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일어난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입니다.

1960년 4월 19일,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정·부통령 선거를 조작하자, 선거 결과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 올해 65주년이 되었는데요.

65번째 4·19 기념일을 맞이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씨앗이 된 그날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그 의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봐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씨앗,

4·19혁명 기념일

“ 부정선거 물리치고, 공명선거 다시 하자!”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학생들을 향해 거리의 시민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선거 조작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가 2월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3·15의거, 4·19혁명을 지나 4월 26일,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합니다.

부정과 독재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학생들과 시민들에 의해 지켜지게 되었던 그때의 역사,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4·19혁명역사적 의의

4·19 혁명은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의의 독재권력에 항거한 혁명입니다.

그러나 그저 4·19사태, 4·19학생 데모 등으로 불렸다가 1963년 9월 20일 곳곳에 흩어져 보관되던 4·19 혁명 희생자들의 유골을 수유리 합동묘지로 이장하고, 4·19 혁명기념탑 제막식도 거행하게 되었는데요.

1973년에 4·19의거로 정의되고 이후 의거나 4·19 등으로 오랫동안 불리다가 199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되며 4·19 혁명으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4·19혁명 전개과정

출처: 국립 4·19 민주묘지

대구의 분노한 학생들, "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1) 대구 2·28 민주운동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유세가 2월 28일 수성천변에 예정되자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승만 자유당 정부는 대구시민의 유세장 집결을 막고자 일요일인데도 시험, 영화관람, 토끼사냥 핑계를 대며 대구지역 중·고등학생들을 등교하도록 강제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경북고등학교를 비롯한 8개 고교의 학생들은 “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고, 대구 시내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집니다.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대전 학생들,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에 민주적으로 맞서다.

2) 대전 3·8 민주의거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맞서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 저항운동이 1960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개됩니다.

대전고등학교 학생들은 8일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대전지역 고교 학생대표들을 강제 연행하고 구속하는 경찰의 탄압에도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재차 시위를 감행합니다. 이는 대전·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며, 대구 2·28민주운동,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자유당 장기집권을 위한 선거조작과 부정행위들

3) 3·15 부정선거

이승만 정권은 12년간 계속된 장기집권을 연장하고자 미리 선거 조작을 획책합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자 선거일을 2개월이나 앞당겼고, 조병옥 후보가 미국에서 갑자기 사망하자, 이번엔 자유당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켜 당시 86세 고령이던 이승만 대통령이 사망하면 권력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을 총동원하는 부정선거를 기획합니다. 선거운동망을 조직하고 선거에 경찰조직을 활용하는 등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결과, 이승만 88.7% 득표, 이기붕 79% 득표로 자유당 후보가 모두 당선됩니다.

📌 당시 자유당의 부정선거 행위

4할 사전투표와

투표함 바꿔치기

3·5·9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와 깡패동원

야당 참관인 축출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4) 마산 3·15의거 (마산 1차 시위)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로 수많은 국민들이 격노한 가운데, 마산시민과 학생들은 3월 15일 오후 부정선거를 폭로하고 선거무효를 외치며 평화적인 시위를 벌입니다.

그러나 이를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은 시민을 향해 발포했고 사망 7명(김삼웅, 김용실, 김영준, 김영호, 김효덕, 오성원, 전의규), 중상 1명(강융기, 병원에서 4월 10일 사망), 실종 1명(김주열)의 희생자가 나오게 됩니다.

250여명이 부상 당하거나 구속되는 등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산 중앙부두 200M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군.

5) 4·11(마산 2차 시위)

3·15의거 당시 행방불명되었던 16세 김주열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격분한 시민들은 경찰의 만행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2차 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그 와중에 경찰이 쏜 총탄에 1명(김영길)이 사망하고 수십여명이 부상을 입자 시위는 더욱 대규모로 확대되었고,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정의로운 투쟁은 전국으로 확산돼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산에서는 2명(김종술, 김평도)이 더 희생되었으며, 3·15의거는 대한민국 최초의 유혈 민주화 운동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고려대 학생들의 평화적 연좌시위와 정치깡패의 피습사건.

6) 4·18 고대의거 및 피습

3000여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기성세대는 반성하라” “마산 사건의 책임자를 즉각 처단하라”는 선언문을 낭독한 후 ‘민주역적 몰아내자’ ‘자유·정의·진리 드높이자’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국회 앞까지 진출하여 평화적인 연좌시위를 하였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던 학생들을 노리고 정치깡패 ‘반공청년단’이 흉기를 휘두른 피습 사실이 다음날 신문에 보도되자 분노한 시민과 중·고·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며 4·19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비상계엄령, 전국에서 희생자 속출.

7) 4·19 (피의 화요일)

마침내 4월 19일, 수많은 대학생, 중·고등학생, 시민들이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며 광화문, 종로 등 서울 시내 곳곳을 누볐습니다. 시위대는 10만명을 넘어섰고 21명의 희생자와 172명의 부상자가 속출합니다.

이승만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시위가 인천, 수원, 부산, 광주 등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승만 정권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이날 전국적으로 시위대와 경찰 등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의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퇴진요구.

8) 4·25 교수단 시위

이승만 정권의 미온적 태도에 전국 27개 대학 교수단 258명이 종로에서 시위를 벌이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채택하였습니다. 교수단 시위에 힘을 얻은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밤새 계속되었으나 경찰과 계엄군은 더이상 시위대를 저지하지 않았습니다.

4·25 교수단의 시위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4·19혁명의 결정적이고도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9) 4·26 (승리의 화요일)

시위대는 부정선거 무효뿐만 아니라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렸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즉각 하야, 정·부통령 재선거, 내각 책임제 개헌’ 등을 결의했고,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재선거를 약속하고 하야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로써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고, 자유·민주·정의의 구호 아래 불의에 항거한 ‘피의 화요일’의 숭고한 희생은 ‘승리의 화요일’로 승화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출발을 역사에 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유로운 투표를 할 수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는 4·19혁명과 같은 역사 속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곧 선거가 있을 텐데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온 나라가 나섰던 4·19혁명을 기억하며, 모두가 주어진 투표권의 무게를 알고 소중히 행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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