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시간 전
도연명의 취석과 화산리 고인돌이 있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고창 취석정
도연명의 취석과 화산리 고인돌이 있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고창 취석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에는 정자(亭子)가 참 많습니다.
정자는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 선비나 마을 사람들이
경치를 구경하며 놀기 위해 지은 아담한 집을 말하는데요,
기둥과 지붕을 설치하고 마루에 방이 하나 있는 것과
마루만 있는 정자가 대부분입니다.
고창 지역의 정자는 전북특별자치도에서 가장 많다고 하는데요,
1994년 발간한 <전북향교원우대관>에 의하면
조선시대 116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전통 정자는 취석정, 석탄정, 세한정, 풍암정,
쌍괴정, 삼호정, 영취정, 송계정 등 이라는데요,
그중 고창읍 화산리에 있는 취석정을 찾았습니다.
오늘 탐방하는 취석정도
영산기맥 축령산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고
지대가 높아 옛사람들이 정자를 짓는다면
딱 어울리는 장소라고 하겠습니다.
고창 취석정이 다른 정자와 달리 특별한 점은
1546년에 세워져 고창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이며
그보다 더 오래된 고인돌이 무려 13개나 밀집해 있기 때문입니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무리 지어 분포하고 있으며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요,
전북특별자치도에 있는 고인돌의 65% 이상인 1,748기의 고인돌이
곳곳에 밀집하거나 산재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죽림리 일대에 447기의 고인돌이 밀집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가 드물다고 하는데요,
취석정 주변에도 고인돌 13개가 밀집해 있습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취석정 부근 화산리 호동마을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폐촌 되었다가
밀양 박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취석정(醉石亭)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1546년 노계 김경희(蘆溪 金景熹, 1515~1575) 처음 지었다고 합니다.
김경희의 부친은 호동마을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김기서 강학당의 주인공 김기서(金麒瑞)인데요,
김기서는 조광조 문하에서 매형 양팽손 등과 강론하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와 신진 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은거했으며
1548년 후진 양성에 힘쓰고자 세운 것이 김기서 강학당입니다.
반면, 아들 김경희는 호동마을에서 태어나
1534년 식년시 생원 3등 34위로 합격하고 곧바로 문과에도 합격했지만,
김안로(金安老) 일파의 농간으로 불합격 처리되자
당시 중종 임금이 금장(金粧)으로 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집(杜詩全帙)을 하사하며
위로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고 합니다.
김경희는 계속 공부에 매진했지만,
1545년 을사사화로 더 이상 벼슬길로 나서는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1546년 취석정을 짓고 여러 제현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논하고
100여 명에 이르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고 합니다.
현재의 취석정은 오랜 세월 빈터로 남아 있던 취석정 터에
후손들이 1871년 중건한 정자인데요,
1997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취석정 담장 내에서 수많은 고인돌이 모여 있습니다.
화산리 고인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요,
13개의 고인돌 중 담장 내에 7기가 몰려 있으며
담장과 경계를 이루는 고인돌도 있습니다.
김경희가 취석정에서 교유하고 학문을 논한 선비들은
정자(鄭滋), 이만영(李萬榮), 송인수(宋麟壽), 심광언(沈光彦), 양응정(梁應鼎) 등이라는데요,
정자는 송강 정철의 형이고, 이만영은 임영대군의 후손으로 훗날 평안도 관찰사까지 지낸 인물이며,
송인수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심광언은 취석정 건립 이후 이조참의와 이조참판, 이조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지냈으며
양응정은 취석정 건립 당시에는 선비였다가 이후 1552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합격한 뒤
1556년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 한 인물입니다.
심광언이 1567년 광주목사로 재직했으니 그리 멀지 않은
고창 취석정의 김경희와 서로 교류도 있었을 건데요,
교유하고 학문을 논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니
김경희도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취석정 내부에 있는 고인돌 중 특별한 고인돌이 하나 있습니다.
상부에 네모 반듯하게 구멍을 팠는데요,
취석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입니다.
취석정의 취석(醉石)은
중국 진(晉) 나라 시대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집 앞 돌 위에서
잠들었다는 고사에서 비롯한 이름인데요,
진나라 여산(廬山) 앞을 흐르는 강물 가운데 있는 돌을 반석이라고 부르는데,
반석 위에 도연명이 술에 취해 누워 파인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연명취석(淵明醉石)’이라고 부른다는데요,
고창 취석정에도 연명취석의 흔적이 고인돌 하나에 남아 있습니다.
취석정은 지대가 높아 기단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기둥은 원형으로 된 두리기둥인데요,
사방으로 난간이 있습니다.
정면과 측면 모두 3칸씩이지만, 정면이 측면보다 조금 긴 장방형인데요,
가운데 1칸이 방입니다.
마루 중앙에 있는 방은 사방으로 문이 달렸으며
그중 정면과 후면은 분합문이고
좌우는 문을 들어 올려 걸쇠에 거는 문입니다.
마루를 한 바퀴 돌면 수많은 편액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취석정기와 문인, 후손들의 시문입니다.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취석정도 보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 고인돌도 함께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고창 여행이 되었는데요,
머지않은 곳에 김경희의 부친이 후학을 가르친 김기서 강학당이 있고
노동 저수지 아래 고창꽃정원과 자연마당이 있으니
꽃 피는 봄이 오면 취석정과 함께 둘러보면
좋은 여행지로 추천합니다.
#전북여행 #고창군 #고창여행 #고창문화유산 #고창취석정 #화산리고인돌
- #전북여행
- #고창군
- #고창여행
- #고창문화유산
- #고창취석정
- #화산리고인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