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단감 특산지로 이름난 범서 망상 욱곡 마을에 가기위해 학이 춤을 추는 범서 무학산(舞鶴山, 344m)에 올랐습니다.

이 산은 욱곡 마을을 학이 알을 품어주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입니다.

선바위에서 망성교를 지나 망성마을에 우뚝 솟은 무학산 등정과, 품은 듯 숨겨진 욱곡 마을을 포스팅합니다.

무학산 가는 길은 선바위에서 범서 망성교를 건너 왼쪽 도로를 따라오면 가마정 식당 간판이 나옵니다.

망성은 나무가 우거져 별(星)만 보인다(望)는 뜻입니다. ​

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태화강 물줄기와 푸른 대나무 밭이 압권입니다. 청둥오리가 유영을 하고 왜가리가 먹이를 찾고 있는 광경은 가히 선경입니다. ​이 일대가 옛날에 태화강 덕분에 범서에서 가장 부자마을이었다니 수긍이 갑니다. ​

언양방향으로 태화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소나무가 감싸 주고 있는 동래 정씨 묘가 나오는데 산행 들머리입니다.

동래 정씨묘에는 '통정대부 이조참의 동래 정공지묘'라는 비석이 보입니다.

제법 가파른 숲속을 천천히 30분쯤 오르면 299봉이 보입니다.

산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우렁우렁 흐르는 태화강과 넓은 벌판이 나무 사이로 조망됩니다.

진달래와 산수유 꽃을 피운 나무와 대화를 나눕니다. 자연과의 대화는 공감과 자아성찰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자연의 득음을 들으며 가파른 산 오르기를 계속합니다.​ 그 길은 내 인생이 저렇나 싶기도 해서 숙연해집니다.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 돈다.’는 주자의 무이구곡에 버금가는 무학산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

봄꽃이 반겨주는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갑니다. 허리를 낮추며 오르는 나에게 꽃들이 힘을 내게 격려해 줍니다.

나무는 가지를 휘어 부끄러운 고백이라도 할 자세로 나를 맞이합니다. 수많은 나무와 동행하며 서정을 마음껏 누리며 산길을 오릅니다.

힘든 산행이지만 인생의 길을 가보는 일이라 여기면 참을 만합니다. 인생길도 이 곡진 산길을 오르는 것과 같지 싶습니다.

이 또한 지나간다고 했던가요. 40여 분간 누리며 올랐던 희로애락도 지나갔습니다.

299 고지를 거쳐 깔딱 고개를 10분 가량 오르면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무학산 만디’라는 입간판이 나옵니다.

정상은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산 아래 태화강 물줄기 풍경이 조망되고, 구영과 천상, 굴화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맞은편에는 문수산이 우뚝 솟아 있고, 회색 UNIST 건물, 영축산과 신불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는데 승경 같은 최고의 멋을 선보입니다. 북쪽에는 연화산, 치술령, 국수봉과 옥녀봉이 눈에 잡히고, 독수리와 까마귀가 하늘에 빙빙 돕니다. 상상이 아닌 자연이 만든 작품은 그저 놀랍고 경외롭기만 합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저 꼬불꼬불한 길을 내가 걸었나 싶기도 하고, 내 삶을 뒤돌아보고 성찰하게 해줍니다. 무성한 소나무 사이로 욱곡마을이 얼핏 보입니다.

오른쪽 산 아래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평화스러운 욱곡 마을의 모습이 눈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욱곡 마을은 천연요새 형국입니다. 그래서 6.25 땐 빨치산이 은거지로 삼는 등 슬픈 현대사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진행해 344m 무학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제법 넓은 정상에 앉아 가져온 음료를 나누며 봄날의 정취를 만끽해 봅니다.

​봄바람이 싣고 온 에너지가 번민과 불편을 달래주기 시작합니다. 산을 오른 자만의 특권입니다.

정상석 뒤편 비석에 새겨둔 여나긴곡 전설을 읽었습니다. 총각 여랑과 나비라는 어여쁜 처녀가 어느 봄날 산에서 우연히 만나 땔나무와 나물을 뜯다가 사랑에 빠집니다.

여랑이 화랑으로 차출되어 서라벌로 수련을 떠나자 나비 부모님이 다른 사람과 강제로 혼인을 시키려 하자 목 매어 세상을 하직하고 맙니다. 여랑이 나비에게 달려갔을 때 그 사실을 알고 무덤에 움막을 짓고 슬피 울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 여나산곡이며 신라 향가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연화산 유래이기도 합니다.

돌무덤은 산군들이 주술적 소망을 돌에 담아 쌓았지 싶습니다. 길에서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발병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상 이후에는 힘든 구간이 적고 소나무 숲이 우거져 호방합니다.

능선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며 계속 진행하면 됩니다.

더러는 고사목이 보이지만 나무는 눕지 않는가 봅니다. 죽어서도 사색하고 있는 나무에서 신비가 관성처럼 일어납니다.

나무 사이로 사연댐의 푸른 물이 눈에 들어 옵니다. 1965년에 건설된 만수위 60m, 길이 3km 댐입니다.

무학산 정상에서 1시간가량 숲속 길을 오르내리며 걸어 나오면 Y자 형의 임도 갈림길인 한실재에 도착합니다.

반구대 암각화로 유명한 서쪽의 대곡리 한실 마을과 동쪽의 욱곡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입니다.

이곳은 욱곡, 대곡, 반곡 마을 등 계곡과 관련된 지명이 많습니다. 계곡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오른쪽 욱곡 임도를 따라 욱곡 마을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잘 조성되어 있는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대자연의 마법이 다시 한 번 마음을 치유해 줍니다. ​

우곡 마을은 전국적인 단감나무로 유명한 곳입니다. 임도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 내려오다 보면 과수원에 도착합니다.

단감은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됐고, 1990년대에는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았을 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쌓았답니다.

욱실이라고도 부르며 고종(1894)에는 중리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망성에 편입시켰습니다.

욱곡은 망성 서편에서 2km 정도 들어가는 골짜기로 사방이 산으로 가려진 하나의 분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욱곡 마을 입구에 다다르면 수령이 수백 년 된 적송품이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한 채 펼쳐져 있습니다. 평지가 적어 일찍이 야산을 개간해 단감나무를 심어 전국적인 특산물이 되었습니다. ​

욱곡 마을 '적송 당산나무숲'은 보기 드문 이색 볼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적송 숲으로 당산나무를 삼은 것은 드물다고 합니다.

약 700평의 숲에 높이 20m 전후의 수령이 족히 100 ~200년은 돼 보이는 적송 5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이 산줄기로 막혀 있어 이곳만 뚫려 있어 허한 이곳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일종의 비보림(裨補林)인 셈입니다.

당산나무숲 하단에는 할매신을 모신 당집이 보입니다. 당집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 또한 허한 남쪽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이 조성된 것이 임진왜란 때인 400여 년 전이니 그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남근석인 할배바위는 수년 전 공사업체가 발견해 가져간 것을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그 유출지를 추적한 후 되찾아 원래의 자리에 놓은 것이라 합니다.

욱곡천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따라 2km 걸어 나오면 마을 입구가 나오고 마을을 지키는 높이 18미터, 둘레 3.1m, 150 ~200년 된 팽나무가 신령하게 맞아 줍니다. 토테미즘 기운이 발동하는 듯합니다.

​인심이 좋아 보이는 소박한 욱곡 마을은 향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출발지인 원점으로 돌아와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태화강에는 청둥오리 떼가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무학산이 보입니다. 산을 오를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3시간 반을 걸었습니다.

희망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대자연이 주는 마음의 충전기로 충전을 해 활기찬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습니다.

※ 해당 내용은 '울주 블로그 기자'의 원고로 울주군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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