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나들이 장소를 찾는 분들을 위해

골목마다 감성이 가득한

서촌 산책 코스를 소개합니다.

자세한 내용, 함께 살펴보실까요?


서촌 골목길 대오서점

며칠 전 아이와 함께 서촌을 거닐다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 적힌 기념비를 발견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번잡한 길가에 초라하게 선 작은 비석이 대왕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탓이다. “세종대왕은 궁궐에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아이 질문에 파란만장했던 조선 건국을 되짚다보니 세종이 태어난 공간이 한낱 비석으로만 남았다는 게 새삼 안타까웠다. 그래도 이곳을 기억하려는 이들이 많다. 세종대왕 탄생지를 기념한 세종마을이란 이름이 그러하다. 또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이상과 윤동주가 한글로 시를 짓던 마을도 여기다. 아이와 함께여도 좋고, 이제 막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가볍게 머리를 식히기에도 그만이다.

세종대왕이 탄생한 준수방은 지금의 통인동 일대로 추정된다. 통인시장 입구에 표지석이 있다.

세종이 태어난, 경복궁 서쪽 마을

시인 이상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터에 꾸며진 공간 ‘이상의 집’

세종은 1397년, 그러니까 할아버지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지 6년째 되는 해에 태어났다. 그가 탄생한 5월 15일에서 스승의 날이 유래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아버지 태종은 세자가 아닌 왕자 신분이었고, 때문에 세종은 궁궐이 아닌 한성부 북부 12방 중 하나인 준수방 잠저에서 출생했다. 준수방은 지금의 통인동 일대로 추정된다. 그동안 학자들이 정확한 사저 위치를 찾아내려 애썼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통인시장 입구에 작으나마 기념비를 세우고 세종마을이란 이름을 덧붙여 성군의 숨결을 기억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집 궁금했는데, 엄마도 그렇죠?” 아이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마을을 일컫는다. 흔히 북촌에는 권문세가들이, 서촌에는 하급관료인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 초기 서촌 일대에는 왕족이나 사대부 등 권력자들이 집거했다. 태종과 그의 아들인 효령대군,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을 비롯해 광해군은 여기에 궁궐을 짓기도 했다.

왕족뿐 아니라 무려 15명의 정승을 배출한 신 안동김씨 세력도 대대로 이 지역에 거주했다. 그러다 숙종 때 이르러 도성에 인구가 급증하자 무너진 궁궐터에 군인과 평민들이 들어와 살도록 허락했다. 이때부터 서촌에 중인들이 머물러 살기 시작했고,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골목길 따라 그윽한 우리글의 향기

이상의 시를 모티프로 제작한 기념엽서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가 시인 이상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서촌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꽃피운 대표적인 시인, 이상과 윤동주다. 통인동에 남은 이상의 집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공간으로, 한때 철거 위기에 놓였던 것을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보전·관리 중이다. <날개>와 <오감도>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상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어른들에게도 낯설고 어렵다. 때문에 아이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저만의 감각으로 느끼고 이해하기를 바랐다.

아이가 먼저 관심을 보인 건 이상의 시를 모티프로 제작한 기념엽서였다. “이건 삼각형, 사각형 꼭 그림 같아요!” 어린 관람객을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었던 해설사의 눈이 반짝였다. “어머나, 이상 시인은 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시를 쓸 때도 한글을 기호처럼 사용했는데, 그걸 발견하다니 너 대단하다!” 요란스런 칭찬에 아이는 우쭐해져서 시인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집이 사실은 큰아버지댁이었고, 어린 나이에 양자로 입양된 그가 재혼한 큰어머니로부터 모진 차별을 겪었다는 이야기에 제법 깊은 한숨까지 쉬어 보였다. “난 엄마가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데, 시인은 그런 말을 듣지 못해 정말 외로웠을 것 같아요.” 아이의 말에 작은 마당 한편, 잔뜩 흐린 하늘을 머리에 얹은 채 선 시인의 동상이 문득 안쓰럽게 느껴졌다.

수성동 계곡으로 향하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윤동주 하숙집 터’

이상의 집을 나와 수성동 계곡으로 향했다. 오르막길 첫머리에 윤동주 하숙집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 이곳에는 소설가 김송이 살던 오붓한 한옥이 있었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윤동주는 이곳에서 후배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했다. 이 기간 동안 그 유명한 <별 헤는 밤>과 <자화상>이 탄생했다.

생애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정병욱에 따르면 매일 아침 윤동주는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하고 산골짜기 맑은 물로 세수를 하며 잠을 깨곤 했단다. 우리도 그 흔적을 따라 걷기로 했다.

(좌) 시인의 언덕 / (우) 인왕산 전망대

우람한 인왕산 자락에 겁을 먹은 아이는 “설마 저 산꼭대기를 가는 건 아니죠?” 걱정스런 눈빛이더니, 시인의 언덕에 이르러선 “와아, 여기 매일 올라온 이유가 있었네요!” 탁 트인 전망에 감탄했다.

언덕 아래 윤동주문학관도 빼놓을 수 없다. 버려진 물탱크와 수도가압장을 활용한 문학관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담아낸 건축물로 유명하다. 특히 시인이 마지막 숨을 거둔 후쿠오카 형무소를 떠올리게 하는 영상실은 아이들에게도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버려진 물탱크와 수도가압장을 활용한 ‘윤동주문학관’

눈으로, 입으로 즐기는 서촌 감성

통인시장의 인기 메뉴 기름떡볶이

통인시장은 서촌의 감성을 입으로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이곳의 인기메뉴는 기름떡볶이인데, 이름 그대로 널찍한 팬에 가늘고 쫄깃한 떡볶이를 고추장 또는 간장과 함께 볶아낸 것이다. 모양은 조금 낯설어도 익숙한 식감 때문인지 아이도 무척 맛있게 먹었다. 엽전을 구입해 시장에서 파는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담을 수 있는 도시락 메뉴도 아이와 함께 시도해보기 좋은 색다른 경험이다.

시장 후문 근처에 자리한 중식당 영화루도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으로 독특한 감성을 자아낸다. 1970년대부터 한결같은 손맛을 자랑하는 이곳은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고추간짜장이 대표 메뉴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짜장면과 탕수육도 훌륭하다.

대오서점은 1951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이다.

같은 골목에 자리한 대오서점도 아이들과 잠시 걸음을 쉬어가기 좋다. 1951년에 처음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이기 때문. 낡은 간판과 옛 한옥을 그대로 활용한 내부가 드라마와 뮤직비디오에도 여러 번 등장했을 만큼 서촌의 감성을 대변한다. 현재는 카페로만 운영되는데, 손때 묻은 가구와 생활소품들이 곳곳에 자리해 아이에겐 마치 박물관처럼 여겨진다.

✔ 엄마 여행작가의 꿀팁!

- 이상의 집 운영시간은 화~일요일 10:00~17:00(12:00~13:00 휴게시간), 입장료는 무료예요.

경험상 내부 사정으로 단축 운영하거나 임시 휴관하는 경우가 많으니 방문 전에 꼭 전화로 운영 여부를 확인하세요.

- 윤동주문학관 운영 시간은 10:00~18:00(13:30~14:00 휴게시간), 입장료는 무료예요.

종로구에서 운영하는 누리집이 있으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다양한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가장 빠르게 알려줘요.

11월에는 매주 토요일 문학관 투어와 함께 하는 원데이클래스를 운영 중이에요.

- 수성동 계곡은 평소 물을 보기 어려워요.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린 다음날 찾으면

도심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원스런 물소리를 즐길 수 있답니다.

- 통인시장 내 고객만족센터 2층에서 엽전과 도시락을 판매하고 있어요.

평일에는 11:00~15:00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11:00~16:00까지 운영되고, 엽전은 500원 단위로 구입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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