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상남도 뉴미디어 프렌즈 최홍대


2025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2달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경상남도를 알리는 뉴미디어 프렌즈로 알리고 싶은 곳은 함양군입니다. 함양군에는 한남군이 귀양가서 머물렀던 한남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세종은 첫 번째 부인이었던 소헌왕후 심 씨에게서 다양한 재능과 권력욕이 있는 수양대군과 같은 자식도 여럿을 낳았지만 후궁에서도 수많은 자식들이 나왔습니다. 그 수많은 자식들 중에 한남군이 있었습니다.

한남군은 세종의 넷째 서자(庶子)이며, 어머니는 혜빈 양 씨(惠嬪楊氏)입ㄴ지다. 부인은 예빈녹사(禮賓錄事) 권격(權格)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세종이 왕비와 더불어 온수현(溫水縣) 가마곡(加麽谷)에 행차하였을 때 임영대군(臨瀛大君)과 함께 궁궐의 수비를 관장하였으며, 이듬해 한남군에 봉하여졌다고 합니다.

이번에 떠나는 여정은 앞서 말했던 한남군은 유배되어 살았던 마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한남군은 모든 전토(田土)와 노비를 몰수당하고 1459년(세조 5) 배소(配所)인 함양에서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가 유배된 것은 세조에 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남군이 살았던 마을의 이름은 한남마을로 한남마을 새우섬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가는 길목에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관영차밭 조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김종직은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이며 문신으로 공의 자는 계온, 호는 점필재이고 시호눈 문춘공입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이었지만 함양군수를 지냈다고 합니다. 함양군에 한 번 가보면 알겠지만 정말 경치가 좋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선초 도학의 거유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은 유두류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산행했던 코스는 김종직의 지리산 기행문입니다. 함양관아, 엄천, 화암,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청이당, 엉랑재, 해유령, 중봉, 천왕봉, 성모사, 총천문, 향적사등으로 돌아서 함양관아에 이를 과정입니다.

김종직은 유람 도중 현실적 갈등과 모순이 없는 무릉도원을 희구하였으며, 선생은 사림파 지식인과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산행 도중 만난 매를 잡는 사람들의 움막을 보고 민생의 어려움을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선생의 등로는 지금의 의식으로 볼 때에 하나의 개척 산행으로 탐구 가치가 있는 지리산 기행록이라고 합니다.

하동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도 차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관영차밭을 조성했는데 지금도 차밭이 남아 있습니다. 관영차밭 조성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남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남마을은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뒤로는 법화산, 앞으로는 엄천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기도 합니다. 남군은 배다른 형이던 수양대군의 등극을 반대하다가 1455년 단종의 왕위 양위 시 어머니 혜빈양 씨와 동생들과 함께 화를 입었습니다.

함양군에 오면 함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풍광이 너무나 좋습니다. 한남군은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처형 달해야 했으나 세조의 배려로 목숨만은 부지되었지만 종친록 삭제, 태실 훼철을 당했고 마을 건너편의 새우섬에 위리안치로 음식은 10일 1회, , 출입문이 봉쇄되었다가 1459년에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풍광이 좋은 곳이었지만 이곳에 위리안치가 되었을 때는 다른 풍광이지 않았을까요. 건너편이 새우섬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후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서 한오정을 지어서 충절의 정신을 기렸다고 합니다. 한남군이 살던 집터를 가대지라고 하고 마을 입구에 있는 오래된 숲에는 한남군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현재 마을의 규모는 40여 가구가 남아 있습니다.

여름에는 이곳으로 휴가를 온 사람들이 적지가 않을 정도로 계곡물도 그렇게 깊지가 않고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에 바라보면 새우섬이 있었던 강줄기와 강변이 풍경화처럼 보입니다. 새우섬은 강물이 크게 에스(S) 자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면서 두 줄기로 갈라져 중앙에 하중도(河中島)가 등 굽은 작은 새우처럼 있었지만 큰 홍수로 산어귀 쪽 물줄기가 메워져 바깥쪽 한 줄기로 흐르면서 섬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이곳에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른바 다섯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다섯 형제로 이름이 백 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과 조년(兆年)입니다. 금덩어리를 강물에 버린 우애로운 고려 시대 이억년과 이조년 형제의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엄천강 용유담의 수려한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백연마을과 새우섬의 역사와 이야기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한남마을 새우섬을 지나서 다시 이정표를 바라보고 다시 위쪽으로 가봅니다.

함양군의 지리산 자락길을 한참 돌아가야 하동군이 나옵니다. 한남군을 낳은 사람은 혜빈 양 씨였습니다.

혜빈 양 씨는 손자뻘이었던 단종의 유모였는데 단종이 왕위에 있을 때 보필하여 내명부의 중심에서 보호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남군은 불의한 세상에 절망하면서 이곳 함양에 와서 가슴에 한을 안고 병을 얻고 29세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시간은 지나 새우섬도 떠내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요. 강변 마을의 천연색 경치는 겨울에 무채색처럼 보이지만 새록새록 짙어지는 봄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겨울이지만 여정에 진한 여운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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