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여행, 벽골제 역사가 숨쉬는 문화 유산 소개
후덥지근한 날씨 가만히 있어도 눈 밑에 땀이 흐르는데 정말 뜨거운 이 현장은 김제입니다.
벽골제는 서기 330년, 그러니깐 지금부터 1700년 전이겠군요.
동쪽 모악산에서 서해로 펼쳐진 충적평야에 병목에 남북방향으로 설치된 토제 제방입니다.
모악산의 수원으로 벽골제를 통해 서부평야에 물을 공급했고 2.5km의 현존 재방이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축조되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되었다는 점이 인상깊습니다.
일제강점기 1925년 동진수리조합이 제방의 일부를 훼손하여 농업용수를 개조했고 21년까지 문화유산과 용수로의 기능을 병행했습니다.
지금은 문화박물관 여기를 비롯해서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명인학당은 조선시대 사학인 서당을 배경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충효와 인의예지 정신을 밝히고자 명인학당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전면 다섯 칸의 규모의 크기로 교육이 이뤄지기도 하고 그리고 전통혼례식이 이 자리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평소 관심 있으시면 체험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동헌 내아, 그곳에 잇는 특징적인 부분을 이곳에서 잠시 엿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입니다.
제방을 훼손하고자 하는 청룡과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백룡이 살아왔다는 설화가 전래되어서 이렇게 작품이 있는데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 이렇게 5개의 수문이 2.5km에 이르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자료가 또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긴 제방을 만들었다 하는게 참 신기하지 않나요? 제방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인력이 충원되었겠죠? 그때 쓴 짚신을 던져서 만든 산이 여기 있습니다.
장생거 위치입니다.
벽골제의 옛날 지도 이런 것이 추청도가 이렇게 나와있고 옛날 고지도도 여기서 살펴볼 수 있고 역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갑문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수문을 통해 주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로 문을 열고 닫고 한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1415년 중수를 기념하는 벽골제 중수비가 이곳에 남았네요.
1415년 태종 15년 당시 수군도만호였던 김제 사람 박초가 썻고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문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벽골제의 규모와 관계 유역, 태종의 치수의지, 각급 공사주체와 인력규모, 공사 난이점, 제방 제원의 세부 및 완공시기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영상의 자료처럼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영상으로 만나봐요~♬
찾아오시는 길↘↘↘
오늘 저와 같이 김제 벽골제 한번 좀 돌아보니깐 어떻습니까?
굉장이 큰 규모의 수리시설 우리나라 최고의 수리시설을 오늘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만드는지 좀 신기하기도 한데요.
역사적으로 이 벽골제가 있음으로 인해 김제의 지평선이 펼쳐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같이 행복하세'용이란 말과 같이 벽골제에서 즐거운 추석도 담아보시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번에도 김제의 소식 여러분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만나요! 안녕~
사진·글 ⓒ 2024. 김제시 SNS 서포터즈, 서포터즈 이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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