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당산나무 뿌리 속의 무심사지 확인
🔍흑산도에 있는
수백년 된 당산나무의 뿌리에서
무심사지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흑산도 무심사지는
상라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창건연대 및 폐사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 무심사지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남아있으며,
2000년 무렵 지표조사를 통해
‘무심사선원(无心寺禪院)’명
기와편이 확인되었습니다.
전국의 절터에 대해
수많은 발굴조사를 수행한
(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호암스님)의
조사를 통해 기존 발굴조사에서
제외된 당산나무인 팽나무 주변의
중심권역에 대한 정밀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결과,
무심사선원 불전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는 높은 기단과
전면에 축대를 갖추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추정지에서
이와 관련된 계단지, 담장지,
석렬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건물지는 2동의 방형건물지가
연접한 철(凸)자형을 이루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이후
3시기에 걸친 증개축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출토된 유물로는
‘중원갑진년육월조
(中元甲辰年六月造)’명(1244년)
귀목문 암막새편, 연화문 막새편,
상감청자편, 해무리굽 청자편 등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발굴조사는
무심사지 아래 읍동마을사람들이
오랜 세월 당제를 지내왔던
당산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초겨울에 발굴을 시작해
수목의 생육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뿌리 하부의 건물지, 초석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완료 후
노출된 팽나무 뿌리 등은
곧바로 약제 처리를 하였고,
이후 복토하였습니다.
흑산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해상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와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이들이 흑산도에 도착하여 본
관사와 봉수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또한 무심사지 주변 상라산성,
제사터, 관사터 발굴조사에서는
중국제 동전과 도자기가 다수
확인됩니다.
이러한 기록과 유물을 토대로
흑산도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동아시아 남방항로의
해상무역 거점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무심사지와 연관된 관사터 등
불교 유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거점으로서의
흑산도를 재조명하고
핵심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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