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개진면에 있는 개경포기념공원을 소개해 드릴려고 해요

개경포는 조선시대까지 경상도 내륙지역의 곡식과 소금을 운송하던 커다란 포구였어요

경상도 삶을 이루던 곳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배를 타고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낙강칠현이라 불리던 송암 김면, 옥산 이기춘, 청휘당

이승 등이 뱃놀이를 즐기며 시를 읊은 곳이기도 했다고 해요

개경포는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이운했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에요

여기에 오시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수 있는데요

강화도 보관했다가 서해안 남해안으로

거쳐서 개경포에 내렸어요​

팔만대장경이 강화도로부터 운반될 때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온 배가 도착한 곳이 개산포였어요

​​

영남 일대의 승려들이 이곳에 도착한 경판을 머리에 이고 열뫼재, 대가야읍,

낫질신동재를 거쳐 해인사까지 운반했다 하여, 이후 경전이 도착한 곳이라 하여

개경포라 부르기 시작하였어요​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예전의 역사를 의의를 되살리기 위하여

개경포로 바꾸었다고 해요​

​개경포기념공원에 오시면 문화해설사의 집이 있어요

여기는 늘 상주해서 설명을 해주신다고 해서 한바퀴 둘러보면서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볼수 있었어요​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국구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요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여기에 내렸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지만

해인사까지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 이운길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요

​​

이운순례길이라고 나와있는데요

고령에서 회천교 다리는 건너서 쌍림쪽으로 가는길이 있고

낫질 신리라는곳에서 신동으로 넘어 가는길이 있고

또 덕곡으로 해서 백운동으로 해서 넘어가는 길이 있다고 해요

세곳의 길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나와 있지 않다고 해요 ​

​비석을 보시면요 지역의 스님과 일반 백성들이 다 합해서

이어 옮겼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모두가 힘을 합쳐서 팔만대장경을 옮겼다라는걸 알수 있어요​

​비석 바로 옆에는 대장각판 군신기고문 기념비가 있어요

백운거사 이규보라고 적혀져 있는데요

​고려시대 때 아주 유명한 학자인데요

군신기고문을 작성하셨는데요

읽어 보시면 팔만대장경판을 왜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적혀져 있어요​

개경포기념공원은 2014년에 조성을 해놨다고 해요

원래는 나루터 끝쪽에 있었는데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지금 이자리로 옮겼다고 해요

여기에 사진을 보시면 한 20년전쯤에 팔만대장경 이운행렬을

한번 하셨다고 해요

개경포 사시는분과 합천에 사시는분들 모두 모여서

이 팔만대장경 순례길 행렬을 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오시면 자세히 사진으로 보실수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보시면 팔만대장경 제작과정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요​

나무 고르기부터 시작해서 나무베기와 운반하기 그리고 판자켜기 등등

마지막 경판의 인경까지 자세히 적혀져 있어요​

​여기 목판을 보시면 글자가 반대로 되어 있죠?

판각을 하시게 되면 글자가 바로 보여요

거꾸로 목판을 새기는게 쉽지 않을텐데

보면 볼수록 너무 신기한거 같아요​

​해인사로 팔만대장경 운반하는 이운벽화에요

실제로 해인사절에 가시면 벽면에 그려져 있어요

궁금하신분들은 한번 해인사에 가셔서

직접 눈으로 보시면 좋으실거 같아요​

​​고령에 오시면 팔만대장경 개경포기념공원에 오셔서

해설사선생님께 이야기도 들으면서 어떻게 이운을 하게 됐는지

설명을 들으면 너무 좋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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