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각(御書閣)은 조선의 태조(太祖)[1335~1408], 영조(英祖)[1724~1776], 정조(正祖)[1752~1800], 고종(高宗)[1852~1919]이 직접 쓴 글씨를 모신 서각(書閣)입니다. 태조의 친필은 1395년(태조 4) 12월 22일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神德王后)[?~1396]의 오빠 강순룡(康舜龍)을 ‘特進輔國崇祿大夫 載寧伯(특진보국숭록대부 재령백)’에 봉(封)한다는 내용을 직접 써서 내린 교지(敎旨)입니다. 특진보국숭록대부는 동반(東班) 정1품(正一品)에 해당하는 관직 등급이고, 재령백은 벼슬과 직위 명칭입니다. 1744년(영조 20)에 강순룡의 후손 강치경(康致卿)이 영조에게 태조가 쓴 교지를 올리면서 알려졌고, 영조는 이 문서에 대한 발문(跋文)을 쓰고 어서각을 짓도록 사액(賜額)을 내렸습니다. 정조의 친필은 신덕왕후 출생지에 세운 비석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성스러운 왕비의 옛터라는 뜻의 ‘聖后私第舊基(성후사제구기)’라는 비명을 직접 쓰고, ‘御製 象山府 神德王后私第舊基碑(어제 상산부 신덕왕후사제구기비)’에는 비석을 세운 이유를 적었습니다. 고종의 친필은 1846년(헌종 12)에 어서각이 건립된 후 고종이 사적(事跡)을 직접 써서 보낸 것이라고 하네요. 진본 태조 어필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 친서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현재 서각 내에는 어서각기 3점과 태조 어필 영인본만 남아 있러요. 어서각은 낮은 야산 중턱 남향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전퇴간에 마루를 조성한 작은 건물이지만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갖춘 형태입니다.

(자료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 아름뜰근린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어서각 입구의 모습입니다. 둥근 돌에 왕지(王旨)라는 제하에 '강순용을 보국숭록대부로 특진시켜 재영백에 봉한다'는 내용이 한문으로 쓰여 있습니다. 왕지는 임금이 직접 쓴 문서로 태조 이성계의 글씨를 그대로 새겨 놓은 비입니다.

오솔길 따라 잠깐 걸으면 숲속에 그림 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어서각인데요,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강순용에세 내린 교지를 후손들이 간직해 왔는데 영조가 이를 알고 친필을 써서 어서각을 건립하도록 하였으며 그 후 고종도 사적을 하사하여 결국 4명의 왕 즉 태조, 세조, 영조, 고종의 친필을 소장하게 된 것입니다. 강순용은 고려 말 문무과에 장원한 후 원나라에 갔다가 1354년(공민왕 3)에 귀국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인물입니다.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가람산 치마대 초야에서 학문에 힘썼는데, 이 무렵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이성계가 용연으로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마침 그곳에 있던 강순용의 여동생에게 물을 부탁하였는데 그녀는 물을 뜬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주었답니다. 이성계가 그 까닭을 묻자, 갈증이 심해 물을 급히 마시다 채할까 봐 버들잎을 띄웠다는 말에 이성계는 감탄하였고 후에 조선을 개국하면서 이 여인을 성후 현비에 책봉하고 남매간인 강순용에게 교지를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어서각 입구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정면에 태조대왕 어필(太祖大王御筆), 양쪽 측면에 정종대왕 친필(正宗大王 親筆)과 고종황제 친필(高宗皇帝 親筆), 그리고 후면에 영종대왕 친필(英宗大王 親筆)이 씌어 있습니다.

어서각으로 들어가 볼까요? 정면에 3문이 담장과 함께 어서각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3문 안으로 들어가서 본 어서각의 모습입니다. 향토 유적 제41호로, 1743년(영조 19년)에 건립되었으며 임금의 친필 교지를 보관했던 곳이랍니다.

정면 중앙에 어서각(御書閣)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3면에 어서각기(御書閣記)와 어서각 중수기(御書閣 重修記)가 붙어 있습니다. 원본은 서울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영인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문 안의 정면 중앙에 강순용을 보국숭록대부로 특진시켜 재영백에 봉한다는 교지가 걸려 있습니다.

어서각을 상징하는 담장도 세워져 있습니다.

담장 아래 심겨 있는 맥문동에 뒤늦게 핀 꽃이 눈길을 끕니다.

어서각을 돌아본 다음 아름뜰근린공원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수령이 200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숲속에 버티고 있습니다. 너무 둘레는 약 4.5m, 높이가 무려 20m나 되는 거대한 체구의 은행나무인데 세종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숲속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무들이 더러 눈에 띕니다. 속은 깊게 팼고 수피에는 초록 이끼가 가득하여 긴 세월 이곳을 지켜오고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오솔길 따라 걷다 보면 세종시 유래라고 써진 돌을 만나게 됩니다. 원수산, 전월산, 괴화산과 금강이 어우러진 세종시의 지리적 특성을 칭송한 글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라고 써진 것을 보니 그다음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 은근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됩니다.

숲속의 오솔길은 흙길이라 맨발로 트래킹 하기에 좋은 길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군요. 행정수도 세종의 명칭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았습니다.

숲속의 오솔길은 정감이 넘쳐 조용히, 그리고 가볍게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숲속 놀이터가 나오는군요. 나이테 관찰, 숲 소파, 흔들다리, 놀이 터널 등 제법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마련되어 있네요.

놀이기구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쁜 쉼터도 마련되어 있어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숲 바람과 함께 매미 소리 들으며 둘러앉아 차 한잔과 담소 나누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아요.

맨발 걷기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근 아파트 주민들께서 맨발로 숲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요즘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조선시대 네 분 임금의 글씨를 모신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어서각을 둘러보며 마음을 살찌우고, 이어 아름뜰근린공원을 산책하면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까요? 아름동에 있는 어서각과 아름뜰근린공원에서 가을맞이 산책을 즐겨보실 것을 강추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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