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명소,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묘정비 복원 이야기

'숭현서원'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이를 어떻게 기르고 공부시키느냐는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일인데요, 지금의 교육기관인 학교와 과거 조선시대의 학교는 조금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의무교육으로 공교육을 중요시하는 요즘, 조선시대는 어땠을까요?

오늘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숭현서원을 둘러보고 조선시대의 교육과 숭현서원의 자세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유성구 원촌동에 위치한 숭현서원은 이정표를 잘 보고 들어와야 합니다. 숭현서원 앞에는 홍살문이 있고 바로 뒤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하마비는 원래 홍살문보다 좀 더 앞에 있어야 하는데 새로 복원된 것이라 위치가 조금 애매하게 되어 있습니다.

초록의 싱그러운 나무와 함께 멋진 문루가 보이는 곳, 바로 숭현서원 들어가는 입구 영귀루입니다.

이곳 영귀루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2층 문루에 올라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시를 읊조리곤 했다는데요, 설명을 들어보니 공부를 하다 머리를 식히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보이는 곳이 바로 숭현서원 현판이 있는 곳입니다. 양옆의 건물은 기숙사로 사용된 동재와 서재이며 동재 건물에 문화해설사가 계십니다.

항상 그냥 둘러보고 사진만 찍고 나왔는데 오늘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문화해설을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조자은 문화해설사님이 설명해 주셨으며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먼저 숭현서원에 대한 설명부터 알려주셨습니다. 숭현서원은 임진왜란 때 훼손되고 1871년 고종이 훼철된 후 묘정비만 남아있어 정확한 시기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배향인물로 봤을 때 16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숭현서원이 잘 보존되어 있더라면 아마 유네스코 등재된 9개 서원에 숭현서원도 포함되었을 거라며 아쉬워하셨는데요, 우리나라 유네스코에 등재된 9개 서원을 이렇게 자료집으로 보여주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숭현서원을 이곳에 다시 복원할 당시의 사진이 있어 신기했습니다. 허허벌판 자리에 묘정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으며 그 묘정비 주변으로 건물터를 확인하여 1994년부터 2001년까지 8년에 걸쳐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깔끔하게 잘 정돈된 모습으로 되어 있는 서원의 모습을 보니 옛 유생들의 글 읽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숭현서원을 복원하여 준공식을 했을 때 사진도 함께 보여줬는데요, 2001년 10월 3일 많은 사람이 준공식에 참여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이 묘정비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묘정비를 보면 위의 지붕과 밑의 단은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게 바로 묘정비의 원래 모습이며 가운데 글자가 새겨진 것은 새롭게 복원한 거라고 합니다.

이 묘정비는 숭현서원의 내력을 적은 비로소 신흠이 짓고 우암 송시열이 덧붙인 것이며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이 쓴 것이라고 하는데요, 당시에 동춘당 송준길은 명필로 당대 손꼽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묘정비를 탁본으로 떠서 가지고 있다가 훼손된 부분이 많아서 따로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복원된 것으로 세워놨다고 하네요. 그래서 복원된 묘정비를 자세히 보면 옆에 네모란 부분으로 줄을 그은 것이 바로 훼손되어 다시 복원된 글자라고 합니다.

묘정비를 통해 강당과 사당, 별사 등의 건물 터를 확인하고 다시 복원하여 우리가 이렇게 살펴볼 수 있는 문화재가 되었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유교사상을 중시하여 사당을 짓고 사당에 본받을 만한 위인의 위패를 모시고 그분들의 뜻을 이어 사상과 교육, 그리고 그 정신을 받들었다고 합니다.

숭현서원의 현판도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글자체라고 하는데요, 이 현판은 송준길 선생의 글자를 한자씩 새롭게 복원하여 만든 것인데 글씨가 조금 크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뒤쪽의 내삼문을 지나면 8명의 배향인물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정광필, 김정, 송인수,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 이시직, 송시영 이렇게 총 8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 왼편에 고직사라는 건물은 제사를 위한 제기를 보관하는 장소라고 합니다.

1592년에 숭현서원이란 이름으로 사액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옮겨 세웠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된 후 복원되지 못하다가 1994년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아마 숭현서원의 묘정비가 없었다면 숭현서원이 다시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복원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문화해설을 듣지 않았다면 몰랐던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도 알게 되면서 이 묘정비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숭현서원을 방문하신다면 꼭 문화해설을 듣고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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