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각국조계지계단을 걸으며

인천 조계지 역사를 알아봅시다!

각국조계지계단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인천 개항장에는

'조계지'가 설치되었습니다.

조계지는 외국인들이

자유로이 거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선에 진출한 열강들은

개항장 일대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에 바빴는데요.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에 이어,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과 조약을 체결하며

인천에는 약 14만 평에 해당하는

조계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조계지 경계부에는 당시의 만국공원,

지금의 자유공원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두고

경사지에 석조 계단을 설치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청일조계지 계단

당시 청나라 조계지와 일본 조계지를

구분하던 계단입니다.

그런데 개항장에 또 하나의 조계지 계단이

남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바로 각국조계지계단입니다.

인천제일교회를 끼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한눈에 봐도 오래된 계단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낡은 계단이지만,

알고 보면 개항기 당시 모습과

비슷하게 보존된

각국조계지계단이랍니다.

현재 관동 1, 2가 및 송학동 1, 2가의

경계이기도 한 각국조계지계단은

총 136개의 층계6개의 계단참이 있습니다.

계단 전체는 7개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계단을 이루는 석재

주변의 석축과 조경수와 어우러져

근대 분위기 특유의

고풍스럽고 그윽한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석축만 남아 있지만

개항기 당시에는

계단 주위로 서양식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계단 아래쪽에는 오례당,

계단 좌측에는 이마무라 주택, 헨켈 주택이,

우측에는 경찰서장 관사, 우리탕 주택,

데쉴러 주택 등이 있었고,

세창양행 사택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도

이 계단을 이용하여

회사와 숙소를 오갔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은 이용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 한적하지만,

사실 이 계단은

인천항에서 응봉산으로 오르는

주요 통로였을 뿐만 아니라,

1908년 홍예문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관동에서 전동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행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자유공원 바로 밑 제물포구락부 건물 옆에서

각국조계석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표지석은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 보존하고

이곳에는 복제품을 세워 놓았는데요!

각국조계석은

조계의 경계를 알려주는 표지석입니다.

앞면에는 각국지계,

뒷면에는 조선지계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표지석이 각국 조계지와

조선인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 어디쯤 세워져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네요.

불과 한 세기 전,

각국조계지계단과 조계석이

서 있던 곳 너머는 분명 우리 땅이지만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던 것이죠.

이를 생각하니, 저 조그만 비석이

마치 거대한 담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인천 개항장에서

개항기 복장을 하고 거리를 거니는

분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개항장에 방문하게 된다면

개항기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각국조계지계단을 올라 보는 건 어떠신가요?

어쩌면 백여 년 전 그때 시공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각국조계지계단>

※ 본 게시글은 제12기 인천시 SNS 서포터즈 최용석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title":"인천 차이나타운 근처 볼거리 개항기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각국조계지계단(feat. 나의해리에게 촬영지)","source":"https://blog.naver.com/incheontogi/223681088793","blogName":"인천광역시..","blogId":"incheontogi","domainIdOrBlogId":"incheontogi","nicknameOrBlogId":"인천시","logNo":223681088793,"smartEditorVersion":4,"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