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종진입니다.

안동을 방문할 때 제법 선선해지는 날씨라

이제 가을을 느껴봅니다.

얼마 전 내린 비로 인해

미천이 꽤나 물이 불었습니다.

오늘은 안동에서 만난 별당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안동 소호헌을 소개할 텐데요.

바로 가보시죠.

안동 일직면 망호리에 다다르면

넓은 논밭이 보입니다.

넓게 펼쳐진 논밭에서는

벼가 주렁주렁 달리면서 알곡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에 만나는 안동의 모습이 정겹기 그지 없습니다.

안동 소호헌에 도착을 하니

넓은 주차공간이 나옵니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 봅니다.

안에는 관리인이 있는데요.

안동시 기자단임을 밝히며 둘러봤습니다.

옆에는 보호수가 있는데요.

270년의 꽤나 오래된 수령이 있는 나무입니다.

은행나무이며 수고는 10m,

나무 둘레는 3m에 이릅니다.

은행의 잎이 파릇하게 있는데요.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들겠죠?

오래된 가옥에 가보면

흙들이 질지 않고 푸석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인데요.

모래와 함께 오래된 전통건축물의 느낌을 보여줍니다.

소호헌의 모습입니다.

정면 2칸이라 일반적인 크기이지만,

관리 상태가 좋아 보입니다.

아래에는 돌들을 쌓아 수평을 이루는데요.

이런 방식이 자연과 함께하는

조상님들의 순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국에 보면 여러 정자나 누각에서

이런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소호헌은 조선 전기 때 문신이었던

서해(1537-1559)가 서재로 쓰던 별당이다.

원래 소호헌은 임청각을 지은 이명이 다섯째 아들

이고가 분가할 때 지어준 집이었는데,

서해가 이고의 앞 못 보는 외동딸과 결혼하면서

장인 이고가 사위에게 선물로 내려주었다.

서해는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2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서해의 아내는 어린 아들

서성(1558~1631)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

술과 약과를 만들어 팔며 아들을 공부시켰고,

서성은 1586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소호헌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 대청이다.

앞면 1칸, 옆면 2칸은 누마루가 놓여 있다.

누마루에 붙은 대청은 'ㄱ' 자로 꺾였는데

앞면 2칸, 옆면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붙어

'T'자 모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 모서리를 장식한 기와에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이다.

소호헌 왼쪽에 있는 건물은 서성의 태실이다.

서성은 율곡 이이(1537~1584)의 제자로,

부친과 아들이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 이황과 이이에게 배운

보기 드문 가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공간을 둘러보겠습니다.

무궁화도 계속해서 피었는데요.

분홍색으로 피어 맞아주고 있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집이 안채입니다.

약봉 태실이라고 써져있는데요.

조선 중기 문신 충숙공 약봉 서성이 태어난 방입니다.

김유신이 태어난 곳이나

율곡이이가 태어난 곳처럼

이렇게 옛 자취를 그대로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안동에서 만난 별당

소호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관리가 잘되고 있기에

태실과 별당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곳에서 역사 공부도 해보시고,

가을의 풍경도 즐겨보시는 여행 어떠신가요?

다음에도 안동의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


본 내용은 이종진 안동시

SNS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안동시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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