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의 한을 전하는 안산 고려인문화센터
안산시 sns 시민기자 최홍석입니다.
안산시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현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시민들과 함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를 소개하겠습니다.
고려인 들이 지난 1864년부터
러시아의 여러 지역에 정착한지
160년이 되었으며,
스탈린 정권에 의해 1937년에
17만여 명의 고려인이
러시아 내륙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지 87년 되었습니다.
이들 고려인 후손들이 우리 고장 안산 선부동(뗏골)을
중심으로 2만 3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안산시 선부동(뗏골) 주택가에 있는
고려인 주민과 시민들의 자유로운
이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고려인문화센터에서는 한국에
정착하려는 동포들을 위한 필요한
한국어, 아동청소년 등을 위한 교육사업, 통역,
법률 등의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전시관을 통해서 고려인들의 한이 서려있는
동토의 땅 러시아에서의 혹독한 삶의
역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안산시 단원구 지곡로 6길 37(선부동)
☞ 오시는 길
안산역 앞에서
시내버스 20-1, 33, 33-1, 501A, 501B
코끼리 마트에서 하차
☞ 전시관 운영
월~금요일 11:00~20:00
(※필요시 토, 일요일 개방)
정기 휴무 : 일요일, 설날, 추석, 국가지정 공휴일
☎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031-493-7056
[ 고려인역사전시관 ]
‘고려인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전시관은
『씨앗』 『불꽃』 『평화』 『들꽃』을 주제로 한
고려인 이주와 독립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시민과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 씨앗 전시관』
씨앗 전시관에서는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해방 시기에 농민, 항일독립운동,
강제 동원 등으로 구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한이 서린 아픔이
있는 역사관입니다.
이주 최초의 한인 마을 ‘지신허’는
1863년 이후 러시아로 이주 한 고려인들이 모여 산
최초의 한인 마을입니다. 이후 지신허 마을은
1864년에는 60가구(308명), 1868년에는 165가구, 1869년에는 766가구가 거주하는 대표적인
한인 마을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을 러시아어로 ‘카레이츠’라 하고,
스스로는 ‘고려사람’이라고 부릅니다.
『 불꽃 전시관 』
일본 식민지 시대 러시아 극동 연해주는
대한독립운동을 위한 근거지였습니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아 대규모
반식민 운동이 왕성하게 펼쳐진 곳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의 중심지는 포시예트 일대였습니다.
1904년 전 간도관리사 이범윤이
고종의 지시를 받아 ‘충의대’를 조직하고
포시예트 지역으로 옮겨 연해주,
간도 지역 의병을 총지휘했으며,
병력 규모가 4,000명에 이르렀습니다.
1908년에는 약 1,000명의 의병들이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진격하는 진공작전을 펼쳤습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함으로써
연해주 의병운동의 영웅이 되었고,
독립운동을 활성화시켰습니다.
『 평화 전시관 』
고려인으로 불리기 시작한 유래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고려인은 조선인으로 불렸습니다.
고려인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1988년 6월 전소련고려인협회가
결성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고려인은 조선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소련 사람으로서,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발전시켜 왔습니다.
1864년에 러시아로 이주한 후,
소련의 다양한 지역에서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했으며, 이는 남과 북의 문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탈린 정권 하에서
1937년에 강제 이주를 당해
러시아 내륙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는 계속해서
독자적인 성격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고려인의 문화는
남한이나 북한과는 다른 소수민족의 특성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남쪽도 북쪽도 아닌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반영해 ‘고려인’ 혹은
’고려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려인은 후손들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에 퍼졌습니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답니다.
현재 남부 러시아의 볼고그리드 부근, 고카서스,
남부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고려인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 공동체는 19세기 말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 들꽃 전시관 』
러시아 스탈린은 지난 1937년 8월 21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였답니다.
스탈린은 나라 없는 고려인 17만여 명의
값싼 인력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에 앞서
2천5백여 명의 고려인 지도자와
지식인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강제 이주 기간 동안 사망자 또한
10~15%에 이른다고 합니다.
※ 2022년 12월 출입국 자료
고려인문화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2024년) 우리 고장 안산에는
선부동(뗏골)을 중심으로 단원구, 상록구에
2만 3천여 명이 살고 있답니다.
[ 다목적실 ]
고려인 및 시민들이 공유 장소로
교육,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입니다.
고려인 이주 160년을 기념 특별전을
한국이민사박물관(인천광역시)
B1 기획전시실에서
지난 10월 15일부터 오는 2025년 2월 23일까지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고려인 수가
약 8만여 명에 이르며, 우리 고장 안산에도
2만 3천여 명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픈 지난 시간들을 올곧이 몸으로 견뎌내
고려인들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고려인문화센터입니다.
『 뗏골의 유래 』
「과거 선부동 지역은 습지가 많아 홍수나
강물이 자주 범람했습니다. 그래서 ‘뗏골’이라고
불렀습니다. ‘뗏’은 뜨다 혹은 ‘뗏목’을 의미하고,
‘골’은 마을이나 지역을 뜻합니다」
따라서 선부동 ‘뗏골’은
물이 많이 고여 있어 뗏목을 이용해 다니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옛날에는
실제로 물 위에 떠 있는 집들이 있었고,
이곳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농업을
겸하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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