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급 지적 기능(BIF) 아동은 미국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의한 분류로 지능지수가 71~84 수준(평균에서 –1 표준편차 구간)에 해당하는 아동이다. 지적장애로는 분류되지 않으나 주의가 필요한 대상으로 전 인구의 13.6% 정도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계선급 지적 기능 아동 및 학생에 관한 가장 큰 우려는, 이들이 학습장애나 정신지체 등으로는 분류되지 않으므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 눈치 없는 아이, 회색 지대에 있는 아이 정도로 간주되어 실질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경기도 교육연구원에서 발간한 ‘경계선급 지적 기능 학생의 학습 양상과 지원방안’에 나온 내용 중 일부입니다. 보고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아이들이 경계선급 지적 기능을 진단받고 있고 그들을 위한 정책적 관심과 체계적 지원이 미흡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학교의 대응역량 강화, 학생 맞춤형 지원 자료 개발 및 보급,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 지원 등 여러 대책들을 제시하며 이들을 위한 지원을 강조했습니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늘보나래' 프로그램

고양특례시에서는 경계선급 지적 지능 학생 또는 느린 학습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펼치는 기관이 두 곳이 있습니다. 일산 서구에 위치한 고양시 일산종합사회복지관과 일산 동구에 위치한 흰돌종합사회복지관이 해당합니다.

이중 흰돌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해동안 펼친 ‘늘보나래’ 사업에 대한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에 방문했습니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늘보나래' 사업성과 공유회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 11월 28일, 복지관 3층 다목적홀에서 늘보나래 사업성과 공유회를 개최했습니다. 행사는 올해 ‘늘보나래’ 사업에 참여한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모두 모여 한 해를 돌아보고 서로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흰돌종합사회복지관 ‘늘보나래’ 사업은 느린 학습자 아동의 사회 적응력 증진을 위한 통합지원프로그램입니다. ‘천천히 성장하며 함께 날자’라는 뜻을 담은 늘보나래 사업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아동과 장애 판정을 받지 않은 경계선급 지적 지능 아동, 지속 지원 필요성이 확인된 느린 학습자 아동을 대상으로 펼친 사업입니다.

느린 학습자란, 또래 아동들과 비슷한 발달을 보이지만 언어, 학습, 사회성 부분의 발달이 다소 느린 아동, IQ 71~84점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동, 산만하고 부주의한 모습을 보이는 아동 등이 해당합니다.

'늘보나래' 프로그램 중 힐링아 놀자 (잡월드 방문) (출처 흰돌종합사회복지관)

‘늘보나래’ 프로그램은 지난 2022년 월드비전 지원 3차년도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6학년 11명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지난해 12명에 이어 올해는 범위를 넓혀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12명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늘보나래 프로그램 중 '토요학교' (출처 흰돌종합사회복지관)

4월 18일부터 11월 28일까지 진행된 올해 ‘늘보나래’ 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인지 표현 프로그램은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 ‘도담도담’과 인지 표현 예술통합프로그램 ‘표현 나래’로,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은 연극/놀이 치료지원프로그램 ‘연극 나래’, 가족과 함께 하는 ‘토요학교’, 현장학습을 통한 ‘힐링 데이’로, 아동돌봄공동체 의식 증진 프로그램은 ‘느린 학습자 아동 보호자 교육 및 간담회 ’소통 ON&OFF’, 느린 학습자 인식 개선을 위한 ‘인식개선 교육’, 지역사회 내 네트워크 ‘통합 네트워킹’으로 구성하여 진행했습니다.

오후 6시 30분, 2024년 늘보나래 사업성과 공유회는 아이들과 보호자 모두 모인 가운데 서로 인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사업성과 공유회에 참석하는 시민들

소감을 남긴 아이들

‘늘보나래’ 프로그램 담당자인 나영희 사회복지사가 3년간 늘보나래 운영 과정들을 전하면서 올 한 해 함께했던 프로그램들을 사진과 함께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나영희 사회복지사 진행 아래 아이들과 보호자 모두 한 마디씩 참여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좋았던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크게 외쳤습니다. 좋았던 기억만큼 더 크게 외치며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손들며 발표하고자 하는 아이들

진행자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보호자들에게 마이크를 돌렸습니다. 보호자들은 각자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전했습니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지만 복지관에서 늘보나래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시고 저와 같은 부모들과 같이 모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

“아이에 대해 모두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부분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어서 고마웠다.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천하면서 아이의 또 다른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저 또한 같이 성장하는 것 같았다.”

보호자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다른 보호자들은 경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소감을 나눈 후, 흰돌복지관은 아이들에게 각자 상장을 수여했습니다. 상장을 받은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면서 기분 좋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상장을 엄마와 함께 보고 있는 아이

연극놀이치료지원프로그램 ‘연극 나래’ (출처 흰돌종합사회복지관)

마지막으로 이날의 백미인 아이들의 연극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연극/놀이치료지원프로그램 ‘연극 나래’로 연극치료사 선생님과 아이들이 12번 만나면서 준비한 연극을 보호자들에게 선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연극 ‘행복한 안녕’은 그동안 아이들이 노력한 모습들을 보호자들에게 보여주고 끝이라는 아쉬움보다 행복한 내일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연극은 각 규칙들에 대해 아이들이 그 규칙을 잘 따르고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공감하며 포즈 취하는 아이들

보호자와 아이들이 함께 호흡하는 연극 공연

선생님들이 정한 규칙에 맞춰 잘 행동한 아이들은 이어 보호자와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로부터 공감을 얻고 싶어 하는 한 보호자가 나와 감정을 얘기하며 조각상처럼 포즈를 취하면 아이 한 명씩 나와서 같은 감정을 말하면서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자칫 부끄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용기를 낸 보호자가 무대에 나와 포즈를 취하니 아이들도 용기 내어 본인만의 몸동작을 나타냈습니다. ‘당황스러움’, ‘행복함’ 등 여러 감정들에 대해 보호자와 아이들 모두가 함께 무대에서 몸짓으로 표현하며 함께 호흡했습니다.

무대에 나와 본인이 싫어하는 말에 맞받아치며 이겨내고자 하는 아이

연극 공연을 펼친 아이들

이후 간단한 게임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간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본인만의 콤플렉스를 참석자들 앞에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참석자들이 아이가 싫어하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아이가 본인만의 어투로 크게 외치고 모두가 박수 치며 잘했다고 화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땅꼬마!”

“난 지금보다 더 키 클 수 있거든!”

“바보!”

“나 바보 아니거든! 무시하지 마!”

각 아이들의 외침에 아이와 보호자, 선생님들 모두가 박수 치면서 응원했습니다. 연극이 마치고 커튼콜 때 주인공들에게 관객들이 한 명 한 명에게 박수 치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2024년 늘보나래 사업성과 공유회는 마지막 단체 기념사진 촬영과 함께 마무리됐습니다.


3년간 ‘늘보나래’ 프로그램을 담당한 나영희 사회복지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김진흥 기자, A. 나영희 사회복지사)

Q. ‘늘보나래’ 프로그램을 기획한 계기가 있었나요?

A. 예전에 ‘늘해랑하교’ 프로그램을 담당했어요.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는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및 여가활동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에요. 학생들이 선정돼서 자료가 넘어왔는데, 그때 경계선급 지적 지능 아동들의 자료들도 왔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 느린 학습자가 늘어났다는 자료들을 보면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어요. 관찰과 관심의 결과물로 ‘늘보나래’ 프로그램이 탄생한 셈이죠.

Q. 평소 이 아이들에 관심이 있었나요?

A. 엄청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 있고 특수학급 학생들을 교육하다 보니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Q. 아무것도 없는 상태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렵지 않으셨어요?

A. 많이 두려웠죠. 하하.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기왕 시작했기에 잘하고 싶었어요. 늘보나래 사업을 하면서 이 친구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도 찾아가 사례들을 참고하고 교육, 포럼 등을 다녀오며 공부했어요.

보호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시행한 '토요학교' (출처 흰돌종합사회복지관)

Q. 올해 ‘늘보나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어떤 점을 중점 두었나요?

A. 올해 아이들 성장은 기본이었고 보호자 역할 강화에 좀 더 중점을 두었어요. 사업 첫해인 2022년은 보호자 교육과 소통하는 매개체를 만드는 목적이었고 두 번째 해인 2023년은 보호자들이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첫 시도가 진행됐어요. 그리고 올해는 보호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접 추진했어요. 모집 당시 처음부터 동의 받으면서 시작했어요. ‘토요학교’ 프로그램이 6회 정도 진행됐어요. 요리 프로그램, 체육대회 준비, 영화 감상 세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보호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진행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호자들이 많이 어렵고 힘들었을 거예요. 경제활동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시간을 맞추거나 소통하기 쉽지 않은 면들도 있었을 거고요.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보호자들이 아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대안책을 제시하는 등 보호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들도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Q. 어떻게 보면 보호자들의 성장이 올해 큰 성과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또 다른 성과가 있을까요?

A. 느린 학습자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기관들이 더 늘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2022년에는 4개 기관이 실무 네트워크 회의를 진행했는데 3년째인 올해는 12개 기관으로 늘어났어요.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나가는 거라고 볼 수 있지요.

다만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긴 해요.

'늘보나래' 프로그램 중 도담도담 (자기표현) (출처 흰돌종합사회복지관)

Q. 어떠한 고민인가요?

A. ‘늘보나래’ 이후 연결할 수 있는 기관 및 프로그램이 적다는 점이 고민이에요. 늘보나래 후에도 지속적인 교육 및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은 고양시 내 이 친구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보니 담당자로서 고민이 많이 되긴 해요.

Q. 그렇군요. 다시 화제를 바꿔서 올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은 순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솔직히 다 기억에 남아요. 하하. 처음 만나서 관계 쌓을 때부터 외부 활동하는 것까지 이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그럼에도 하나만 꼽자면 아이들과 첫 대면하여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도담도담’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 시간에 아이들의 성향과 특성을 파악하고 관찰한 것들을 바탕으로 강사님들에게 정보들을 전달해요. 한 해 프로그램의 기반을 닦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기념사진 촬영한 2024년 늘보나래 참여한 아이들과 보호자들

Q. 그러면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였나요?

A. 아이들이 처음과 달리 긍정적으로 변화했음을 느낄 때가 매우 보람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인사 안 하던 친구가 나중에는 먼저 인사하는 등 소소한 변화들이 많아요. 그것을 캐치하여 부모님에게도 전해줘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본인이 노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해요. 치료사들과도 아이의 변화 과정을 공유하면 행복할 때도 있고요. 이 과정 자체가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Q. 마지막으로 늘보나래 프로그램에 참여한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해 줘서 고맙고 잘했다고 말하고 싶어. 앞으로도 응원할게! ^^

제7기 고양시 소셜기자단 김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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