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은 포항 북구 죽장면에서 발원하여 대구시역의 북쪽을 통과하는 강으로

대구지역에 살고있는 저에게는 익숙한 강인데요.

금호강의 이름이 영천의 '금호읍'에서 유래한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이번에 소개할 조양각은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 중 하나이며

금호강이 보이는 언덕 절벽에 지어진 누각입니다.

조양각에서 바라보는 금호강과 강변공원이 멋있을 것 같은데 3대 누각중 입장이 가능한

다른 누각과 달리 영천 조양각은 오를 수 없다는 부분은 조금 아쉬웠답니다.

고려 공민왕(1363)때 그 당시 부사였던 이용이 세운 누각으로 그 당시 이름은 명원루였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소실되어 버리고 이후 인조(1638)때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으며 유교경전 중 하나인

시경의 한 구절인 '봉황은 동쪽에서 뜨는 아침햇살에 운다'의 의미로 조양각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조양각은 이름이 다른 현판이 2개 있는데, 조양공원에서 바라보는 우리가 보통 볼 수 있는 현판에는 '조양각'이라 새겨져 있으며,

금호강에서 바라보는 현판은 '서세루'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현판은 당시 명필로 유명했던 윤봉오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해요.

'서세'는 좋은세상이라는 의미로 '봉황이 사는곳 = 좋은세상'으로 연결되는데,

영천에는 특이하게 봉황과 연관된 이름이 많아 그걸 알아보는것도 쏠쏠한 재미랍니다.

혹시 이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조양각 바로옆에 있는 영천읍성전시관을 들러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조양각의 내부에는 이 고장을 거쳐간 수많은 문인들의 시구가 약 80편 정도가 조각되어 있는데요!

현재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포은 정몽주. 율곡이이를 포함한 그당시에도 유명했던 분들의

시문이 적힌 목판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양각을 바라보고 오른편에는 '조선통신사의 길' 표지석이 있어요.

조선통신사의 일본왕래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표지석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우리나라 통신사가 국서를 들고 일본으로 가기 전 영천에 머물렀다는 기념비로

서울 숭례문에서 영천까지의 거리(376km)와 영천에서 부산포까지의 거리(138km)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또다른 방향쪽에는 영천 출신인 작사가 왕평이 작사, 전수린 작곡, 이애리수가 부른 노래인

1928년 가요 황성옛터 노래가사가 적힌 큰 바위가 있습니다.

1928년 만들어진 가요이며 1932년 이애리수 음반에 '황성의적'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는데,

1962년생 저희어머니가 노래제목만 듣고 따라 부를 정도이니 오랜기간 사랑받은 노래인 것 같습니다.

조양각 바로 옆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영천역, 영천 버스터미널에서도 많이 멀지 않아 접근성도 좋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남 3대누각 조양각에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조양각과 함께 그 앞으로 조성된 조양공원.

조양공원 여기저기 세워진 기념비들부터 근처 영천읍성전시관까지

볼거리가 많이 모여있어 영천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영천 조양각은 어떠신가요?

조양각과 조양공원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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