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원도심에는 대한민국 국가유산 2곳이 있습니다.

임청각과 법층사지 칠층전탑입니다.

두 곳이 나란히 있어서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안동 임청각은 조선시대의 대규모 양반가 주택으로,

무려 5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보물 제182호입니다.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석주 이상룡을 포함한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석주 이상룡은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으로 활동하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은 국가보훈처의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문에 들어서면 많은 독립열사들이 머물렀던

군자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정자는 1519년에 형조좌랑 이명이 세운

양반주택의 별당형 정자로,

주변에 쪽마루와 난간이 있습니다.

군자정에 올라가면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에서 자란 석주 이상룡은 조국을 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모든 재산을 팔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국적은 2009년에야 회복되었습니다.

군자정 내부에는 다양한 현판과 건국훈장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라고 전해집니다.

이곳은 고택 종갓집 활용사업을 통해

여러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군자정 옆 공간은 사랑채입니다.

가운데 우물이 있어 '우물방'으로 불리는 방이 있습니다.

'진응수가 나는 용천'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 정승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실제로 석주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이 방에서 출생했습니다.

사랑채를 지나 행랑채로 향했습니다.

행랑채와 안채, 사랑방, 군자정에서는

숙박 체험도 가능하며,

12일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행랑채 안쪽에는 500년의 역사와

이상룡 가문의 구국운동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원래 99칸에 달하던 임청각은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철로를 놓으면서

일부 철거되고 현재는 60여 칸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임청각 부속 건물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해요.

군자정 뒤편에는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곳에는 조상의 위패가 없다고 합니다.

이상룡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면서

가문의 의미를 위해 조상의 신주를 땅에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종손으로서 가졌던 마음가짐을 상상해보면

경외심이 절로 느껴집니다.

임청각을 나온 후,

또 다른 안동의 명소인

법흥사지 칠층석탑으로 향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의 전탑으로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탑의 기단부에는 팔부중상과 사천왕상, 12지신 등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신들의 조각이

양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탑이 보수되면서

기단의 윗면에 시멘트를 덮어 원래 모습이 훼손되었습니다.

법흥사지 칠층석탑은 일반 석탑과는 다르게

지붕에 기와를 올린 형태로,

목탑을 모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7층 높이에 17m에 달하며, 기단의 너비는 7.8m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지만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석탑은 나란히 있어 함께 방문하기에 좋습니다.

역사적, 건축학적으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본 내용은 김수정 안동시

SNS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안동시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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