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70부터 꽃피는 우리 인생 작품에 담아요 [2025년_2월호]
인생은 70부터
꽃피는 우리 인생 작품에 담아요
여주에서 삶과 예술을 함께 꽃피운 어르신 예술가들이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의 깊이와 인생의 철학이 담긴 작품을 완성해냈다. 도자부터 회화, 수묵화, 서예까지 다양한 예술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특별한 여정에 함께 동행해본다.
글 두정아 사진 박시홍
취미·여가 활동으로 행복한 노년을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한 필수 요소는 무엇일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가구는 현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경제 활동(25.4%)이 아닌 취미·여가 활동(37.7%)을 꼽으며 삶의 질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고령층의 여가 활동은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고 관계망 형성과 소통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우울증 예방 및 삶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한 번 이상 참여한 여가 활동 1인당 평균 개수는 16.4개로 전년 대비 증가했고, 특히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전년 대비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났다. 통계를 통해 노년층의 여가 활동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만큼, 고령층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우리 동네 예술가들의 특별한 여정
어르신들의 문화 향유 기회와 예술 창작의 기회가 다변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주에서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평균 나이 78세. 여주의 어르신 예술가 7인이 그동안 완성해온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뜻깊은 행사가 개최된 것. 지난달 막을 내린 전시회 ‘꽃피는 인생, 우리 동네 예술가’는 단순한 예술 결과물이 아닌 세월과 삶이 오롯이 담긴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전시였다. 또한, 예술은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자리였다.
빈집 예술공간 1층 전시실에서 열린 이번 작품전은 어르신 예술가 7인의 일상과 창작 과정을 영상과 작품으로 기록해 관람객에게 함께 선보였다. 전시에는 신동순·허경자(회화), 김경애(도자), 황정호(서예), 조춘자(수묵화), 안정화·전정애(닥종이 인형 공예) 등이 참여했다.
과거의 회상, 자신의 이야기, 삶에 대한 성찰과 교훈 등 작가들의 예술 활동 이야기가 담긴 영상과 창작 작품 25점이 전시됐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어르신 예술가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붓을 들 수 있는 그날까지 그리고파”
신동순 (92세)
색연필로 색의 조화를 탐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동순 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손녀딸이 선물해준 스케치북이 새로운 삶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니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내 생각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니 참 재미있어요. 싫증도 안 나요. 요즘에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데, 자식·손주들 주려고 10장 그리고 있지요.”
그의 그림에는 화사한 꽃과 나무, 새가 각각의 색을 입고 화사하게 펼쳐져 있다. 꼼꼼하게 칠한 흔적 속에서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꽃을 원래 좋아해요. 예쁘잖아요. 요즘에는 예쁜 것만 보면 그렇게 그리고 싶어져요. 내가 붓을 들 수 있는 그날까지 아름다운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운동 삼아 시작한 그림이 공모전 대상으로
허경자 (85세)
“나이가 있으니 손 운동을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여주시노인복지관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는데, 상까지 받았어요. 복지관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하지요.”
삶의 소중한 기억을 따뜻한 그림으로 담아내는 경자 씨. 난생처음 그린 그림이 2021년 경기복지재단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경자 씨의 그림은 지나온 아름다운 추억을 전한다. 초가집에서 살던 시절 낚시를 해온 아들의 모습, 시골집에서 닭과 병아리를 기르는 풍경,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함께 웃고 떠들던 기억들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회에 가족은 물론 성당 분들이 많이 오셔서 축하를 해주셨어요. 작품 활동으로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뜻깊은 전시회를 열어주신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 관계자분들도 너무 감사합니다.”
도자의 고장 여주에서 만난 창작의 기쁨
김경애 (79세)
앞만 보고 살아왔다. 문득 지난날을 돌아보니 ‘이제라도 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후 여주에서 도자를 배우게 된 것은 그동안 몰랐던 창작의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여주가 도자의 고장이잖아요. 여주시노인복지관에서 도자기 반을 만든다는 공고가 나서 신청했는데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도예 공부는 끝이 없어요. 유약 처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 다르게 나와요.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고민해야 해요.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죠. 무엇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경애 씨는 작품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오롯이 담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상 기온으로 어려움을 겪잖아요. 흙을 빚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나무와 동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지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서예로 전하는 삶에 대한 성찰
황정호 (73세)
“2023년 사경을 헤매는 고통을 겪었어요. 의사가 가족에게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지요.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59일 만에 살아서 나왔어요. 제 작품을 통해 디딤돌 같은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서예를 통해 글씨의 아름다움을 느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도 하게 된다는 정호 씨는 “정서적으로 서예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서예 활동을 하며 여러 차례 전시회에 참여해왔는데, 고향인 여주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루 2~3시간씩 연습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붓으로 담아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글씨를 새겨 넣은 병풍을 제작하는 것이 꿈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건 저절로 숙성되고 익은 것이 아니지요.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서예는 비울 줄 아는 삶을 가르쳐줍니다. 꼭 한번 배워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다시 찾은 열정…수묵화에 담긴 꿈
조춘자 (81세)
대한민국창작미술대전 특선과 국제미술대전 동상 수상에 빛나는 춘자 씨는 바쁜 일상에서 예술의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작가의 타이틀을 내려놓은 채 일상을 살아오던 그는 여주시노인복지관 수묵화 수업을 통해 다시 붓을 들게 됐다. 새로운 창작 활동을 통해 전보다 한층 깊어진 다양한 미적 균형을 탐구 중이다. 수묵의 흑백 세계의 매력을 전하고, 매화를 통해 색채의 조화로움을 전파하고 있다.
“수묵화는 수정할 수가 없어요. 작은 획 하나가 빗나가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지요.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굉장히 힘든 작업이라 집중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힘겨운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면, 얻게 되는 행복과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다시 피어오른 열정으로 그는 쉼 없이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춘자 씨는 “많은 분이 수묵화의 매력을 알고 배움에 도전해보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닥종이 인형 공예로 창작의 재미 얻어
안정화(72세)
“부모님 돌아가시고 아이들 출가시키니 마음이 허해지더라고요. 우연히 닥종이 공예를 시작했는데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열심히 만들다보니 대한민국 한지대전에서 특선도 받게 됐지요.”
닥종이 인형 공예는 한지를 한 장 한 장 붙이는 작업을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스토리를 구상하고 인형을 만들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한다.
“닥종이 공예는 망가져도 고칠 수 있어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드리고 만들면서 모양을 완성해가요. 혼자 놀기에 좋고 손과 머리를 계속 써야 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아요.”
그는 눈 뜨자마자 인형을 만들며 설레는 하루를 시작한다. 닥종이가 주는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 섬세한 감성이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작품을 보시면서 추억을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잊혀가는 옛 추억을 소중히 느껴보는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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