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진주의 역사, 어제와 오늘!
진주의 역사 어제와 오늘
진주는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남부 중심도시이다.
가야 시대를 지나 삼국시대 백제의 거열성이었다가 고려시대 고려 태조 23년(940) 진주라 개칭하다가 조선시대 태종 2년(1402) 진주 목으로 환원되었으며 대한제국 건양 원년(1896) 경상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일제 강점시대 1914년 진주군 50개 면을 19개 면으로 개편되고, 1925년 4월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했다.
≪진주역사 표지석 ≫
∆ 진주 동헌(東軒) 터
진주 목사의 집무실을 동헌이라고 한다. 진주는 통일신라 9주(九州)의 하나였으며 고려 8목 가운데 하나로 남부지방의 중심 도시였다. 진주 동헌은 고려시대 후기부터 비봉산 아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피부과 건물(구 한국전력) 왼쪽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진주역사 표지석은 사단법인 진주문화 사랑모임 단체에서 진주 역사 표지세우기 사업으로 2012년 진주 동헌 터 표지석을 비롯한 12개 지역에 표지석을 세웠다.
∆ 진주 객사 터
진주 객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이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사신들이 묵으면서 연회도 열었다.
개사는 읍내에서 가장 크고 권위가 있는 건물로 중심도로의 앞 또는 수령의 집무 처인 동헌과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진주재판소로 이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진주 법원, 진주 문화방송이 자리한 곳으로서 지금은 '롯*인벤스 아파트' 오른쪽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운주헌터(運籌軒址)
운주는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뜻으로 운주현은 조선시대 통제사와 병사의 집무실 명칭이다.
이곳에는 경상 우병영의 수장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집무실이 있었던 곳이다.
최근 2023년 9월 옛 경상우도 병마 절도 영의 병마우후 집무공간 “중영”이 진주성 내 복원돼 진주성 복원 사업 이후 성곽의 촉석문과 공북문 외에 건축물로서는 처음 복원됐다.
∆ 진주 진영터
경상우도 남부지역 각 고을의 군사 훈련을 감독하는 병영시설이었다가 1923년 진주 자혜의원이 설립되고, 1925년 경상남도 진주의료원으로 개칭 1992년까지 운영하였으며, 위치는 진주시 촉석로 178(중안동)
이외에도 진주 역사 표지 세우기 사업으로 진주교방터. 경상남도 종묘 장터. 경상우도 소학교 터. 진주 사직단 터. 진주성 동장대 터. 진주 봉양 학교터. 소촌 역부터. 진주권번터 표지석이 진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천년고도의 역사를 간직한 충절과 교육, 문화, 예술의 고장인 진주
남강이 진주 시가지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고 해마다 이곳에서 유등 축제가 열린다.
진주 남강 유등 축제는 오랫동안 개천 예술제 부대행사의 하나로 시민 참여 등, 창작 등 전시와 같이 진행되었으나, 2002년부터 독립하여 운영해왔다. 2010년과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었으며 2015년부터 유료화가 되는 바람에 논란이 많았으나 2018년 조규일 시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무료화하였다.
2023년도에도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를 더욱 빛나게 하고 제72회 개천 예술제 행사, 2023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행사가 진주성. 진주 남강 일원과 남강 둔치에서 화려하게 열려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
※ 본 포스팅은 SNS 서포터즈가 작성한 글로서 진주시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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