상 교육기관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지만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와 같은 전통 제례 의식을 봉행하며

매월 음력 초하루보름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공자를 비롯한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대성전 내부(2024년 8월 촬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이어지고 있는 교하향교,

전화 문의 후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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