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동은 천마산 자락에 있는 경사 높은 산복도로 마을입니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 형성된 피난마을.

부산의 역사성을 고이 간직한 곳임에도 남부민동이나 아미동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동네라 궁금하기도 했고, 그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초장동에는...

사람이 꽃피운 예술이 있다.

사전 조사 때, 가볼만한 곳으로 <천마산 하늘 전망대>가 많이 검색되었습니다.

산복도로를 낀 마을이 대게 "하늘" 이라는 단어를 넣어 길을 표현하고, 명소를 만든 것처럼 하늘 전망대가 야경 명소임이 틀림 없는 명소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천마산 하늘 전망대만 있는게 아닙니다.

이보다 마을이 형성된 특별한 이야기에 주목한다면, 역사성, 시대성을 상징하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더 추가적인 조사를 하다 보니 초장동은 예술가들이 자란 마을이었습니다. 산복도로에서 태어나 자란 예술가들의 흔적이 유독 많이 있고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는 초장동에 문화적인 꽃이 피길 바라는 마음에서 초또마을(초장동)의 예술가들을 알아보고, 이분들의 삶의 여정도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초장동 예술가들

김종해 시인

김종철 시인

박병제 화가

변해석 사진작가

1. 김종해 시인

김종해 시인은 부산 초장동에서 태어난 시인입니다.

4남매 홀로 키우신 어머니를 도와 일찍 바닷길 선원 생활도 했었다고 합니다. 1963년 문예지 자유문학에 시 "저녁"이 당선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등단 60주년을 맞아 펴낸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서 초장동이라는 지역과 어머니에 대한 회고가 나옵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김종해,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p.92

초장동 3가 75번지

동네 담벼락에서

잠시 눈을 감고 술래잡기하는 동안

동무들은 세월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숨었다

부는 바람과 흐르는 물결 속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아우마저도 사라졌다

잠시였다

나는 혼자서 길을 찾아

아직도 삶의 골목길을 헤매고 있다

못 찾겠다, 꾀꼬리

어느덧 팔순의 나이는 슬프고 외롭다

가로등 불빛은 저 혼자서 화안하다

사진5

실제 시인의 생가 주소가 검색되지 않아, 특정한 주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장동 탐방길에 초장동 도로명 주소인 초장로부터 해돋이로까지 돌아다니며 그 시대 시인이 살았던 집들, 풍경을 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습니다.

<초장동에서 감내골까지>

김종해,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p.94

따뜻한 봄날이었다

방문을 열어놓고 아버지는 누워서

류충렬전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나는 엄마 따라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천마산을 넘어서

무서운 아미동 공동묘지 지나서

감내골로 빨래하거 가는 엄마 따라

천마산 가파른 고개를 넘어간다

나는 숨 막히고 비좁은 집 안이 싫다

감내골 계곡 흐르는 맑은 물가에서

엄마는 불을 지피고

가져온 빨래들을 삶았다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엄마 곁에서

나는 참꽃을 한 다발 꺾어 모은다

초장동에서 감내골까지 산길10리

빨래하는 엄마 곁에서

다람쥐보다 더 재빠르게 뛰어다니며

마른 삭정이 나뭇가지 줏어와

돌 아궁이 속 불꽃을 살린다

봄날 온 산이 참꽃으로 빨갛다

시인의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에는 추억도 있고 낭만도 있고, 사랑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대가 겪지 않은 시대적 풍랑을 거쳐온 분이기에 젊은 세대가 갖고 있지 않은 서정을 잘 표현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특히 이 분의 시를 접하면서 함께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히 써 내려간 "엄마라는 말,특히(p.93)" 시에서는 힘들었지만 4남매를 홀로 키운 엄마에 대한 특별한 추억과 사랑을 담은 초장동 생활의 이야기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저도 엄마라는 사람이 되어 보니, 그 시절 힘겹게 아이들을 키웠을 어머니의 희생, 헌신이 저희 엄마와 겹쳐지면서 눈물이 고이는 겁니다.

고인이 된 동생 김종철 시인과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그리움, 고마움 등을 담은 시들을 많이 남겼다고 하니 시인의 시들을 더 많이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2. 김종철 시인

김종철 시인은 김종해 시인의 아우입니다. 형제의 유년시절은 가난과 함께였고,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못의 귀향>이라는 시집 안에는 초또마을에 대한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겨 있는데요, 초또마을은 그 시대 도시 빈민가였던 초장동을 낮춰 부르던 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시에서는 초또마을이라는 명칭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가장 밝은 어린시절을 회향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린시절 가장 따뜻한 둥지가 있었던 초또마을의 기억을 읽고 있노라면 저도 이 시기에 같이 살고 있었을 것만 같은 착각도 일으킵니다.

<어깨동무 _ 초또마을 시편 9>

김종철, 못의 귀향, p.29

구짱, 도꾸장, 가쪼, 히로시, 돌찌는

초또마을 사람들 이름입니다

앞집, 뒷집, 건너 고개 너머에는

조깝데기, 똥자루, 아치꼬동

내 또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똥지게로 퍼 나른 긴 고랑 밭에는

냄새로 코를 가린 종달새가 높이 날고

집집의 처마로 어깨동무한 양철 지붕에는

굵은 소나기가 성큼성큼 뛰어다녔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까르르 뒹구는 개구쟁이

여름은 눈물 마를 여가 없었습니다

(중략)

형제 시인에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향, 초장동=초또마을은 고향 그 이상 넘어 어린시절과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는 특별한 동네였습니다.

어쩌면 시인의 삶을 가장 빛낼 수 있게 해준 마을이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3.박병제 화가

산복도로 골목길을 그린 화가

박병제 화가는 1954년 초장동에서 태어났습니다.

30년을 전업작가로 활동했지만, 가난했다고 합니다. 생전 그린 작품은 500여 점으로 추산됩니다.

<새벽시장> <자갈치의 오후> <법기마을로 가는 길> 등 부산의 산동네나 자갈치 등 주로 서민을 소재로한 풍경화와 인물화를 그렸고, 도시화와 산업화에로 소외된 소시민적 삶을 그려냈습니다.

김종해 형제 시인처럼 박병제 작가의 어머니도 자갈치, 충무동 어시장에서 생계를 이어 자식을 키우셨고, 태어나면서부터 산동네에서 자란 자신의 정체성을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했습니다.

작품의 저작권도 있고, 박병제 화가의 작품을 실제 본 적이 없어 이 분의 생애와 작품, 회고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기사를 찾았습니다.

🔽 산복도로 리포트<3-15>산복도로에 살다:산동네 그리던 故 박병제 화가 (국제신문, 2010년 기사)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key=20100504.22009202207

화가는 부산의 원도심인 산복도로의 모든 면을 따뜻한 시각으로 잘 표현한 분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화가의 작품 전시회가 고향 초장동에서 열린다면, 저는 1순위로 관람하겠습니다!

​4.변해석 사진작가

변해석 사진작가는 경남 창년에서 태어나셨지만, 다섯살 무렵부터 10대 학창시절까지 초장동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자신의 기억 속 고향은 변함없이 소박한데, 그 모습이 극변하는 시대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자신만의 방식인 사진으로 초장동을 기억하고 알리고자 <지긋지긋 했던 산복도로>, <나의 살전 고향은_초장동> 등 고향 사진을 담아온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작가님 사진엔 저작권이 있으니... 제가 찍은 초장동 현재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끝으로..

초장동은 예술가들의 고향이었다.

초장동은 피난마을의 역사가 담긴 곳. 치열한 삶의 터전이 되어온 산복도로 마을입니다. 굴곡진 이야기부터 아름답고 추억을 담은 이야기까지 숱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곳일 겁니다.

이런 곳이야말로 부산 원도심이 가진 매력을 잘 표현해 주는 스토리가 저장된 곳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변해석 사진 작가님의 사진으로 고향을 표현하는 것처럼, 외부인인 저도 사라져가는 동네의 모습, 온기가 아쉽습니다. 예술성과 스토리가 구축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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