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기 SNS 기자단 조윤희

배롱나무꽃 사진이 여기저기에서 sns를 뜨겁게 달구는 요즘 작년 어느 무더운 여름의 하루 중 무산사에서의 시간이 떠올라 35, 36도를 오르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다녀왔답니다.

무성한 풀숲 사이에서 '무릉동천 문화지향(武陵洞天 文華之鄕)'이라고 글귀가 새겨진 표지석이 여전히 맞아주는 무산사에 잘 도착했습니다.

무산사가 있는 함안군 칠서면 무릉마을은 주세붕 선생이 조선 중종 때 붙인 마을 이름이래요. '무릉(武陵) 마을'이란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중국의 '무릉도원'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함안 무산사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길 75

(지번. 무릉리 544)

-주세붕의 영정과 유품을 모신 사묘 재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작년에는 무산사(무산서원)의 외삼문이 잠겨 있어서 함안군청에 연락해서 이곳을 관리하고 계시는 문중 어르신과 연락해서 안으로 들어갔었는데 요즘은 군에서 나오셨는지 1시까지 문을 열어둔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이고, 제가 12시 45분에 도착을 했는데 저와 비슷한 시간대에 오신 분들은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시지만 아무래도 저와 함께 안에 갇혀야 할 판입니다~~~ㅎㅎㅎ

외삼문 안으로 들어오면 관리사와 내삼문인 심원문(尋源門)이 있는데 내삼문 앞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무산서당은 합천에서 태어나 함안군 칠원읍 무릉리에서 성장한 주세붕의 본가에 후대인들이 선생을 기려 사후에 세운 것이라지요.

서원 지붕 너머로 배롱나무들이 얼마나 오라고 손짓을 하던지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평면 건물로 공포를 사용하지 않은 민도리집으로 부연(浮椽)이 없는 홑처마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무산서원은 1591년(선조 24) 동림서원(桐林書院)으로 건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하지요. 이후 1660년(현종 1)에 본향 남고(南皐)에 중건되었다가 1676년(숙종 2)에 덕연서원(德淵書院)이란 사액을 받았다고 해요.

1868년(고종 5) 서원이 훼철되자 영정을 종가 사당으로 옮겼다가, 1919년 이 지방 사림의 공론에 따라 공의로 사당 옆에 영각을 세워 영정을 봉안하고,

그 옆에 서당을 세워 무산서당이라 하였지만, 6·25전쟁으로 불탔고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건립한 것으로 무산서당을 건립할 때 장판각(藏板閣)·광풍각(光風閣)·무릉사(武陵祠)와 관리사(管理舍)·전사청(典祀廳)도 함께 재건하였다고 해요

서당 대청에 '敬(경)'자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고, 광풍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도 노란색 '敬'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글자는 주세붕 선생이 쓴 글자의 탁본으로 '성리학의 사상적 바탕을 이루는 핵심 사상'이라고 해요.

작년 방문 시 무산사를 담았었던 사진들 중에서 영정 사진

작년 주세붕 선생의 영정 그림(경남 유형문화재 제142호)을 본 기억이 있어서 올해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유물전시관인 청덕각의 문이 잘 잠겨 있어서 기억만 소환해 보네요.

주세붕(周世鵬)

-출생 - 사망: 1495년(연산군 1) ~ 1554년(명종 9)

-조선 중종, 명종 때의 문신, 학자

내직으로는 주로 홍문관․성균관 등 학문 기관의 직책을 맡았고, 외직으로는 군수․관찰사 등을 맡았으나,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림 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그가 힘쓴 것은 교학 진흥을 통한 백성들의 교화였다고 해요.

주세붕은 상주가 본관으로, 1495년 합천군 천곡리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함안 칠원 무릉리로 옮겨 와 성장하였으며, 향년 60세에 생을 마감한 주세붕 선생은 6살 때 소학을 읽고 이어 사서오경을 접하므로, 글을 읽고 쓰는 집중이 남달라 일찍부터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해요.

어머니의 머리에 이가 많자 자신의 머리를 맞대어 이를 옮겨 받았다고 하는 일화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효자로 칭송을 들었으며,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어린 몸으로 흙을 지고 가서 봉분을 만들고, 고기와 장을 먹지 않았다고 하고 또한 심지어 기르던 개가 항상 그의 곁을 따라다녔는데, 개조차도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 사람들은 주세붕의 효성에 감동되어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지요.


이제, 무산사를 꽃물로 가득하게 뒤덮은 배롱나무를 본격적으로 구경해 보실까요?

무산사를 끌어안은 배롱나무 꽃빛이여~

광풍각으로 향한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면 어느새 배롱나무의 꽃빛 속에 빠져든 걸음을 마주하면서 지금 선 이곳이 내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구나 싶어져 꽃을 들여다보고 8월의 뜨거운 햇살에 빛이 반사된 꽃의 색에 반하게 되지요.

광풍각으로 들어갈 작은 문 역시 닫혀 있어서 돌아서려다 강학 공간으로 사용했던 서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닫힌 창문을 받들고 있는 것 같은 마루에 단아한 여인이라도 앉혀서 배롱나무 사이로 실루엣을 담으면 얼마나 고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겨봅니다.

광풍각에는 주세붕 영정이 봉안되어 있었지만 예전에 도난사고가 있은 후 청덕각으로 옮겼다고 하셨던 설명(작년에 들었던 설명인데 이게 생각이 난다 난다 난다 아이고야~~~)이 아스라이 지나가고 꽃빛은 더욱 제 시선 안에서 춤을 추고~

서당을 중심으로 뒤쪽에 광풍각(光風閣), 무릉사(武陵祠), 장판각(藏板閣)이 일렬로 서 있어,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와는 차이가 있는 무산서당은 지형의 모습을 지혜롭게 잘 이용해서 지은 것처럼 높은 지형은 기단을 세워 건물을 잘 지은 모습은 누구나 보면 고개를 끄덕할 부분일 테죠.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원을 세우시고 인삼의 재배기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주세붕 선생의 흔적이 가득한 무산사 경내 뒤편 오른쪽에 있는 장판각 주위로 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가 마치 여름의 호위무사처럼 위풍당당하게 보입니다.

배롱나무 그 꽃빛에 반하여...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오랫동안 펴 있는 것처럼 보여 백일홍나무(百日紅나무, Zinnia elegans) 또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 배롱나무는 백일홍의 소리가 변해서 배롱으로 되었다고 추정하는데, 원산지는 중국 남부이고, 대한민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약 3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지요.

어느 누가 와서 배롱나무 아래에 서 있으면 놓칠세라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는 것이 무산사의 매력이고 배롱나무의 열심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부처꽃과에 속하며 낙엽활엽소교목인 배롱나무는 6월부터 9월까지 100일 넘게 꽃이 피고 지고 하면서 개화기가 길고 꽃이 아름다워 정원수로 많이 심지요.

추위에 약해 남부 지방에서 공원수와 가로수로 쉽게 볼 수 있으며,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지만, 흰색 꽃이 피는 것을 구분하여 흰배롱나무라 부르는데 이는 품종 변이로 간주한다고 해요.

주로 붉은색 꽃을 피우지만 수종에 따라 보라색, 연보라색, 하얀색을 띠기도 하는 배롱나무는 꽃의 색깔에 따라 꽃말이 조금씩 다르답니다. 붉은 계열은 '부귀', 흰배롱나무는 '말벗, 수다스러움'리아는 꽃말을 가지고 있지요.

줄기를 만지면 모든 가지가 흔들려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며, 남부지역에서는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 묘소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사대부들이 사랑한 배롱나무를 민간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배롱나무의 껍질 때문에 그렇다고 하네요.

배롱나무는 회색의 매끄러운 배롱나무의 껍질이 살과 피부가 없는 뼈와 같고 빨간 꽃은 핏물 같아 죽음을 연상하는 불길한 꽃이라는 속설이 있는가 하면 껍질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속세의 묵은 때를 벗고 수행정진에 힘쓰라는 뜻으로 사찰에 심는다는 속설도 있고, 청렴을 상징하기 때문에 장차 관직에 나가 청렴한 관리가 되라는 의미로 서원에 심었다고 하지요.

배롱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으면 붉은 꽃 대신 하얀 소복을 입은 것처럼 흰 꽃이 3년 동안 핀다는 속설 때문에 충직한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데, 음... 믿거나 말거나 전설의 고향 같은 속설도 있지만 충직과 기개 그리고 부귀의 상징이었던 탓에 사대부들이 정원에 심어 곁에 두고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귀한 나무이기도 했다지요.

순천 송광사의 배롱나무 꽃길, 연못에 담긴 개심사의 배롱나무, 속초 신흥사와 고창 선운사, 안동의 병산서원과 육사로, 울진의 온천길의 가로수, 담양의 명옥헌 경내의 배롱나무 정원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하는데 경남권역에 사는 분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진작가들도 앞으로 더 많이 무산사를 찾을 것 같습니다.

배롱나무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있다지요.

옛날 어느 어촌에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해마다 마을에 내려와 처녀를 한 사람씩 잡아갔다고 해요.

한번은 제물로 바쳐질 처녀를 연모하던 이웃 마을 청년이

처녀를 대신하겠다고 나서 배를 타고 이무기를 찾아 나섰지요.

이 청년을 연모한 처녀에게

"내가 이무기 목을 베면

배에 하얀 기를 내걸 것이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 것이오"

라고 말하고는 이무기를 죽이러 떠났답니다.

청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중

백일이 되던 날 청년의 배가 돌아오는 모습이 멀리 보였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붉은 깃발이 배에 걸린 것을 확인하자 처녀는 자결을 했다지요.

알고 보면 그 깃발은 이무기가 죽으면서

피를 내뿜어 붉게 물든 것인데,...

청년은 가슴을 치며 처녀를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가에서 자란 나무에 붉은 꽃이 백일 동안 피었다고 하며

그 꽃을 배롱나무라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랍니다.

-배롱나무의 전설

한국의 대표적인 허브 중 하나로, 주로 뿌리 부분을 약재로 사용해요. 그 속에는 생리활성물질인 배롱나무검나무과의 함유량이 높아 피부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여드름, 피부염, 습진 등 피부 문제에 탁월한 효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하더라도 약용으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거 아시죠?

사람이 심지 않으면 스스로 번식할 수 없는 배롱나무가 무산사 가득한 것을 보면 주세붕 선생을 기리면서 후학들이 많이 심었던 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충절과 기개가 가득했던 주세붕 선생의 흔적을 기억하려고 말이지요.

8월의 햇살이 득달같이 달려들어도 배롱나무의 꽃빛 아래에 서면 그저 찬란한 색에 머물러 더위는 뒷전이 되는 함안 무산사로 배롱나무 군락을 담으러 놀러 오세요. 그리고 그 아래에서 인증 샷은 기본~~~^^

마지막으로 허우룩한 자작시 한 편 올리며 글을 맺습니다.

배롱나무를 떠올리며/조윤희

영혼이 지나간 자리마다

별을 품은 붉은 꽃 빛이

미끈한 가지들 사이에

우리의 언어를

조용히 매달아 두었다

아롱대며 흔들리는 풍경이

사색의 세계 속으로

흘러들어 올 때

닦아내야만 하는 한낮의 땀들이

쉼 없이 침략해 왔었다

그럼에도

짙게 핀 배롱 꽃잎이

산들바람에 실려와

실오라기 같은 시원함으로

우리의 더위를 다독여주었다

아주 작은 시선의 각도로

그대를 담듯

여름이 날개를 넓게 폈던

배롱나무 꽃빛을

감은 눈 안에서

소환해 본다

배롱나무를 떠올리며 / 조윤희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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