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4월 19일 혁명, 그 날을 기억합시다!
숫자로 보는 4월 19일 혁명
그 날을 기억합시다!
오늘날
민주주의 정신이
지켜질 수 있었던 건
64년 전 그 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숫자로 보는
4월 19일 혁명에
대해 알아봅시다:)
3월 15일 부정선거
4월 19일 혁명의 배경
당시 이승만 정권은
불법 개헌을 통해
총 12년간 장기 집권중이었습니다.
야당과 언론을 탄압의 강도가
더욱 심해진 독재정치는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이승만 정권
1960년 3월 15일에 진행된
정·부통령선거에서
반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야당 참관인 축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합니다.
이를 규탄하기 위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는 경찰을 동원한 무력 행사와
무차별 탄압 을 했으며,
그 결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4월 11일,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로인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는 거세지며
이승만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국적 규모의 시위 운동
퍼져나가게 됩니다.
4월 19일 혁명
이승만 정권은
이러한 시위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고무되고 조종된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 담화로 인해
학생과 시민들은 더욱 격노하여
서울, 대구, 부산, 마산,
전주, 청주, 대전, 제주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4월 19일
독재 정권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선언문을 낭독하고
경무대(현 청와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시위는 전국적인 규모로
부산, 광주, 인천 등 주요 도시에서도
거세게 진행되었습니다.
정부는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차별적으로 시위를 진압하여
또 다시 많은 사상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날,
많은 학생들이
경찰의 총탄에 희생된
4월 19일 혁명입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4월 19일 이후에도
일반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 곳곳에 산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학생과 시민들은
정권의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투쟁하여 끝내 이기었습니다.
4월 26일
이승만 정권이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렇게
4월 19일 혁명은
이후 5·18민주와 운동
6·10민주항쟁 등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굳건한 정신적 버팀목이 된
중요한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죠!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날 우리!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워서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든
열사들과 4월 19일
오늘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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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