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기 싫었던 비운의 왕이 잠들어 있는 고려 공양왕릉

주변은 비닐하우스 등이 많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유적지를 표시하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왕릉’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왕릉 주변에는 붉은 목책이 둘러쳐져 있고, 두 개의 봉긋한 봉분과 자그마한 석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이 왕, 오른쪽이 왕비의 봉분입니다.

고려 공양왕릉은 1394년(태조 3년) 축조된 것으로 고려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으로 쌍릉 형식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석, 상석, 석등, 석호 등 능 주위에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요. 고려 초기의 양식이라고 하는데요. 당시에는 이렇게 작고 소박한 석물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봉문 앞 묘표에 고려 공양왕과 순비 노씨라는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목책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글자 확인이나 석물의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최근에 풀을 깎았는지 주변에서 향긋한 풀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적은 규모이기는 하나 소나무 숲도 있습니다. 매년 가을 고양시민과 유림에서 공양왕릉에서 추향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왕릉 위쪽으로 여러 기의 무덤이 보이는데요. 공양왕의 외손들인 정씨와 신씨의 무덤들이라고 합니다.

공양왕은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1392년에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태조 3년에 삼척부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공양왕의 나이는 50세였습니다. 공양왕은 처음부터 왕위에 오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망해가는 고려 왕조, 신흥 사대부들이 권력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왕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강요에 의해 왕이 되었고 4년 만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태종 16년(1416)에 공양왕으로 봉하고 고양현에 무덤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삼척에도 공양왕릉이 있다고 하는데요. 둘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려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진한 것 같습니다. 고려 시대 유물도 적고요.

때문에 고양시에 위치한 공양왕릉은 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삼릉이나 서오릉을 방문하실 때 시간을 내서 함께 방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7기 고양시 소셜기자단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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