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제주시 가볼 만한 곳을 찾는다면

해설사님과 함께 아라동 4·3길을 걸으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제주역사를

들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아라동 4·3길'은 영평상동복지회관에서

월평마을을 지나 삼의악오름과

관음사로 이어지는 길이지요.

이곳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닙니다.

제주 4·3사건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죠.

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이 길을

아라동 4·3길 전문 해설사님과 함께 걸으며,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제주 아라동은 전국에서도 가장 큰 동지역으로,

한라산 북벽까지가 모두 아라동이죠.

이렇게 넓은 아라동에서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한라산신제'를 지내왔다고 해요.

원래는 새로 부임한 목사가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산신제를 지냈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물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어 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아, 이약동 목사가

아라동 산천단으로 제단을 옮겨

제사를 지내게 했다고 하죠.

아라동 4·3길 코스 지도

우리는 아라동 4·3길 1코스를 걷기 위해

차를 세우기도 편하고 버스를 타고 내려서

시내 쪽으로 걸어내려오기도 편한

1코스의 시작점, 산천단에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산천단은 바로 그 '한라산 산신제'를

올리는 장소였으며, 그 외에도 산천제, 포신제,

기우제 등 오랜 시간 사용된 제사터로 알려져 있죠.

만남과 동시에 해설사님의 옛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라산 산신제를

지내지 못하게 해도 새벽 첫 닭이 울기도 전에

몰래 제를 올렸다고 전해지고,

마을이 1800년대 말에 사라졌다가 1930년대쯤

다시 생겨 산신제가 계속 이어졌다고 하셨어요.

아라동에서 주체가 되어 진행하던 한라산신제가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주관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라동의 아픈 4·3 역사는 1930년대,

이곳에 다시 생겼던 마을이 불타기 시작하면서

시작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산천단 마을은

총 가구 수가 10가구가 되질 않아,

'잃어버린 마을'로 지정되지도 못하고

8가구가 송두리째 불타 버린 4·3의 현장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산천단의 풍경

산천단은 입구에서부터 엄청난 크기의

곰솔 8그루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 산천단의 화장실

옆으로 흐르던 소림천은 물도 맑고 양도 많아

산신제를 지내는 곳으로 간택된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제는 사라진 소림사와 많은 곰솔들이

빽빽이 뻗은 풍광으로 산천단은 아름다운 곳이었대요.

위 사진은 제를 올릴 때 사용했던 물을

얻을 수 있었던 물통인데요, 사유지인 건물 앞쪽에

두 개 있었다고 하는데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워

밖에서만 살펴보았어요.

한라산신제를 지내던 옛 제단

원래 한라산 산신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뜻의 산천단 안에는

제단이 두 개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예전 제단이고,

현재 한라산신제를 올리는 제단

이것이 요즘에 한라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라고

하시네요. 이런 이야기도 해설사님과 함께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던 내용이죠.

한라산신고선비

4·3시절 총을 맞은 흔적이 남아있다는

이약동 목사가 건립한 '한라산신고선비'

역사를 품고 깎이고 파인 채 서 있었어요.

목사이약동선생 한라산신단기적비

산천단에는 청렴하기로 유명하셨던 이약동 목사를

기리는 비석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시니 산신제도 옮겨 지내게 된 거겠죠.

요즘도 후손분들이 산신제에 참여하고 계신다고 하네요.

발길을 옮겨 큰길로 나와 별빛누리공원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길은 아름다웠지만

주변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진지동굴

엄청 많다고 하셨어요.

문형순 서장묘 가는 길목이었던 곳

이곳은 원래 호국열사이신 문형순 경찰서장묘로

가는 길목인데 지난 6월에 호국원으로 묘를

이장하면서 아라동 4·3길 코스에서 제외될

예정이라고 하니 참고해 주세요.

설새미주둔소로 가는 길

걷기에 운치 있는 이 아름다운 길이

모두 아픈 역사가 있는 길이었다니...

제주말로 베어버려야 할 '검질'들이

수도 없이 솟아 있었지만

제 눈에는 어여쁜 제주의 가을 풍경이네요.

사진에 보이는 이곳은 고려 시대 때 절터

몇 년 전에 건물을 지으려다 문화재인 금동소탑,

화폐, 찻잔 등이 발굴되는 바람에

수풀이 무성한 채로 보존되고 있었어요.

조금 더 걸어들어가니 용천수가 흐르는

설새미(샘)이 있는 곳이 나왔어요.

철판을 들어보니 그 안으로 엄청 맑고

차가워 보이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었어요.

12

이렇듯 이곳은 용천수가 있는 탓

일제강점기 때도 일본군의 전초기지

있었고 제주 4·3사건 당시에는

11연대 1대대 군인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주둔하며 오등리와 아라리 등의

주변 마을 사람들을 희생시켰다고 하셨어요.

4·3평화공원의 '비설'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봉개동 변병생 모녀의 죽음도 이곳의 군인들이

함께한 중산간 일대 초토화 작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곳의 군인들도

제주출신 군인을 없애는 9연대 숙청에 걸려들어

아군에게 전원 총살당하고 만대요.

연안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목축업을 하고

살았다던 오등리 죽성마을로 향하는 길목

어느 돌담 모습. 어여쁜 다육이와 가을을 맞아

예쁘게 색이 변하는 마삭줄로 보이는 식물들이

정말 이쁜 것 같아 사진으로 담아보았어요.

아름답지만 맘이 무거워서인지 왠지 슬펐답니다.

빠알간 잎의 색도 왠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가는 마을의 모습이

나타났어요.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이

올 때마다 늘어난다고 하셨어요.

설새미에 주둔했던 군사 중 장교들이

죽성마을 쪽에서 살며, 꾸준히 학살을

일삼았었는데, 지금은 새로 지은 집들도 많고

경치도 좋아 모두 잊혀가는 느낌이지만

분명 아픈 역사는 존재하니 잊지 말아야겠죠.

길 위에 떨어진 밤

해설사님께서 죽성마을을 걷다가 길 위에 떨어진

밤도 주워주셨어요. 가을은 가을인가 보네요.

정말 신기하죠? 벌어진 밤이라니.

죽성마을길

죽성마을은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은 곳이었어요.

00:19

이날은 특이하게 생긴 구름도 떠있고

날씨도 좋았지만 대나무에서 나는 바람 소리가

희생되신 분들의 휘파람 소리처럼 들렸답니다.

죽성마을 대나무길과 현춘심 해설사님

걷기 좋은 대나무 길을 걸어가다 보니

주인이 없는 묘지도 보였어요.

묘지가 배롱나무와 계단 등 모든 것들이

예쁘게 어우러져 있었답니다.

본래 민가였던 곳에 지어졌다는 죽림성덕흥사

유난히도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잘 꾸며진 절의 길을 따라 큰 도로로 나오니

오등동 죽성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어요.

죽성마을의 공회당터

큰길로 나오니 잃어버린 마을인

오등리 죽성마을의 중심지였던 터도 보이는데,

지금은 활기찬 옛 모습을 상상하긴

어려운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뻗은 무근성까지

쭉 이어진 길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길이었대요.

길 옆으로 보이는 갈색 지붕의 집터는 예전에

'이문안집'으로, 대문이 두 개였을 정도로

큰 집이었다고 해요. 이 일대가 전부 목장으로

목축을 하던 연안김씨 집안의 가족들이

살던 곳이었다고 해요.

그 집은 4·3으로 마을 사람들을 중산간지역에서

내려보내고 불을 붙였지만 집이 너무 커서

다 태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부유한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린 곳, 죽성 마을...

아라동 4·3길의 메밀밭

지대가 낮은 바다 근처 건입동에 사시던

어느 분의 증언에 의하면 "한 달 동안 아라동은

계속 불타고 있었다"라고 할 정도로

마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제주 4·3사건.

죽성마을에서 건입동으로 쫓겨 내려가

제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울고 발만 동동거리던

어린 소년에게 건입동 반장 어르신이 건넨 말,

"저 모습을 기억해라, 절대로 잊으면 안 돼!" 였다고요.

개모시풀 류

해설사님은 식물도 많이 아셔서

예전 한복에 신는 여성용 신발을 만드는 데

쓰던 풀도 설명해 주셨어요.

벚꽃이 피면 예쁘다는 아라동 4·3길

숲길의 정취에 빠져 걷다 보니 나오는 길을 놓쳐서

조금 돌아 다시 큰길로 나와 걷게 되었어요.

도란도란 해설을 들으며 걷는 걸음이라

피곤하지가 않았지요. 이런 아름다운 길을

차 없는 도로 행사 때 걷는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며 걸었답니다.

제주 양씨 열녀비

제주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예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양씨 열녀비가 나타났어요.

16세의 나이에 연하의 남편과 언약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약혼을 하자마자 병으로 죽은

약혼자와 사후 혼례까지 올린 것도 모자라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 한 달 후

세상을 떠났다니!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을까요?

뭉클해지는 내용이었어요.

아라일동 포제단

열녀비를 지나자 바로 잃어버린 마을인

웃인다 마을이 나옵니다.

제주 4·3 잃어버린 마을 중 하나인

웃인다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공원에 있었어요

농축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자연마을이었던

웃인다 마을의 사람들. 복원되지 않은 마을이

되어버린 이곳. 찡한 맘이 또 올라옵니다.

양재해묘가 있는 곳으로 가던 중

아라동 4·3길 지도에는 없지만 인다마을

새마을금고 앞에 있는 배움의 옛 터

들러보았어요. 이곳에 학교가 있었다니,

4·3으로 소실된 것이 아쉽네요.

배움의 옛터 앞이 4·3성이 쌓여있었던 곳이었대요.

아라동 4·3길에 있는 인다 4·3성은

아라일동6082에 일부 남아있는데,

표식도 없고 원신 아파트 담처럼 스며들어 있어서

이곳을 찾기 힘들다고 문의가 많다는 해설사님의 말씀이 있었어요!

아라동4·3길은 표시는 올레길처럼 짧은 거리마다

표시를 해주는 강한 소재의 리본도 아니고

몇 개월 지나면 흐물흐물 약해져 제 역할을 못하는

리본과 그나마 표식도 얼마 없어 찾기 힘든데요.

제주도,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의인이었지만 역적으로 몰려 무덤도

못 만들고 억울하게 죽은 양제해라는 위인을

마을 사람들이 무덤을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던

양제해묘는 해설사님조차도 모르는 사이

사라져있었어요. 200년도 넘은 무덤이어서

학생들도 매우 흥미로워 했었다고 하시면서

많이 안타까워하셨답니다.

후손이 이장을 한 것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양제해묘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월두마을 경찰파견소 옛 터를 방문해 보았어요.

이곳의 표지판도 본래 설치되었던 곳이 아니라

구석 한쪽 벽에 기대어 세워진 듯 보였어요.

지금은 복지회관 자리가 되어 있었지만 왠지

옛날 경찰들이 4·3성을 쌓도록 독촉하고

밥도 차리도록 하는 등 횡포를 부리는 모습

보이는 듯 느껴져 맘이 답답해졌답니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박성내를 찾아

발길을 이어갔어요.

이곳은 원래는 바가지모양 바위가 있는

내천이라고 해서 '박석내'라고 불렀다는데

언제부터인지 누군가의 실수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의 이름처럼 오류가 생겨 아라4·3길을

처음 만들 때에도 표기가 잘못되었다고 하셨어요.

그 증거로 박석내의 오래된 교각의 이름은

'박석교'로 잘 표기가 되어 있었죠.

어찌 바로 옆에 다른 이름으로 표지석이

세워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박성내길

자수하면 살려주겠다던 말을 믿고 자수를 했던

100여 명의 사람들이 토벌대에게 속아

이곳에서 야밤에 대학살이 일어난 것이었어요.

상부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다며 죽어달라고

했다며 그날을 증언하시는 분의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그분은 시체들 사이에 깔려 죽은 척하다가

도망쳐 살아난 단 한 명의 생존자이셨대요.

시신에 불까지 질렀는데 얼마나 시신이 쌓였는지

아래쪽까지 불길이 오지 못해 간신히 목숨을

구하신 거죠. 이렇듯 4·3을 지나오신 분들에게는

끔찍한 장소가 이제는 너무나 평화로운 곳으로

바뀌어 있었답니다.

이곳이 사유지 문제로 산천단에 위치하지 못하고

박석내 인근에 위치한 아라4·3길 안내센터예요.

저처럼 생생한 진실을 들으며 오감으로

제주 4·3사건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해설사님과의 동행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근무는 총 두 분으로 센터에 계속 상주하고

계시지는 않다는 점, 참고하시고요.

센터 앞에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으니

차를 세워두고 이동하셔도 되고,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시고 가능하신 시간에 체험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지난봄부터 아라동 4·3길을 좀 더 알리기 위해

점검이 실시되었다고 하니, 곧 더 나은 모습의

역사길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주 4·3사건이 남긴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이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길,

아라동 4·3길!

다음에는 이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과

배운 것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의 의미를 알기를 바랍니다.

아라동 4·3길 해설 프로그램 문의

☎ 064-702-4342


제주시 가볼 만한 곳

해설사와 함께 걷는 아라동 4.3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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