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를 향해 흐르는 금강의 하류에 위치한 강경은 수운 교통이 발달해서

조선의 3대 시장이라고 불릴 만큼 물류와 상업이 발전했고 문화적으로

근대 문화를 일찍 받아들이며 풍요로운 강경으로 성장했습니다.

일제 강점기까지 이어졌던 풍요로웠던 시대는 경부선을 축으로 하는

철도와 도로 교통의 발달로 강경은 쇠락을 거듭해 지금은 소규모의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웠던 과거를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이곳에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주도한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의 선교사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며 선진 문화를 소개했던 유적들을 따라 숨겨진 보물 같은 성지순례 코스를 답사했습니다.

"강경제일감리교회"

강경 시내에서 랜드마크처럼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종탑이 눈에 뜨입니다.

1904년 강경제일감리교회는 덕유정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지역 최초의 사립학교인 만동학교(1908)와 만동여학교(1913)를 세웠는데

유교의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임리정과 팔괘정이 기독교 선교사들의 학교로 변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소도시로 쇠락한 작은 읍 소재지이지만 교회는 여전히 작지 않은 규모로 유지되고 있으며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지역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의 맞은편에는 강경 근대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주관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문화를 전함으로써 역사인식을 새롭게 일깨워 줍니다.

교회의 정문에서 길을 건너 마주해 황산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강경의 5일 장이 학교 앞 도로에서 주로 벌어지는데 교인들이 장날마다

음료를 준비해서 나누어 주는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강경은 높은 건물들이 없어 교회의 종탑을 보면서 걸으면 쉽게 성지 순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경제일교회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1km 남짓 거리에 붉은 지붕의 강경성지성당이 보입니다.

"강경성지성당"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을 기념하기 위해 1961년에 지은 성당입니다.

1845년 중국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해에서 처음으로 귀국해 정박한 곳이 강경포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당의 잔디밭 한편으로 성모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고

성 김대건 교육관과 예배당이 잘 조성된 정원과 어울려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모습입니다.

본당의 건물은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의 설계로 지어졌는데

배를 뒤집은 듯한 아치형으로 지어져 완공 당시의 구조와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답니다.

붉은 지붕의 모습이 뛰어난 건축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 김대건 교육관이 세워진 옆 잔디밭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지고

그 옆으로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상해의 금가항 성당이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어 짧지만 큰 영향을 준 그의 신앙 일대기를 보여줍니다.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와 함께 타고 온 것으로 알려진 라파엘호를 복원해 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신앙 일대기를 그린 영화 "탄생"의 촬영을 위해 복원된 것이라 합니다.

강경포구 근처에 상륙한 김대건 신부 일행은 교우 구순오의 집에 한 달 남짓 머물며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곳을 기념하는 첫 사목 성지입니다.

"강경성결교회"

김대건 신부 첫 사목지 바로 맞은편에는 일제 탄압에 맞서 믿음을 사수한 강경성결교회가 있습니다.

1924년 이 교회의 주일학교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사건이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에 유리한 내용의 역사교육 수업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교회 앞 마당의 바위에 새겨진 기념비에는 당시의 거부 운동을 묘사한 조각을 볼 수 있는데

경찰에 맞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입모양을 형상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1918년 10월 18일 설립예배를 드린 강경성결교회는 2018년에 100주년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예배를 드렸으니 올해는 106주년이 되네요.

강경의 교회들은 100년이 넘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경성결교회에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옥녀봉 길을 따라 강경의 명소 옥녀봉으로 오르게 됩니다.

"강경성결교회 옛 한옥 예배당"

1923년 지어진 고즈넉한 옛 강경성결교회 한옥 예배당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토착화를 보여주는 정사각형의 한옥 예배당으로 남녀 좌석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한옥 예배당 건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입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전체 건물을 수리 중이라서 내부를 볼 수 없어 사진으로만 보게 되네요.

다음 코스인 "한국 침례교회 첫 예배지"로 가는 길에 옥녀봉을 지나게 됩니다.

옥녀봉 정상에 오르기 전 박범신 작가의 인기 소설인 '소금'의 모티브가 된 소금집이 수리되어 보존되어 있습니다.

잠깐 들려 관람하고 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추후에라도 소설 '소금'을 읽게 되면 기억이 새롭게 나겠지요 ^^

옥녀봉 공원의 시원한 잔디 밭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옥녀봉 정상에서 봉수대를 보고 노을의 명소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기념사진도 찍어 추억으로 간직하면 성지순례 코스가 더 깊게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국 침례회 최초 교회 터"

1897년 미국 선교사 폴링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이며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ㄱ"자 교회입니다.

남녀유별의 엄격한 유교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1943년 일제는 옥녀봉 중앙에 신사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교회를 강제 증여받은 후 교회를 폐교 방화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침례교회 첫 예배지"

인천으로 배를 타고 오고 가며 포목 장사를 해오던 지병석은 미국 선교사 폴링을 만나

침례를 받고 폴링 부부와 함께 배를 타고 인천에서 강경포구로 들어와

1896년 2월 9일에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침례교회의 첫 예배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답니다.

폴링 선교사는 미국에서 파송되어 1894년 한국에 들어왔다가 1897년 강경에서 한국침례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 후 침례교회의 역사를 기록해서 첫 예배지 앞 뜰에 입간판으로 세워 소개하고 있습니다.

강경침례교회의 오늘 모습입니다.

작은 초가집에서 드린 첫 예배가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있네요.

"병촌성결교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여기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병촌성결교회(논산시 성동면 금백리 475)도 방문하면 좋겠습니다.

6.25 전쟁시 순교의 영성이 살아있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옥녀봉에서 내려와 다시 강경 읍내로 들어 서면 유난히 많은 교회의 종탑들을 보게 됩니다.

강경이 인구 수 대비 교회가 가장 많은 도시라고 알려져 있답니다.

현재 강경을 지탱하는 버팀목은 많은 젓갈 상회들과 강경의 교회들이 있어

현재의 강경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고 강경이 근대역사문화 유산이 많아

문화 탐방을 하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 강경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기독교 성지순례 코스가 우리나라의 근대역사 문화를 선도한 유산을 돌아보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선조들의 신앙을 배워가는 일정이 될 것입니다. [서포터즈 황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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