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전
삼형제의 우애가 돋보이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고창 삼호정 & 옥천조씨 덕천사
삼형제의 우애가 돋보이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고창 삼호정 & 옥천조씨 덕천사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삼호정
고창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정자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곳입니다.
그만큼 고창이 인물도 많이 나고
문화 예술도 흥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정자를 지은 사람의 인품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고창읍에서 무장읍성으로 가는 동서대로 아산 교차로에서
선운산 도립공원으로 가는 인천 강변로에 있는
삼호정(三湖亭)입니다.
정자 바로 앞에는 주진천이 흐르는데요,
옛날에는 인천강으로 불리다 1911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배가 드나들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주진천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이야 곡류 하천이었던 주진천이 직강화 돼
주진천 둑에서 30m 정도 떨어지고 길도 새로 났지만,
옛날에는 삼호정 바로 앞으로 곡류였던 주진천이 흐르고
기암괴석이 장관이어서 역대 고을 수령들이 자주 찾던 경승지라고 합니다.
삼호정(三湖亭)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아산면에 살던 옥천조씨(玉川趙氏) 삼형제가 1715년에 지었던 것을
후손들이 1864년 중건한 정자입니다.
정자는 보통 높은 벼슬을 지내던 사람이 벼슬을 관두고 낙향해
정자를 짓고 후학을 기르던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삼호정은 인호 조현동(仁湖 趙顯東), 덕호 조후동(德湖 趙垕東), 석호 조석동(石湖 趙錫東)등
옥천조씨 삼 형제가 셋이라는 삼(三)에 각각의 아호 뒷글자인 호(湖)를 더해
정자 이름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삼 형제는 옥천조씨 고창 입향조 조덕린(趙德隣)의 현손으로
조덕린은 임진왜란 당시 장성 남문 창의소에서 의병 창의 때 전 재산을 털어 지원했고
전쟁 후에는 고창읍 월암리 검암에 살던 창녕조씨(昌寧曺氏) 조헌(趙憲)의 딸과 결혼해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에 정착해 옥천조씨 고창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정자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편액이 걸려있는데요,
조후동의 삼호정기(三湖亭記) 등 3편의 삼호정기와 시인묵객, 후손들의 시
그리고 삼 형제의 우애를 엿볼 수 있는 각자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둘째 덕호 조후동이 지은 삼호정기에는
누정의 이름이 삼호(三湖)가 된 이유가 적혔는데요,
당시 삼호정의 아름다운 풍경에 소요(逍遙)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양(牟陽)에서 하나의 띠처럼 긴 냇물이 두 봉우리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고
잔잔한 물줄기가 호수를 이룬 곳이 십수 리에 이르러
옛날 사신들이 경유하는 관로(館路)였다.
겹겹이 포개진 바위가 비늘처럼 쌓인 채 뿜어대는 물을 막고 있으며
깊이는 방주가 통하고 고기와 자라까지 산다.
선대가 호수에서 머지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우리 삼 형제가 호수 위쪽에 작은 누정을 지었는데,
형은 물의 이름을 취해 인호(仁湖), 나는 물의 성질을 취해 (德湖),
막내는 물의 돌을 취해 석호 (石湖)라고 짓고 비록 누정이 쓸모없을지라도
우리 삼 형제는 서로들 즐겁고 화목하게 지내며
꽃과 버들이 아름다울 때는 함께 휘파람 불고 시를 읊조리고
바람과 달빛이 좋은 밤에는 서로 함께 소요(逍遙)하다 돌아가는 것도 잊었다
삼호정은 정면 3칸에 측면 3칸 정사각형 정자로
한가운데 1칸짜리 방이 있습니다.
바닥은 마루여서 술에 취해 누우면 아주 시원할 것 같은데요,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삼호정기 글도 있습니다.
때때로 흥취를 틈타 호숫가를 산보하기도 하고
때때로 옷깃을 젖히고 누정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기도 했다.
화수회의 모임에는 원외랑의 옛 집안이라고 칭송하고,
오얏꽃 뜰에서의 잔치에는 이백의 즐거움을 펼치니
이것이야말로 모두 돈독과 화목과 우애한 까닭이다.
그래서 이 누정에서 술 마시거나 읊조리는 것 또한
이전 사람들에게 많이 뒤지겠는가?
정자의 뒤쪽은 높게 누마루를 달아 문을 활짝 열면
방바닥에서 단이 하나 높은 모습인데요,
그곳에 앉아 풍류를 즐겼을 모습을 상상해 보니
당시 삼호정은 주진천과 함께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 형제는 시문에도 능해
서로 시를 짓고 노래하며 우애 있게 지냈는데요,
삼호정기에는 훗날 이 정자를 찾는 사람들이 세상에 은둔하는 자약한 후손으로
명예와 이익에 뜻을 접고 산과 물 사이에 자취를 내놓았으니
훗날 누가 이 누정에 올라 삼 형제의 시를 통해
자신들을 들여다볼 것을 대비한 내용도 있어
300년 후 방문한 낯선 여행자에게 삼 형제의 마음 씀씀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삼호정 주변에 옥천조씨 묘역도 있는데요,
옥천조씨는 전북 순창의 옛 지명으로 고창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현재도 고창 입향조 조덕린의 후손들이 아산면 일대에 살고 있다는데요,
2000년 통계조사에 의하면 고창군에 사는 옥천조씨는 86가구 200여 명으로
선조의 유산인 삼호정을 관리를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옥천조씨 덕천사
삼호정에서 머지않은 곳에 덕천사(德川祠)가 있습니다.
삼호정과 마찬가지로 옥천조씨 관련 유산인데요,
옥천조씨 고창 입향조 조덕린의 증조(曾祖) 조윤옥(趙潤屋)과
신말주(申末舟), 장조평(張肇平) 등
3현과 좌우로 7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홍살문을 사이에 두고
좌측에 옥천조씨세천 지평공파
우측에 덕천사, 삼호정 표석이 있습니다.
홍살문이 있다는 것은 배향인이 꽤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는데요,
배향인 조윤옥(趙潤屋)은 부친이 옥과 현감을 지낸 조희충으로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1455년 승정원 사간(왕의 비서실 종3품 벼슬)을 지내다
단종 폐위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 순창으로 낙향한 분입니다.
같이 배향된 신말주(申末舟), 장조평(張肇平)도 모두 세조의 왕위 찬탈에
'충신불사이군'의 유교정신에 따라 관직을 버리고 순창으로 낙향한 분들로
조윤옥 등 셋은 서로 교유하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조윤옥은 같은 양반이었던 신말주와 장조평과
순창으로 낙향해 어울리면서도 자신이 거처한 집 편액을 돈세(豚世)라 붙이고
스스로 돼지 같은 삶을 살며 끝까지 단종에 대한 지조를 지켰다고 합니다.
덕천사는 외삼문과 영당 내삼문이 포함된 사당으로 구성된 단출한 구조이지만,
다른 지역 사당이 늘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에 비해
덕천사 사당 내삼문은 문이 열려 있어 낯선 방문자에게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아마도 삼호정이 꽤 유명한 정자여서 정자를 찾는 탐방객들이 함께
덕천사를 찾기에 옥천조씨 문중에서 문을 열어놓고
늘 관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요,
덕천사 입구에 있는 후손이 직접 거주하며
덕천사를 관리하는 주택과 밭이 있지만,
탐방은 자유로운 편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덕천사 내삼문 앞에 묘정비와 묘정비 한글 해석문이 있습니다.
덕천사를 자세히 알 수 있는 내용이어서
그 어느 문헌보다 신빙성이 높은데요,
배향인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조윤옥, 신말주, 장조평 외에도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김부(金傅), 한승유(韓承愈), 설산옥(薛山玉),
설존의(薛存義), 오유경(吳惟敬) 등의 이름도 있는데요,
모두 1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조 생육신과 더불어 죽음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의로운 분들이라고 쓰여 있어 검색해 보는데요,
순창으로 낙향한 신말주가 70세가 되던 1499년 귀래정에서
9명의 노인들과 함께 십노계(十老契)를 맺고 십로계첩을 그렸는데 그 계원들입니다.
계원들은 제작된 십로계첩을 각각 한 첩씩 가져갔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신말주의 십로계첩 하나라고 하는데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입니다.
당시 순창지역에서 70세가 넘은 사람은 신말주 포함 모두 10명으로
현재 나이로 치면 100세에 이를 정도로 장수한 분들입니다.
10명이 귀래정에 모여 서로 의논해 생일 순으로 서열을 매기고
나이 많은 순으로 돌아가면서 모임을 주관하자고 결의했다는데요,
1455년 단종 폐위 이후 44년이 흐른 뒤여서
세조의 왕위찬탈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지만,
신말주와 조윤옥 그리고 장조평까지 모두 단종 폐위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인물들이어서 옛날 일은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덕천사는
옥천조씨 고창 입향조 조덕린의 증조부 조윤옥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입니다.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에도 1862년 십로계원을 모신
사당 십노사(十老祠)이 있지만,
같은 십로계원을 보신 고창 덕천사는
1818년 조윤옥, 신말주, 장조평 3편만 배향한 채 창건했습니다.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십로계원 나머지 7분도 함께 배향한 것인데요,
현재의 사우는 1917년 중건했다고 합니다.
고창 선운산 도립공원으로 가는 아산면 길목에 있으니
고창에 가시거든 삼호정과 덕천사를 함께 탐방하며
고창군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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