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대문]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소 생소한 분야에 대한 독서는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하지요.
이번에 읽은 책인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이 책의 저자인 황임경 교수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교수입니다.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황임경 교수는
“의학은 가장 인간적인 과학이고 가장 경험적인 예술이며 가장 과학적인 인문학이다. 또한 가장 실천적인 사회과학이다”,
“의학은 과학을 넘어서는 인간학이며 의사는 과학자를 넘어서는 삶의 목격자이자 기록가” 라고 말합니다.
의료인문학이 한국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포함하여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단어들도 많았지요.
전문용어이기에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을 책을 읽으며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이 병원 응급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할 때 의사들은 의료윤리와 같은 수많은 개념 앞에서 환자만큼이나 절박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황임경 교수가 의료현장에서 겪은 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새겨들어야 할 부분, 혹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사이면서 환자가 되었을 때 환자들과 함께 겪은 질병 경험으로 얻게 된 깨달음도 많았다고 하지요.
마지막 부분에 실린 ‘투병기를 통해 본 죽음’ 편은 여러 번 정독하였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삶과 죽음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이 죽음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삶을 마무리 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닐까요.
삶과 같이, 죽음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뜻을 언제쯤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책에 소개된 연극대사에서 염쟁이 유씨가 “죽어서 땅에만 묻히고 사람의 마음 속에 묻히지 못하면 헛산거여...”
라고 했던 말이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책에 소개된 1인칭 죽음(나의 죽음), 2인칭 죽음(당신의 죽음. 가족이나 친구 등),
3인칭 죽음(타인의 일반적인 죽음)에 대한 부분은 독자들이 많이 공감하면서 읽을 것 같습니다.
질병과 문학, 그림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을 소재로 쓴 문학작품도 아주 많지요?
글에 소개된 조지훈 시인의 시 <병에게>는 병을 자신과 함께 하는 친구라 생각하여 ‘자네’라고 합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이지요.
저도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질병도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조지훈 시인의 시 <병에게>를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병(病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날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애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잖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날 몇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애기해보세그려.
<사진, 글 : 서대문구 블로그 서포터즈 '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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